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

이건 좀 뻘소리인데요, 결론이 맨 뒤에 가 있어서 읽기 좀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 아닙니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초기에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았다면 지금은 거의 없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현대의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과 서비스들로부터 감시를 받습니다. 웹 브라우저에 주소를 치고 엔터를 누르는 순간 내 기록은 내가 엔터를 누른 서버에 도달하는 사이사이의 수많은 서버에 내 자취가 남고, 내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쓰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됩니다.

제가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는 확실히 사용자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써서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어떤 파일을 다운로드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닐 지도 모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몇 년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저는 요금을 밀린 적도 없고, 무리한 트래픽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걸려오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전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객님께서 어제 다운로드 하신 xxx 파일은 모 회사의 저작권에 위배되는 파일입니다. 파일을 삭제해 주세요.' ... 어린 마음에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한창 소프트웨어 단속이다 저작권 행사다 해서 시끄러울 무렵이었으니까요.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어떻게 내가 다운로드한 파일을 알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기 이전에 혼비백산해서 파일을 삭제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파일을 삭-_-제 하는 수준으로 끝났습니다만,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사용자의 패킷에 보이는 파일 이름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준 사건입니다.

그 파일을 다운로드 한 것은 명백한,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는 제 잘못입니다. 다만, 그 후부터 인터넷 상에서 뭔가 할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어디든 접속할 때 암호화 옵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은 언제나 암호화를 사용했습니다. 텔넷이 대표적이고, 지메일을 'https' 모드로 읽도록 설정한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호시탐탐 내 패킷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뭘 하든 찜찜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 마음대로 파일을 배포하는데도 애를 먹습니다. 촛불 집회가 진행될 무렵 집회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 파일을 배포하다가 문제가 될 뻔 하기도 했습니다.

엊그제 민노씨 댁에서 글을 읽다가 글에 언급된 문서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서버에 올려두면 꽤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난번 촛불 집회 동영상 생각이 나서 멈칫 하게 되더군요. 괜한 걱정에 과도한 행동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웬만한 파일 배포는 월드 와이드 웹 대신 VPN 같은 암호화된 통신을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에는 간단하게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무료 VPN 소프트웨어들이 널려 있고, 게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의 익명성과 그로 인한 공공성이 위협받는다면 더 이상 월드 와이드 웹에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위협을 받으며 정보를 주고받는 것 보다는 위협 자체가 불가능한 암호화된 통신을 사용하는 쪽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VPN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코로 설렁탕 마실 걱정 없이 배포할 수 있을텐데요.

2008/11/18 01:37 2008/11/1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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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민노씨 | 2008/11/18 03:37 | 답글 | 수정

    그런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제안이신 것 같습니다.


    추.
    저처럼 기술적인 관련 지식이 소박한(-_-;;) 독자들을 대신(?)해서 구글링해봤습니다. : )

    VPN (virtual private network) ; 가상 사설망

    1. VPN은 모든 회사들이 저마다 개별적으로 회선을 임차하는 것보다, 공중망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은 낮추면서도 전용회선과 거의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다.
    (출처 : http://www.terms.co.kr/VPN.htm )

    2. VPN은 전세계 곳곳에 뻗은 인터넷이란 엄청난 공중망을 이용하며, 보안에 취약한 인터넷의 단점을 극복한 ‘ 터널링과 암호화’라는 VPN의 양대 기술을 채용함으로서..
    (출처: http://72.14.235.132/search?q=cache:dw ··· Bgl%3Dkr )

    3. 질문 : 굳이..VPN을 구성해야 하는 이유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재밌는 대답)
    답변 : 뚜껑을 따지 않은 밀폐상태의 콜라캔1과 콜라캔2가 있다고 하죠. 이 사이를 아무런 빈틈이 없는 빨대 하나로 콜라캔1과 콜라캔2를 연결해두면 공기는 콜라캔을 통해서는 전혀 못들어오면서 콜라캔1과 콜라캔2 사이는 뿅뿅 잘 지나다닐 수 있게 되겠지요? 이 빨대가 vpn입니다. -_-
    p.s
    빨대고 뭐고 빨대 꼽으면 빨대를 자르면 되지 않겠냐느니 빨대랑 콜라캔을 실리콘으로 붙여야하지 않겠느니 이런거 반사!!
    (출처 : http://kldp.org/node/78720 )

  • 답글: Milfy | 2008/11/26 13:41 | 답글 | 수정

    자료 감사드립니다. :) 하다못해 제가 VPN에 밑줄이라도 그어 링크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제가 신경쓰질 못했네요. ㅠ_ㅠ 몇 번 심하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네트워크에서 뭔가 다운 받을 때 안전하지 않은 네트워크에서는 상당히 꺼리게 되더군요. 최근의 파일 전송에 관한 추세도 암호화 통신으로 가는 모양입니다. VPN 상에 파일서버를 공개해놓고 테스트해봤는데, 꽤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 그럭저럭 | 2008/12/16 01:08 | 답글 | 수정

    해보고는 싶은데 기술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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