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7 23:03
요구분석
방법론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나름대로 고민해 보기도 합니다.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어디선가 잘못하기 시작한 가지가 있을 테고, 그 가지를 찾아내면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가지가 있고, 어느 가지로부터 실수가 시작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신, 같은 의사결정을 내릴 상황에서 다른 결정이나, 다른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수십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들이 연구되어 왔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다들 제정신이라면 중대형 프로젝트를 함부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저기서 요즈음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방법론들.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강력한 관리에 의한 개발보다는 사람을 좀 더 중요시하고, 색다른 코딩 방법과 패키지를 언제나 준비 상태로 만드는 관리 방법, 결과물을 최대한 가시화해서 모든 사람이 희멀건 신기루를 생각하며 이야기해야 하던 문제점들의 최소화. 강력한 관리에 의한 개발 방법이 여러 사람을 고달프게 만들어 왔다면, 이런 방법들은 관리라는 커다란 문제를 개개인이 조금씩 나눠 가지도록 만들어 모든 사람이 관리에 참여하는 모양새를 만들고, 전체적으로는 관리 부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해 오던 방법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쉽사리 도입하는데는 무리가 있겠지요. 빅뱅을 성공시킨 기업들도 있지만, 빅뱅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린 기업의 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방법론이라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요구 분석'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소프트웨어에 무슨 기술을 쓰고 무슨 기능을 만들고 언제까지 납품해야 한다는 거런 거 말고, 대체 고객이 원하는게 뭔지부터 정확히 판단한 다음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 위에서 이야기한 가시성을 극대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만들다 만 버전을 계속해서 고객에게 들이대고 맘에 드는지를 물어 초장부터 잘못될 싹을 잘라내 가며 일하는 식입니다. 고객은 중간 보고서 같은 말도 안 되는, 현실과는 저멀리 떨어진 보고서 따위를 통해 눈 감고 코끼리 다리 더듬으며 돈을 더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보고서를 쓰는 사람이나 개발자들 역시 소설을 쓰느라 골머리 앓지 않아도 됩니다.
게임 개발에서도 요구 분석은 똑같이 필요합니다. 게임도 영화도, 흔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마케터들이나 기획자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장 분석'과 비슷한 건데, 저는 시장 분석으로 시작한 게임은 재미있게 만들어지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엔터테인먼트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더 중요한 건 시장 분석보다도 요구 분석입니다. 사실, 이건 말장난입니다. 어느쪽이나 거의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구 분석은 좀 더 고객 쪽에 맞춘 시선입니다. 도대체 근 미래에 우리들에게 돈을 내고 게임을 사 줄 사람들은 결제 단추를 누르면서 대체 무엇을 기대할까 하는 겁니다. 꼭 게임이 어니더라도 어떤 엔터테인먼트라도 고객들이 뭘 원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시장에 초점을 맞추면 분명 남들과 똑같은 게임을 만들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시장의 고객 각각에 초점을 맞추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기획에서 요구 분석은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고객들에게 뭘 원하는지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액션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에 어떤 장면이 들어갔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분야의 요구 분석은 항공 산업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운송 산업은 수요가 발생한 후에 공급이 시작되지만, 항공산업은 공급이 시작되기 전에는 수요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마치 CSI의 'Lady Heather'의 '사람들은 우리가 보여주기 전에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엔터테인먼트 기획의 요구 분석은 '평균적인 고객'들의 니즈를 주로 파악하는 시장 분석과 비슷하지만, 감성적인 근거에 따라 고객들의 니즈를 짐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항공 산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항공 산업은 감성 같은 걸로 판단을 내리진 않습니다. :(
모든 방법론들이 동일하게 요구 분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모든 개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방법론에 따라 이 분석 결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어떻게 지속적으로 요구 분석을 수행할 지에 차이는 있지만, 요즈음 유행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요구 분석 단계에서부터 적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겁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