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6 22:51
택시
살림살이가 워낙 빠듯한 덕분에 택시는 저와는 관계 없는 별개 세상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만, 근래에 택시를 탈 일이 좀 생기면서 택시라는 교통수단도 생각보다는 가끔 써먹을만 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고민 없이 바로 버스를 타러 갔지만, 이제는 시간과 돈 사이에 저울질을 해 보고, 돈을 투자해야 할 것 같은 시점이라는 판단이 서면 택시를 타게 됐습니다. 계기는 회사에서 늦게 끝나기 때문인데, 덕분에 생활 패턴에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택시를 타면 여러 기사아저씨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택시 코스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시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것, 다른 하나는 경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자는 빨리 가는 대신 요금이 더 나오고, 후자는 조금 늦게 가는 대신 요금이 덜 나옵니다. 종종 기사아저씨들 중에는 바쁜 시간에 도시고속도로를 경유하지 않는다고 짜증낼 때가 있었는데, 대뜸 말 까고 '그럼 내돈은 물이야?' 하면 입을 다물더군요.
그나저나, 오늘 할 이야기는 근래에 겪은 기사아저씨 두 분의 음악 취향이 관한 겁니다. 한번은 자정 넘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에는 텔미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유행을 살짝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라디오 등에서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노래가 끝나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잘 들어보니 텔미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 싶었지만, 내릴 때가 다 되어서는 기사아저씨께 말 걸기도 두렵고, 빨리 이 택시에서 내리고만 싶었습니다. 아마 이분은 제가 내린 다음에도 계속해서 텔미를 반복해서 들으며 운전을 하실 겁니다.
또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이번에는 조용필의 '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조용필씨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들어보니 '비상' 라이브 콘서트 엘범이었습니다. 보통은 기사아저씨들은 조잡한 편집 음반 같은걸 들으실 걸로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라이브 엘범을 듣고 계셨습니다. 조용한 택시 안에 라이브 실황이 울리고 밤거리를 지나는 다른 차들과 불빛을 바라보며 비상 라이브 엘범을 듣는 건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차 안에 울리는 노래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처럼 보였는데, 저는 손가락으로 톡톡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내릴 때가 다 돼서야 조용필씨 팬이라든지, 노래를 잘 들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기사님 입이 귀에 가서 걸리시더군요. 무엇이 기뻤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팬을 만나서 기뻤을 수도 있고, 음악을 그냥 아는체 해서 기뻤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이분은 저를 내려 준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 엘범을 들으며 운전을 하시겠지요.
사실은 퇴근할 때 택시를 타면 앞자리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스티븐 호킹 박사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택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겪는 경험들이 재미있을 때가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