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5 22:14
인디아나존스
원래는 개봉 당일 다음날 보기로 되어 있었지만, 개봉 당일날 하루 종일 온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봉 당일 저녁 표는 이미 괜찮은 자리는 모두 날아간 상태. '그래. 내일 예약해놨으니 내일 보자'라고 꾹 참고 참다가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 머리속을 오락가락하는 채찍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야근하던 사무실을 뛰쳐나가 회사 동료 분과 코엑스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개봉 당일엔 못 보고, 개봉 다음날 본 셈이 됐네요. 표에는 햇갈리기 좋게 '22일 24시 30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디아나존스는 제게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성장기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몇 편의 영화 중 하나인데, 그중 하나는 다이하드입니다. 특히 다이하드 3편은 여러 가지로 생각을 바꾸게 만든 영화입니다. 인디아나존스는 개봉된지 십 년이 흘러서야 본 다음 개봉 당시에 혼자 극장에 갈만큼 성장하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무려 그런 인디아나존스가 현역으로 쌩쌩하게 극장에서 개봉한다니 눈알이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정도로 지명도가 있는 영화의 후속편은 자기 자신을 패러디해도 조잡하지 않게 되는데, 인디아나존스 4가 그렇습니다. 예고편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독하게 마음먹고 패러디했다고 광고를 해댔는데, 본편은 더했습니다. 전작 3편 전체에 걸쳐 인상에 남는 장면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으리라 생각되는 장면들이 펼쳐질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1편의 트럭 추격신, 2편의 탄광차 추격신, 3편의 오토바이 추격신 등 각 편마다 인기있던 장면들을 뽑아다 유사하게 재현했을 뿐 아니라 장면장면에는 그 때 사용했던 음악을 그대로 깔아 '아 이거!'하고 화면에 삿대질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디아나존스 시리즈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컴퓨터 그래픽의 혜택을 누리지 않고 만들어졌습니다. 눈속임이라고 해봐야 1편의 성궤를 여는 장면이나, 2편의 탄광차 장면, 3편의 비행선 장면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지독할 정도로 구식 방법을 사용해 만들어졌는데, 시대가 20여년이 흘러 지금은 얼굴만 빼고는 전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스탭롤에 백명도 넘게 올라가는 스턴트 스탭들의 이름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설마?'하는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재미있습니다. 새벽 두시 반에 극장을 걸어나오면서 회사 동료 분이나 저나 서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한참만에야 '재밌다'라고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사실, 전작을 패러디한 부분이나, 전작의 에피소드를 알면 재미있을 장면이 많아서 전작을 아예 안 보신 분께 썩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작들을 모두 봤다면 두어시간 신나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0시간 후에 또 봤는데,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
영화의 호흡이나 음악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20년 전에 나온 마냥 영화가 전체적으로 호흡이 깁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신나게 따라갔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짧게 처리해도 괜찮을 것 같은 장면들이 길게 이어져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또, 인디아나존스 시리즈의 테마는 존 윌리엄스가 1편부터 완전하게 정립했지만, 각 편을 대표하는 테마곡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곡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전작 패러디의 무덤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의 테마에 묻혀 4편만의 테마 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기회가 닿는다면 또 보러 갈 생각입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