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라는 기사와 함께 몇년째 심심하면 한번씩 나오는 기사. 휴대전화 보급으로 아무도 공중전화를 안 쓰니까, 적자가 심각해서 계속해서 전화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공익성 때문에 사업을 하긴 하는데, 죽겠다는 기사. 또 작년 정도부터 추가된 내용에는 문자도 보내고 뭣도 하고 별거별거 다할 수 있는 '최첨단 최신식 공중전화'를 전국에 깔아 수익을 개선해볼 생각이었는데, 이것도 한 백대 찍었더니 예산이 바닥나 떡실신 상태라는 내용.

공중전화 산업이 사양 산업인 것은 맞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나 주머니 속에 전화 하나정도는 들고 있는데 공중전화까지 가서 무겁고 거대한 송수화기를 붙들고 어정정한 불편한 자세로 찾기도 힘든 동전 한무더기를 움켜쥐고 통화하는 불편을 감수할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공중전화 요금이 상당히 싸다고 해도, 전화를 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몰려오는 귀찮음은 공중전화 요금을 상쇄할만 합니다.

그런데, 공중전화가 정말 휴대전화 때문에 사양길을 걷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속이 메스꺼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중전화는 사실, 그동안 사양길을 몇 번은 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중전화의 강점은 아무데나 있고 - 적어도 한 10년 전에는 - 안정적인 유선 회선이 깔려있을 뿐 아니라, 예쁜 상자 안에 들어있어 추가로 전기나 통신회선을 사용하는 장비를 설치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공중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신용카드가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서울시가 교통카드를 몽땅 스마트카드로 교체해버렸을 때. 아무나, 대충 생각해봐도 공중전화는 너무 큰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휴대전화 때문에 적자야'라는 말을 반복했을 뿐입니다.

문자도 보내고 별거별거 다되는 공중전화는 공중전화의 특성을 무시한 채 최악의 경쟁상대를 고른 무능한 의사결정의 결과입니다. 공중전화는 위에 이야기한 대로 아무데나 있고, 유선회선과 전력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무선인터넷의 AP 같은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무선인터넷 사업을 시작할 때, 전국에 널려있던 공중전화를 유무선 기기의 베이스 스테이션으로 사용할 생각을 한번쯤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휴대전화와 경쟁하기 이전에 휴대전화의 보조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비슷한 역할을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하고 있지요.

또, 지금의 공중전화는 일단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휴대전화가 갑자기 맛이 가서 공중전화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중전화 앞에 가도 이 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일단 동전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웃기지만 현금을 사용할 수 있는 전화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가장 싼 2000원짜리 전화카드를 사서 딱 한번 통화한 다음, 나머지 천 몇백원은 지갑속에 묻어버리고 몇달 후 사용하려고 보면 카드는 맛이 가 있습니다. 이건 전화 한 통화의 요금이 2000원인 것과 똑같습니다. 서울시는 2004년에 대중교통수단 요금 지불에 스마트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에도 쓸데 없이 공중전화에 컬러 디스플레이 달고 키보드 달 생각 하는 시간에 결제수단에 교통카드를 지원하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았을 겁니다. 지금은 구세군 모금함도 교통카드로 결제됩니다.

며칠 전에 밤중에 머리를 다듬고 돌아오는데, 건널목에서 할머니 한분이 공중전화가 어디있는지 물으시길래 생각해보니 이동네에도 공중전화가 도통 어디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만에 지하철 역 안에 있는게 생각나서 말씀드리고 보니 공중전화는 지하 2층에 있더군요. :( 이 동네에 웬만큼 사는 사람이 아니면 어디있는지 알지도 못하게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찾기도 힘들고 동전 찾기도 힘들고, 전화카드는 최소 2000원인데다가 환불도 안되는 전화를 가지고 '휴대전화 때문에 장사를 못해' 따위로 이야기할 자격은 적어도 지금의 공중전화 운영 주체에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징징거리려면 그동안 찾아온 수많은 기회 중 적어도 하나는 붙잡았어야 했고, 만일 그 기회 중 하나만 붙잡았어도 지급처럼 징징거리진 않았을 겁니다.

공중전화의 공익적인 측면은 이해하지만, 저딴식으로 계속해서 징징거린다면 그냥 없애버리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7/12/16 17:02 2007/12/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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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니아 | 2007/12/17 14:13 | 답글 | 수정

    뭐.. 뒤늦게나마 교통카드로 공중전화를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하니, 일단은 봐야겠지요. 사실 예전에 공중전화가 흑자일 때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힘드니 낑낑거리는 것도 뭐... ㅡ.ㅡa

    교통카드가 나온 건 꽤 된 일인데, 아직까지도 안 바꾼 게 이상할 정도에요. 심지어 편의점이나 자판기까지도 교통카드가 되는데 말이지요.

  • 답글: Milfy | 2007/12/20 12:45 | 답글 | 수정

    공중전화를 한번 쓸려고 마음먹었다가도 금새 포기한 이유가 동전이나 전화카드가 없어서였거든요. =_= 전화에 문자보내는 기능 달아도 별로 반갑지않은데 ...

  • 남박사 | 2007/12/18 22:39 | 답글 | 수정

    <공기업의 아이디어 = 대략 쓸애기>

    다음 시험에 나오는 필수 공식입니다. 밑줄 쫙 치세요.

  • 답글: Milfy | 2007/12/20 12:46 | 답글 | 수정

    머리가 조낸 안돌아가는 족속인듯 ...

  • 이기호 | 2008/02/13 16:11 | 답글 | 수정

    공중전화 관련시스템 개발을 진행한 사람입니다.
    '최악의 경쟁상대..'이 부분이 찡
    노력은 많이 하는데, 성과가 없는 경우 진행한 사람들도 힘들죠.^.^

    plo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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