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내다.

요즘 유난히 내가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지금 하고 있는게 뭘 위한 건지. 바쁜 것 같은데 바쁘지 않고, 한가한 것 같지만 가만히 있으면 곤란하다. 뭘 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뭘 하고 있어도 편하지 않다. 사실 예전에는 먼 발치에서 한 번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좀 더 열심히 일했고, 좀 더 의욕이 있었고, 좀 더 즐거웠다. 어째서일까. 지금은 마치 동네 아주머니같아. 비즈니스 때문이긴 하지만 이젠 동요되지 않는다. 일상 같은 게 아닌데도.

비밀이지만 .. 이라고 써봐야 이미 비밀이 아니니까, 1년쯤 전에 회사에서 음악파일 하나를 집에 가져왔다. 간이 콩알만해져 어디로 새나갈까봐 파일에 라이센스를 꼭꼭 걸어 다시 인코딩해놨다. 처음 게임에 들어갈 음악을 들어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그 후 며칠동안이나 계속해서 듣던 곡이다. 작업중이라, 곡에 제목도 없고 그냥 'intro'라고 태그만 달려 있다. 그래도 좋다고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임을 할 때도 음악을 듣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내가 뭘 하는지 잘 몰랐다.

밤에 다른 일을 하려다 문제가 생겨 시간이 남았다. 무심코 아주 오래된 일기들을 열어보다가, 고등학교 때 지금 하는 일에 대해 공부해본다고 읽었던 문서들을 찾아냈다. 주욱 거슬러 올라오다 보니 온갖 이야기들이 지나간다.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마치 다른 사람 일기를 훔쳐보는 마냥.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시 들어봤다. 그 제목도 없는 'intro'라고 적힌 그 노래.
그리고서야 깨달았다. 난 아직 그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기억해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즈음의 나를 기억해냈다.
2006/11/15 01:18 2006/11/15 01:18

트랙백

답글

  • 외계인 | 2006/11/15 02:02 | 답글 | 수정

    뭔가를 기억할 수 있는 열쇠는 주변에 많은데... 이걸 보면 누가 생각 나고 이걸 보면 뭐가 떠오르는데.. 왜 이게 시험에는 적용이 되지 않을까요? 흑흑 제발... XXX를 구하시오! XXX야 제발 열쇠가 좀 되어주렴.

  • 답글: Milfy | 2006/11/17 10:07 | 답글 | 수정

    영화나 드라마같은데 보면 기가막히게 그런 연결고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에요 =_=

  • 비밀방문자 | 2006/11/15 02:33 | 답글 | 수정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답글: Milfy | 2006/11/17 10:07 | 답글 | 수정

    후후후. 하우스박사가 Lie, Steal, and Cheat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있어요. [!?]

  • jalnaga | 2006/11/15 11:39 | 답글 | 수정

    이리하여 또한번의 슬럼프를 탈출하다~! 가 결론이라면 최고겠군요. 프로젝트가 늘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저도 저런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껴져 예전 작업들을 떠들어 보고 있습니다만 그 즈음의 저조차도 생각나지 않는군요.^^;; 어쩌면 도망쳐 오듯 시작한 프로젝트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 답글: Milfy | 2006/11/17 10:08 | 답글 | 수정

    고맙습니다. :) 이제 끝이 어디쯤 있는지 보일락말락 하니 좀 더 가봐야겠어요.

  • nightoni | 2006/11/15 15:50 | 답글 | 수정

    기억은 떠올랐을지언정... 몸은 삭았다는 거.

  • 답글: Milfy | 2006/11/17 10:08 | 답글 | 수정

    술 끊으면 될지도 몰라 =_=!!!

  • 남박사 | 2006/11/17 00:10 | 답글 | 수정

    ...난 또 싸인받았는데 ㅋ (벌써 열번째...내가 이상한건가?;;)

  • 답글: Milfy | 2006/11/17 10:09 | 답글 | 수정

    음. 이제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오셨구나 하는 느낌이더라구요. 여전히 음악은 좀 좋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인트로 이외엔 역시 전혀 어울리질 않아요.

답글을 남깁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요즘에 쓴 글] [예전에 쓴 글]

(C)Milfy / neoocean.net, milfy@neooce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