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택시에 행선지를 표시하면 어떨까.

금요일엔 원래 오후에 개발 프로세스에 관한 관심이 가는 세미나가 있길래 거기 갈 작정이었는데,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던 테스트 서버 준비에 문제가 생겨 찔끔찔끔 미루다 보니 아무데도 못 가고 새벽까지 회사에 묶여있었습니다. 새벽까지 회사에 묶여 있는건 별 문제가 아닌데, 개발 프로세스 개선 같은 주제는 흔치 않기 때문에 설사 그게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 광고 퍼레이드라고 해도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거기 못 간 것이 좀 아쉽습니다. 그 외에는 테스트 서버에서 얻어야 했던 결과를 얻었고, 오픈베타 시작 한달만에 적당한 구심점을 가지게 되어 전체적으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집에 계속해서 늦게 들어가다 보니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끊길 시간이 되고, 회사 돈으로 택시를 타게 됩니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회사에서 자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정말로 인간 피폐해지니까, 가급적 집에 가서 자려고 합니다. 헌데 강남역 사거리, 택시가 잘 잡힐 때는 잘 잡히기도 하지만, 잘 안 잡힐 때는 사람 속을 뒤집어놓습니다. 제한속도 90킬로미터인 도로에서 도로 한복판까지 나가 목청껏 달려오는 '택시님들'께 내 행선지를 외쳐봅니다만, '택시님들'의 심기가 불편하신지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걸 한참 반복하고 있자면 내가 돈 내고 택시 타겠다는게 그렇게 힘든 결정이었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택시가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왔다가 내 행선지를 듣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다가 제 복장이 뒤집혀 혈압이 200에 가까워질 때가 되면 가까이 온 택시 문짝을 열어버립니다. 문짝이 열렸으니 택시는 저를 좀 지나간 다음 서고 전 그걸 가서 탑니다. '기사님'과 한참 쌍욕을 주고받은 다음 목적지까지 갑니다. 물론 가는 동안에도 쌍욕이 좀 오가긴 하지만 일단 집에 무사히 잘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 물론 이런 손님들이 꽤 있는 모양인지, 아예 문짝을 잠그고 다니는 택시도 많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내돈 내고 택시를 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내 돈을 바칠 테니 제발 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달라고 '택시님들'한테 애원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한번은 술 한잔 걸치고 한참만에 '택시님'을 잡아 타곤 술김에 물어봤답니다. '아 썅. 가까운데 가자고 해도 안가고 멀리 가자고 해도 안가면 대체 어딜 가자고 하면 세워주니?' '기사님'이 답했답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출발한다면 한 여의도 정도. 아니면 강남구 이내. 그러니까, 그 행선지가 아니면 한밤중에 버스도 지하철도 끊긴 시간대가 되면 '여의도님'과 '강남구님'에 가는 사람이 아니면 우리 고귀하신 '택시님들'을 탈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냥 포기하고 회사에서 자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가끔가다 '일산'이라고 해서 차를 세운 다음 타서 목적지를 바꿔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 아까처럼 또 '기사님'과 쌍욕을 주고받습니다. 이미 서로 말 까고 '일산이라며?', '내가 언제?', '지금 장난하냐?', '좀 가라 가. 뒷차 빵빵거리잖냐' 하는 식입니다.

택시는 세워서 행선지를 말하면 거기까지 가 주는 교통수단으로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버스나 지하철보다 비싼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택시님들'도 버스나 지하철처럼 정해진 구간만 운행한다면 택시비가 '900원'을 넘을 이유도 없고, 미터기를 달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10킬로 갈 때마다 100원씩 더 내면 되죠.

그래서, 이런 '택시님들'을 탈 거라면 그냥 서로 편하게 택시 문짝에 '행선지표'를 붙이면 어떨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지나가는 택시의 행선지표를 보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으면 가서 타거나, 세우거나 하는 겁니다. 택시 정류장같은데 택시들이 늘어서 있고, 승객이 다가가서 문짝에 붙은 행선지표를 봅니다. '여의도, 강남구, 왕십리, 건대' ..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면 그 택시를 타고, 가고자하는 목적지가 적힌 택시가 안 오면 그냥 밤새도록 거기 서서 '택시님들'께 사정해 보는 겁니다. 꼬우면 '택시님들'이 자주 '가시는'곳으로 이사를 하면 간단.

그래서, '택시님들'에 버스처럼 '행선지표'를 붙이는 걸 제안합니다.

2007/06/30 19:11 2007/06/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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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gaWave | 2007/06/30 19:49 | 답글 | 수정

    농담이시겠지만, 택시에 행선지표를 붙이는 것보다는 버스를 24시간 운영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승차거부를 단속해야 맞겠죠.

  • 답글: Milfy | 2007/07/01 16:12 | 답글 | 수정

    심야시간에 버스가 다닌다면 할증을 해도 좋겠어요. 승차거부를 암만 단속해도 워낙 뿌리깊은 관행 - ? - 이라서 고쳐지기 쉽진 않을거같아 안타까워요.

  • 민트 | 2007/06/30 23:25 | 답글 | 수정

    역시 서울쪽 택시들의 승차거부가 좀 심하네요. 예전에 뉴스에서 보니 택시수가 승객수에 비해 한참 모잘라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택시 수를 늘리던지 다른 교통수단을 24시간 운행하던지 해야겠네요. 부산같은 경우엔 불친절이 문제가 된 적은 있는데 택시수가 많아서 승차거부는 잘 없는데..

  • 답글: Milfy | 2007/07/01 16:13 | 답글 | 수정

    다른 지역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강남역 사거리는 유독 심하더라구요.

  • Roastbeaf | 2007/07/01 08:56 | 답글 | 수정

    강남역에선 일부러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택시를 잡곤 했었죠.

  • 답글: Milfy | 2007/07/01 16:13 | 답글 | 수정

    택시가 그나마 잘 서주는 지역까지 걸어간 다음 타기도 해요. =_=;;

  • 남박사 | 2007/07/01 09:36 | 답글 | 수정

    그래도 거의 날마다 택시를 타는 내가 봤을때, 양심적인 택시기사들도 (의외로) 꽤 많음. 35% 정도? 그래서 그런 시간대에 택시를 탈 때는 그런 기사가 걸릴때까지 무조건 기다림. 문 잠그고 창문 반쯤 열고 '어디요?' 라고 묻는 ㅅㄲ들 한테는 걍 손짓으로 꺼지라고 하고 =_=

  • 답글: Milfy | 2007/07/01 16:14 | 답글 | 수정

    가까이 와서 창문 빼꼼 열면 행선지 대신 욕설을 외쳐주기도 해요. [...]

  • 그럭저럭 | 2007/07/01 17:37 | 답글 | 수정

    택시 잡는게 전쟁이군요(...)

    버스 끊기는 시간까지만 다녀서 이런 일이 잘 벌어지는지 조차 몰랐음;;

  • 답글: Milfy | 2007/07/08 01:51 | 답글 | 수정

    버스가 끊기면, ... 이제 첫차 다닐때까지 더 놀 시간이 생기는거죠. [...]

  • 소니아 | 2007/07/02 00:10 | 답글 | 수정

    저는 완전히 달동네에 사는데, 짐 때문에 힘들어서 택시를 가끔 타요. 장을 봤다던지, 혹은 광주 갔다 와서 짐이 많다던지.
    (굉장히 가까운 거리인데도 짐 때문에!!!)

    대흥이나 홍대에서 혹은 심지어는 이대역에서 신촌기차역 뒤쪽 / 아트레온시네마 뒤쪽 언덕 달동네~ 정도의 거리를 간간히 타는데, 이런 경우에 문제는 저는 짐을 옮기는 게 힘들어서 지하철이 다니는데도 택시를 탄 것인데 택시 기사님들은 '큰길님' 이하는 길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큰길님 이하로 안 가신다면 택시를 타는 의미가 없잖아요. 의미없이 택시를 타고 결국 짐은 제 힘으로 옮기기를 몇 번, 요즈음은 택시를 안 탑니다.-_-;

    한번은 아저씨가 별 거부 없이 가시길래 안내했더니 아니 이건 골목이 아니라 완전 달동네네 달동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라고요? 이런 데서 왜 살아요?(좀 골목이어도 길은 있습니다-_-) 라면서 욕을-_-먹었어요. 이런 동네 사는 사람은 택시 타지 말래요. [...]

    ... 아저씨가 집값 비싼데 얻어주시게요? ㅜㅜ;

  • 답글: Milfy | 2007/07/08 01:52 | 답글 | 수정

    가끔 기사님하고 본의아닌[!?] 욕설난무대화를 할 때가 있어요. -_- .. 일산 간다고 하고 택시 잡아서 탄 다음에 말 바꾸면 완전재밌어요. 그날 하루 스트레스를 다 풀고 차에서 내릴 수 있지요. [...]

  • Adios | 2007/07/02 13:13 | 답글 | 수정

    아무리 그래도 회사에서 자는건 피하는게 좋지.. 남박사님의 언급처럼 친절한 택시의 비중이 생각보다 높은편이더군.

    강남역 4거리를 포함한 강남역 주변(난이도4)에서 압구정역~갤러리아백화점 주변 지역(난이도4) / 여의도 일대(난이도5) / 명동일대(난이도3) / 신촌일대 / 종로일대(난이도3) 정도일까나.

    충무로는 의외로 택시가 잘 서는 편이고 승차거부도 없는 편이어서.. 난이도 2 정도일까나... (.......)

  • 답글: Milfy | 2007/07/08 01:53 | 답글 | 수정

    전에 지하철 막차타고 집에가다가 중간에 지하철이 서버려서 미아삼거리에서 택시를 잡은 적이 있는데, 중앙선에서 차를 잡아 탔어요. [...]

  • 소니아 | 2007/07/19 23:20 | 답글 | 수정

    오늘 포털 메인에 뜬 뉴스가 [승차거부 택시 120번으로 신고하세요] 더군요... =_=);; 음.. 전화해서 20만원 벌금을 먹이는 것도 즐거울지 몰라요. 칼들고 찾아올지 모르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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