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30 19:11
차라리 택시에 행선지를 표시하면 어떨까.
금요일엔 원래 오후에 개발 프로세스에 관한 관심이 가는 세미나가 있길래 거기 갈 작정이었는데,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던 테스트 서버 준비에 문제가 생겨 찔끔찔끔 미루다 보니 아무데도 못 가고 새벽까지 회사에 묶여있었습니다. 새벽까지 회사에 묶여 있는건 별 문제가 아닌데, 개발 프로세스 개선 같은 주제는 흔치 않기 때문에 설사 그게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 광고 퍼레이드라고 해도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거기 못 간 것이 좀 아쉽습니다. 그 외에는 테스트 서버에서 얻어야 했던 결과를 얻었고, 오픈베타 시작 한달만에 적당한 구심점을 가지게 되어 전체적으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집에 계속해서 늦게 들어가다 보니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끊길 시간이 되고, 회사 돈으로 택시를 타게 됩니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회사에서 자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정말로 인간 피폐해지니까, 가급적 집에 가서 자려고 합니다. 헌데 강남역 사거리, 택시가 잘 잡힐 때는 잘 잡히기도 하지만, 잘 안 잡힐 때는 사람 속을 뒤집어놓습니다. 제한속도 90킬로미터인 도로에서 도로 한복판까지 나가 목청껏 달려오는 '택시님들'께 내 행선지를 외쳐봅니다만, '택시님들'의 심기가 불편하신지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걸 한참 반복하고 있자면 내가 돈 내고 택시 타겠다는게 그렇게 힘든 결정이었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택시가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왔다가 내 행선지를 듣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다가 제 복장이 뒤집혀 혈압이 200에 가까워질 때가 되면 가까이 온 택시 문짝을 열어버립니다. 문짝이 열렸으니 택시는 저를 좀 지나간 다음 서고 전 그걸 가서 탑니다. '기사님'과 한참 쌍욕을 주고받은 다음 목적지까지 갑니다. 물론 가는 동안에도 쌍욕이 좀 오가긴 하지만 일단 집에 무사히 잘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 물론 이런 손님들이 꽤 있는 모양인지, 아예 문짝을 잠그고 다니는 택시도 많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내돈 내고 택시를 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내 돈을 바칠 테니 제발 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달라고 '택시님들'한테 애원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한번은 술 한잔 걸치고 한참만에 '택시님'을 잡아 타곤 술김에 물어봤답니다. '아 썅. 가까운데 가자고 해도 안가고 멀리 가자고 해도 안가면 대체 어딜 가자고 하면 세워주니?' '기사님'이 답했답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출발한다면 한 여의도 정도. 아니면 강남구 이내. 그러니까, 그 행선지가 아니면 한밤중에 버스도 지하철도 끊긴 시간대가 되면 '여의도님'과 '강남구님'에 가는 사람이 아니면 우리 고귀하신 '택시님들'을 탈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냥 포기하고 회사에서 자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가끔가다 '일산'이라고 해서 차를 세운 다음 타서 목적지를 바꿔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 아까처럼 또 '기사님'과 쌍욕을 주고받습니다. 이미 서로 말 까고 '일산이라며?', '내가 언제?', '지금 장난하냐?', '좀 가라 가. 뒷차 빵빵거리잖냐' 하는 식입니다.
택시는 세워서 행선지를 말하면 거기까지 가 주는 교통수단으로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버스나 지하철보다 비싼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택시님들'도 버스나 지하철처럼 정해진 구간만 운행한다면 택시비가 '900원'을 넘을 이유도 없고, 미터기를 달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10킬로 갈 때마다 100원씩 더 내면 되죠.
그래서, 이런 '택시님들'을 탈 거라면 그냥 서로 편하게 택시 문짝에 '행선지표'를 붙이면 어떨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지나가는 택시의 행선지표를 보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으면 가서 타거나, 세우거나 하는 겁니다. 택시 정류장같은데 택시들이 늘어서 있고, 승객이 다가가서 문짝에 붙은 행선지표를 봅니다. '여의도, 강남구, 왕십리, 건대' ..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면 그 택시를 타고, 가고자하는 목적지가 적힌 택시가 안 오면 그냥 밤새도록 거기 서서 '택시님들'께 사정해 보는 겁니다. 꼬우면 '택시님들'이 자주 '가시는'곳으로 이사를 하면 간단.
그래서, '택시님들'에 버스처럼 '행선지표'를 붙이는 걸 제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