가능성 있는 기록 도구 - tiddlyNotes
기록할 것은 많습니다. 타임라인에 떠다니는 어쩐지 읽어 둬야 할 것 같은 인터넷 주소, 방금 읽다가 강한 흥미를 느낀 책의 일부, 나중에 허세력 쩔 때 참고하면 좋을 만한 토막글 등등. 게다가 기록할 만한 수단도 많습니다. 종이매체는 너무 당연하니까 넘어가고 핸드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등등 온갖 기록할 만한 수단이 넘쳐납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 보면 각각의 기계마다 기록하라고 만들어진 앱 역시 수없이 많습니다. 핸드폰에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메모 앱부터 마인드맵 앱이나 메모와 웹 클립을 동시에 서버에 동기화하는 기능을 갖춘 앱까지 온갖 수단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뭔가 부족하고 답답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기능이 대체 뭐길래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인가 싶어 메모 도구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구사항을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 어쨌든 빨리 실행되어야 한다.
- 기계 밖의 어딘가에 자동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 많은 양의 텍스트를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
- 계속해서 쌓을 수 있어야 한다.
- 보관 방식이 선형이 아니어야 한다.
일단 닥치고 빨리 실행되어야 합니다. 2년 좀 못 되는 기간 동안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에버노트 사용을 그만 둔 이유는 느려서였습니다. 느린 이유를 설명하면 다른 조건 설명과 겹치게 될테니 이유는 넘어가고 경험만 이야기하면 아이폰에서 앱을 실행하면 일단 바람개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겁니다. 아니면 버벅거리고 있거나요. 새 메모를 추가하려고 하면 버벅거리다 튕기거나 원활하게 타이핑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웹 클립은 리더빌리티에 맡기고 메모는 아이폰 기본 메모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 메모는 처음 두 가지 조건만 만족할 뿐이었지만 어쨌든 닥치고 빨리 실행되는 점 만으로도 에버노트보다 나았습니다.
두 번째는 예상하셨다시피 백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매체는 파괴될 수 있습니다. 종이에 쓴 메모는 잃어버릴 수도 있고 불에 타 없어지거나 물에 젖어 못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매체로 넘어오면서 이런 현상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됐습니다. 하드가 날아가거나 핸드폰을 잃어버립니다. 심지어는 내 손으로 직접 데이터를 날리는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그 기계 바깥의 어딘가에 자동으로 보관되어야 합니다. 만약 기계가 부서지거나 잃어버리더라도 돈이 아까워서 짜증만 나야지 잃어버린 기록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지거나 식은땀이 나서는 안됩니다. 아이폰에 기본으로 내장된 메모 앱은 아이클라우드나 익스체인지 서버에 메모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정도면 훌륭하죠.
세번째는 많은 양의 텍스트를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포스트잇으로 한 메모처럼 사용하고 나면 바로 휴지통으로 보내거나 파쇄할 다른 종이에 붙여 파쇄되는 운명이 아닌 이상 기록은 보관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대충 쓰고 넘어가는 텍스트라도 언젠가 검색어 하나에 걸려들어 큰 의미를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종이에 쓴 기록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 지금 당장을 제외하면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팔만대장경쯤 되지 않는 이상 나중에 꺼내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도서관의 종이 색인처럼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검색이 잘 돼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버노트처럼 계속해서 쌓는다고 해서 버벅거리면 곤란합니다. 또 계속해서 쌓았더니 오래된 기록이 유실되거나 해서도 안됩니다. 에버노트의 경우 아마도 무거운 기록을 동기화하지 않도록 설정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유저에게 시켜서는 곤란하죠. 몇 년이고 계속해서 기록을 쌓아도 위에서 이야기한 다른 조건을 만족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합니다. 이 기준에서 아이폰 기본 메모 앱은 무리가 있는데, 바로 다음 이유 때문입니다.
기록을 선형 이외의 방법으로 나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기록을 주욱 시간순이나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서 게시판처럼 보여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나열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위에서 세 번째 조건으로 검색이 잘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무슨 음료수 광고처럼 ‘검색만으로는 풀 수 없는 갈증’이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참 재미있는 것이 어떤 정보를 기록할 때 구조화된 형태로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립니다. 중고교시절에 - 요새는 유치원 시절에 - 영어 단어를 주르륵 써놓고 아무리 종이에 반복해서 써도 잘 안 외워지는 이유입니다. 기록도 마찬가지인데 선형으로 나열해놓고 검색에만 의존하다 보면 검색어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기록들을 비선형으로 아무렇게나 분류해둘 수 있어야 기록을 물리적으로 구조화할 수 있고 모두 기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검색어 정도를 기억해낼 여지가 생깁니다.
… 그래서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도구. 여간해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조건들 외에 뭐 기본적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쓸 수 있어야 한다 뭐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 마땅한게 없길래 그냥 아이폰 기본 메모 앱에다 기록하고 일기는 Dayone에 적고 구조화는 마인드맵에 했다가 기억하고 했는데 이게 영 좋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tiddlyNotes라는 도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TiddlyWiki라는 데스크탑, 스텐드얼론 위키가 있나봅니다. 자바 파일 덜렁 하나만 있으면 로컬에서 돌아가는 모양인데 플랫폼에 크게 제한 없이 돌릴 수 있어서 사용자가 꽤 있나봅니다. 이것저것 기능 다 빼고 위키의 핵심인 비선형 기록만 로컬에서 가능하게 남긴 것 같은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모바일 기기에서 쓸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걸 해결한 것이 tiddlyNotes 앱입니다. TiddlyWiki와 같은 기록 형식을 사용하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텐드얼론 위키 앱입니다. 매크로나 템플릿이나 Diff나 히스토리 같은 기능 다 빼고 TiddlyWiki와 마찬가지로 비선형 기록 기능만 남겨놨습니다. 물론 드롭박스에 올리는 방식이라 언젠가 히스토리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여지는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프로젝트 하나가 단일 파일이라 그런거 안되고요, 드롭박스 기반이라 기계 밖의 장소에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는 조건도 만족합니다.
장점 … 그런거 없고 그냥 위키입니다. 위 조건을 다 만족합니다. 빠른 비선형 기록 도구입니다. 이게 특징이고, 단점은 앱이 좀 덜 만들어졌습니다. 가끔 죽습니다. 다행히도 저장하기 전에 죽은 적은 없긴 하지만 아주 신뢰할만하지는 않습니다.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인터페이스가 맛가기도 합니다. 제스처 처리가 매끄럽지 않아 원하지 않게 에디트 모드로 들어가거나 원하지 않게 리스트를 불러올 때도 있습니다. 또 인덱스를 따로 생성하지 않기 때문에 양이 많아지면 검색이 맛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준다면 가능성이 있는 기록 도구입니다. 마치 데이원처럼 초반의 엉성함을 딛고 일어나 관리가 제대로 된다면 모바일에서 내 기록을 믿고 맡겨봄직한 도구입니다. 이와 비슷한 조건으로 아이폰, 아이패드용 기록 도구를 찾고 계신다면 추천합니다. … 까지 써놓고 보니 뭔 아이폰, 아이패드용 스텐드얼론 위키 하나 소개하는데 서론이 이렇게까지 길어졌나 싶은데 그냥 알아서 읽어주세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