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8 00:19
도서관
아이팟 터치를 발표한 키노트를 보면, 아이튠즈 스토어에 한 해 동안 출시된 음악 중 32%가 물리적인 미디어 없이 디지털 파일로만 발매되었다고 합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는 디지털 음원만을 취급하는 온라인 스토어이기 때문에 결과가 좀 더 과장되어 표현될 수 있지만, 음반 발매라는 개념이 물리적인 음반을 출시하는 것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디지털 미디어의 출시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원은 mp3 플레이어가 굉장한 경쟁을 통해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도 빨리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앞으로 전자 책을 보여주는 장비들이 경쟁을 거치면서 기술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면 책의 유통 방법도 빠른 속도로 디지털 방식으로 옮겨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파일들이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돌아다니는 전자 책들은 다른 곳과 호환되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전용 프로그램으로 극단적으로 제한된 플랫폼에서나 간신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어 지갑을 굳건히 닫도록 만들지만, 시간에 맡겨 두면 하드웨어 제작사들과, 소프트웨어 - 책 - 제작사들이 한바탕 피터지는 경쟁과 발전을 통해 그나마 지갑을 열만한 상태의 전자 책들이 굴러 나올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mp3 플레이어가 한바탕 해 온 과정을 고스란히 밟게 될 겁니다.

2017년의 도서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장면이 있는데, 공각기동대 첫번째 TV시리즈 마지막 화에서,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른 커다란 도서관과 똑같이 생겼지만, 책을 정리하는 로봇이 도서관을 정리하고 있고, 도서관 안에 책은 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런 기묘한 느낌의 도서관입니다. 여기에 주인공 쿠사나기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정보의 묘지 같다.' 또, 아라마키 과장은 '관례적으로 행하는 서적류의 보관'이라고도 말합니다. 정보는 전달을 통한 습득과 사용에 가장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는 책은 확실히 '무덤'을 연상하게 할 만 합니다. 누군가 읽지 않는 이상은 종이 덩어리에 불과하니까요.
전에 인류학을 전공하신 팀장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인류학적으로 물리적인 미디어의 보관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마치 세계 제 4차대전에 사용될 무기에 대해 이야기한 아인슈타인의 말과도 비슷한데,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쌓아 놓은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인류는 지금까지 겪었던 다른 재앙으로부터 재건해 온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에 재건에 투자해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거대한 재앙 앞에 디지털 미디어에 저장된 정보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2017년의 도서관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도서관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해 사용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궁극에 가서는 매트릭스처럼 간단히 무술을 배워버리는 형태가 될지도 모르지만, 종이 미디어에 저장된 책과, 이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의 존재는 마치 핵 미사일 벙커에 보관되어 있는 자전거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