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살림살이가 워낙 빠듯한 덕분에 택시는 저와는 관계 없는 별개 세상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만, 근래에 택시를 탈 일이 좀 생기면서 택시라는 교통수단도 생각보다는 가끔 써먹을만 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고민 없이 바로 버스를 타러 갔지만, 이제는 시간과 돈 사이에 저울질을 해 보고, 돈을 투자해야 할 것 같은 시점이라는 판단이 서면 택시를 타게 됐습니다. 계기는 회사에서 늦게 끝나기 때문인데, 덕분에 생활 패턴에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택시를 타면 여러 기사아저씨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택시 코스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시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것, 다른 하나는 경유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자는 빨리 가는 대신 요금이 더 나오고, 후자는 조금 늦게 가는 대신 요금이 덜 나옵니다. 종종 기사아저씨들 중에는 바쁜 시간에 도시고속도로를 경유하지 않는다고 짜증낼 때가 있었는데, 대뜸 말 까고 '그럼 내돈은 물이야?' 하면 입을 다물더군요.

그나저나, 오늘 할 이야기는 근래에 겪은 기사아저씨 두 분의 음악 취향이 관한 겁니다. 한번은 자정 넘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에는 텔미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유행을 살짝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라디오 등에서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노래가 끝나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잘 들어보니 텔미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 싶었지만, 내릴 때가 다 되어서는 기사아저씨께 말 걸기도 두렵고, 빨리 이 택시에서 내리고만 싶었습니다. 아마 이분은 제가 내린 다음에도 계속해서 텔미를 반복해서 들으며 운전을 하실 겁니다.

또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이번에는 조용필의 '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조용필씨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들어보니 '비상' 라이브 콘서트 엘범이었습니다. 보통은 기사아저씨들은 조잡한 편집 음반 같은걸 들으실 걸로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라이브 엘범을 듣고 계셨습니다. 조용한 택시 안에 라이브 실황이 울리고 밤거리를 지나는 다른 차들과 불빛을 바라보며 비상 라이브 엘범을 듣는 건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차 안에 울리는 노래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처럼 보였는데, 저는 손가락으로 톡톡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내릴 때가 다 돼서야 조용필씨 팬이라든지, 노래를 잘 들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기사님 입이 귀에 가서 걸리시더군요. 무엇이 기뻤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팬을 만나서 기뻤을 수도 있고, 음악을 그냥 아는체 해서 기뻤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이분은 저를 내려 준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 엘범을 들으며 운전을 하시겠지요.

사실은 퇴근할 때 택시를 타면 앞자리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스티븐 호킹 박사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택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겪는 경험들이 재미있을 때가 있습니다. :)

2008/04/06 22:51 2008/04/0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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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미친병아리 | 2008/04/06 23:11 | 답글 | 수정

    저도 조용필 아저씨의 팬입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 같은 자세로 구겨져 있다는 표현이 와닿는군요.. 저도 그런 자세로 택시나 회사 동료가 운전하는 회사차를 타는 경우가 많아서리..

  • 답글: Milfy | 2008/04/14 09:39 | 답글 | 수정

    밤거리를 달리며 조용필 아저씨 노래를 듣는데,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더군요. 야근 후라 정신은 좀 흐리멍텅한 상태였지만 좋은 기분이었습니다. :)

  • XROK | 2008/04/07 02:02 | 답글 | 수정

    택시를 왠만해서는 타지 않는 저로서는...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군요 -.-

    다음에는 신경을 한번 곧게 쓰고 관찰해봐야겠습니다 저도 :)

  • 답글: Milfy | 2008/04/14 09:40 | 답글 | 수정

    기사님들마다 재미난 특징이 있습니다. 앞으로 끼어드는 차량에 빠짐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제게 '그렇지 않느냐'며 동의를 구하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신호를 무시하기도 하고, 혹은 취향이 남다른 분도 있고 해서 나름 타는 재미가 있습니다. 단, 택시들이 손님을 하도 골라 태워서, 일단 타기가 쉽지 않지만요.

  • 세라비 | 2008/04/07 04:23 | 답글 | 수정

    기분 별로 안좋을 때, 택시에서 재미있는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하면 기분 좋아지지요.

    그나저나 밀피유님이 말까고 '그럼 내돈은 물이야?'라고 하는 것이 상상이 잘 안되는군요. :)

  • 답글: Milfy | 2008/04/14 09:41 | 답글 | 수정

    ... 택시를 타면 탈수록 성격이 거칠어지더라구요. =_= 아니면 꼭 손해를 봐서 ㅜ_ㅜ

  • MegaWave | 2008/04/07 13:21 | 답글 | 수정

    택시기사분도 다양한 손님들을 보겠지만, 택시를 자주 이용하면 다양한 택시기사분도 접하게 됩니다. 언젠가 한번은 택시를 탈때부터 내릴때까지 교회 다니라는 설득을 하시더군요 ㅡ.ㅡ;;;

    (Firefox로 댓글작성 버튼 클릭이 안되는군요. IE로 재접해서 남깁니다.ㅋ)

  • 답글: Milfy | 2008/04/07 16:46 | 답글 | 수정

    지금 파폭에서 답글을 달아 보는 중인데, 제쪽에서는 답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혹 다른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 답글: 가루 | 2008/04/26 11:31 | 답글 | 수정

    adblock (plus)가 설치되어있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 그럭저럭 | 2008/04/07 18:31 | 답글 | 수정

    저도 아직 돈버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택시는 잘 안타고 다닙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도 여러 유형이 있군요.
    몇번 타보지는 않았지만 전 대부분이 '노동자' 수준인 분들이 많아서;;
    좋아하는 노래나 분위기 있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면 그것도 좋겠군요.

    그나저나 밀피유님이 대뜸 기사한테 말 깐다는 말에 충격.

  • 답글: Milfy | 2008/04/14 09:42 | 답글 | 수정

    제 자신도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노동자이지요. :)
    좋게좋게 살려고 하는데, 그게 안 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여지없이 좀 나쁘게 나가는 편이지요.

  • daybreaker | 2008/04/07 23:39 | 답글 | 수정

    카이스트가 대전 외곽에 위치한 관계로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하게 되면 택시를 굉장히 애용합니다. 재작년에 지하철이 개통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하철역과 학교가 꽤 먼 데다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리니까요. 아마 카이스트가 대전의 택시 산업에 일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무튼 그래서 저도 다양한 유형의 택시기사님들을 많이 만났는데 어떤 땐 음악도 없고 말 한 마디 없이 탄 택시도 있는가 하면 정치 얘기를 하기도 하고(이럴 땐 기사님의 의견에 일단 무조건 동의를 해주고 봐야...-_-) 카이스트생들이 열심히 해야 나라가 잘 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왕년에 수원 모처에서 조폭을 했었다는 분(덜덜덜), 외국에 자녀를 유학보내신 분 등등 각양각색이죠. 택시가 비싸긴 하지만 또 그 나름대로 인간미가 묻어나는 교통수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 답글: Milfy | 2008/04/14 09:43 | 답글 | 수정

    다만 그걸 느끼기 위해 일단 택시에 타야 하는데, 강남역삼선릉삼성에서 밤중에 택시잡기 정말 힘들더군요. 나중엔 집과 비슷한 방향인 '의정부!' 해서 타놓고 '내가 언제?' 하고 오리발 내미는 수법을 즐겨 사용중입니다. [......]

  • bikbloger | 2008/04/11 10:51 | 답글 | 수정

    예전에 꽤 고가의 카오디오를 달고 있던 개인택시를 탄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님은 클래식을 들으시더군요. 원래 클래식은 잘 모르기에... 혹시나 하고 '혹시 베토벤 합창이 있으신가요?' 물었더니... 갑자기 차를 옆에 세우고 콘솔박스에 CD케이스를 뒤지더라는... 잠시 후 기사님왈, "음. 카라얀거 두장이 있는데%$^#&%$*%..." 정말 생경한 경험이었습니다.

  • 답글: Milfy | 2008/04/14 09:44 | 답글 | 수정

    ...... 거기까지 가면 대단하기도 하지만 쪼끔 무서운 기분도 드네요. ;;;;;;

답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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