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1 01:27
일과시간표
어릴 때 방학이 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탐구생활'의 가르침에 따라, 탐구생활 한 2~9페이지 근처에 있던 '일과시간표'를 완성하는데 귀중한 방학 하루를 낭비하곤 했습니다. 이 일과시간표는 24시간으로 된 원형 그래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12시간제 시계를 간신히 보던 제 입장에서 24시간제 그래프는 꽤 이해하기 귀찮은 대상이었습니다.
그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일과시간표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기상시간이 제멋대로였고 계획을 세워 행동하면 좋다고는 하지만 일단 나가서 노는데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방학 숙제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 무리한 분량이었는데,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클리어해도 아슬아슬한 것을 개학 이삼일 전까지 미뤄 두곤 했습니다. 밀린 일기쯤 하루에 한달분도 거뜬했지만 그리기나 만들기 같은 어이없이 귀찮은 과제들은 개학 당일 아침까지 저를 괴롭혔지요.
요새는 생각해보니 매일매일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운동 한 시간도 제대로 안 하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잠들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버스 안에 있으며, 또 같은 시간에 택시 안에 있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에게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고, 같은 시간에 메일 확인을 하고, 같은 시간에 커피를 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거 지독할 정도로 규칙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같은 시간에 집에 오다가 '일과시간표를 그려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번 그려봤습니다.
뭐 대충 회사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꽤 긴 것 같은데, 게임 오픈베타가 얼마 안 남아서 그렇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아니라서 압박이 직접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이쯤 되면 기획서에 따라 뭘 만들기가 꽤 힘들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획 일을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 더 많이 하는 일은 팀의 리포터 정도이겠네요.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규칙적으로 꽤 길어보이지만 회사에는 더 지독한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어서 길다고 하기도 뭣합니다.
그려놓고 보니 일주일 내내 정말 규칙적인 생활을 수 개월째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건강해질 수도 있고 계획적으로 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매일 비슷한 시간에 점심 뭐 먹을지, 저녁 뭐 먹을지를 고민하고 같은 시간에 자리에 주저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자면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장점만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