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1 11:28
아이폰과 제대로 경쟁하고 싶다면
한 3년 내내 아이폰 따라잡기 하다가 볼일을 못 볼 지경입니다. 좋아진 점은 다들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나, 개발자에게 돈을 줘서 자연스레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하는 모양이지만 3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입장에서는 손에 아이폰을 들고 있다는 점이 거의 유일하게 달라진 점입니다.
다들 앱스토어를 만들겠답니다. 시시한 이야기 다 지나가고, 가장 병신 같은 행동은 이통사 통합, 혹은 제조사 통합 앱스토어를 만들겠다는 노력입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돈만 낭비하는 삽질로 기록될 겁니다. 최근에 사실상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OSP를 보면 여러 기업이, 그것도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들이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단체행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OSP는 여러 핸드폰에서 같은 리치 애플리케이션을 돌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아직까지도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아이폰과 경쟁할 만한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병신 짓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정말로 아이폰이 못 하는 일에 집중해도 모자랍니다. 앱스토어를 만든다? 이건 아이폰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1번으로 내세워 경쟁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개선한다? 이건 제법 쓸만해 보입니다. 아이폰도 그다지 원활한 사용 경험을 주지는 못하니까요.
아이폰을 써보면 아이폰의 사용 경험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오가며 사용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폰에서는 사파리, 구글맵, 앱스토어 등 소수의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때 무조건 홈 스크린을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글을 보다가 SMS를 쓰고 싶으면 트위터를 끄고 홈 스크린으로 돌아가 페이지를 넘겨 SMS를 실행해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트위터로 돌아왔더니 메일 알람이 울려 다시 홈 스크린으로 돌아가 메일을 실행해 메일을 봐야 합니다. 이런 바보 같은 경험이 대체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멀티태스킹이 되면 해결된다고 했지만 그건 또 다른 바보 같은 생각일 뿐이구요, 아이폰이 못하는 사용자 경험이 이런 부분입니다. 앱이 혼자 돌아가는 만큼 빠르고 쾌적하게 돌아감과 동시에 여러 앱 사이를 오갈 때 편리하게 개선해서 멀티태스킹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심지어 이걸 멀태티스킹이라고 선전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기업 간 이해관계가 얽힌 앱스토어 같은 것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도 있지요. 물론 불행히도 이런 개선은 지금으로는 애플이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유일한 리스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도전해 애플보다 빨리 경험을 개선한 핸드폰을 만든다면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아이폰은 아이폰에서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 사이에 유기적인 결합이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MMS로 날아온 사진을 보다가 이걸 메일로 보내려면? 일단 사진을 저장하고 홈 스크린으로 돌아와 메일을 실행한 다음 방금 저장한 사진을 불러와 메일을 써야 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사진을 첨부하려면? 각각의 앱이 사진 첨부 기능을 다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트위터 앱만 해도 이미 웹브라우저로 사파리가 있지만 앱 사이를 원활하게 전환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쓰는 트윗버드만 해도 내부에 브라우저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사용 경험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은 지금 상태에서 이런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폰과 경쟁하려는 다른 핸드폰 개발사들은 가능합니다. 게다가 이런 핸드폰 내부 서비스 간에 아주 효율적인 유기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기계를 이미 만든 적이 있습니다. ‘전자사전’입니다. 요즘 나오는 전자사전은 컨텐츠량도 컨텐츠량이지만 부가서비스 간에 훌륭한 유기적 결합을 보여줍니다. 단어 사이에 점프는 기본이고 찾은 단어를 단어장에 넘기고, 암기 상황을 체크하고, 이걸로 문제를 만들어 풀고, 텍스트를 보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전으로 넘어가는 모든 동작이 내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한 덩어리처럼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지금 아이폰이 가장 못 하는 것이 이런 경험이고, 이걸 개선해서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과 경쟁하려면 아이폰이 이미 잘 하는 것을 따라가느라 삽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경쟁에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이미 잘 하는 것 보다는 위에서 이야기한 아이폰이 가장 못 하는 것을 먼저 파고드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폰과 경쟁하려면:
- 이미 잘 하는 앱스토어 따라가려고 삽질하지 말자. 물론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더 많다.
- 아이폰이 더럽게 못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오가는 사용 경험과 제공하는 서비스 간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경험을 제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