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형 노트북

'잘나가는 미니노트북 알고보면 시장은 떨떠름'이란 기사는 인텔이 개발도상국을 겨냥해 시중에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모바일 프로세서보다 낮은 성능의 프로세서를 개발했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결과는 많이 팔고는 있지만 싼 프로세서이기 때문에 이익이 많지 않아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겁니다. 또, 이 저가형 프로세서를 사용한 노트북이 출시되는 시점이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려 더 큰 인기를 끌게 된 원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노트북 시장의 전반적인 저가화가 유발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시장 중심으로 현재를 읽지 않고 기업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면 이런 기사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딱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면 '넷북'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럭저럭 쓸만한' 노트북이 아주 싼 가격에 나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웹 서비스의 기술 수준이 '그럭저럭 쓸만한 성능'만으로도 웬만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의 이유는 모든 소비자의 습성일테니 그렇다 치고, 뒤의 이유가 중요한데, 웹 서비스 기술의 발전으로 노트북에 더 이상 강력한 프로세서와 많은 스토리지를 내장하지 않아도 이전과 같은 작업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 눈치채셨겠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용 PC나 노트북을 가리지 않고 컴퓨터에 더 강력한 프로세서와 더 많은 스토리지를 집어넣는 일이 당연한 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1Hz라도 더 빠른 프로세서를 얹어야 최신 오피스 소프트웨어가 잘 돌아가고, 이들이 토해내는 대량의 데이터와 수많은 사진 파일들을 저장하고 처리하려면 당연히 커다한 스토리지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시장의 욕구에 맞춰 비싼 노트북이 시장에 굴러나왔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사서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gg 쳤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흐름이 변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사실 뭔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십 수년 전부터 웹 메일을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그 때부터 이미 클라우드 컴퓨팅을 시작한 겁니다. 데이터는 내 PC의, 내 스토리지에 저장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내가 직접 관리하는 부담이 줄고, 내 프로세서를 혹사시키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내 스토리지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처음엔 메일이나 게시판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웬만한 오피스 수준의 앱들이 웹에서 돌아가고, 인터넷 연결만 되면 굳이 내 프로세서나 내 스토리지를 혹사시키지 않아도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이전처럼 강력하지 않은 노트북을 필요로 하게 됐고, 그에 맞춰 넷북이라는 딱 알맞은 노트북이 나온 것 뿐입니다.

netbook

얼마전에 노트북을 하나 샀는데, 제 첫 노트북 가격의 1/5이 조금 못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스토리지는 달랑 8기가만 달려있었지만 제가 필요한 작업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는데, 인터넷에 접속해서 글은 개인 위키에 올렸고 일정은 회사 PC의 아웃룩과 싱크되는 구글 캘린더에서 봤고, 메일은 지메일에서 봤으며 주요 문서 파일은 개인 위키와 svn으로 싱크되는 디렉토리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노트북에는 스토리지가 겨우 8기가만 달려있을 뿐이지만, 실제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져 더 많은 스토리지가 필요하지 않았고, 아웃룩이나 워드프로세서를 직접 구동하기 위한 빠른 프로세서도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똑같은 작업을 처리할 수 있었지요.

노트북 시장은 양분화되어 저가시장은 저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거고, 고가형 노트북 시장은 크기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데스크탑 대체 수요 정도는 남아 있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이 미국발 금융 위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을 뿐 아니라 전혀 새롭지도 않은 개념인 '클라우드 컴퓨팅'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노트북 시장의 저가화'가 '위기'나 '금융위기로 비롯된 일시적 현상' 같은 식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겁니다.

2008/12/27 15:24 2008/12/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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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z | 2008/12/30 13:16 | 답글 | 수정

    네트워크의 발달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가빗이나 11n이 더 이상 비싼 기술이 아니게 되었고 그 덕에 스토리지나 연산을 외부로 빼내는 데 부담이 덜해졌죠. 엔비디아에서 얼마 전에 발표한 Ion 규격 때문에 비슷한 주제를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글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

  • 답글: Milfy | 2009/01/02 00:03 | 답글 | 수정

    네. 사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네트워크의 발달이겠네요. 이번에 아무래도 기본 제공되는 8기가 안에 오피스를 설치하기 어려워서 스토리지를 늘리게 됐는데, 16기가짜리를 살지 32기가짜릴 살지 고민하면서도 '일단은 큰 스토리지를 붙이는게 좋지!' 라는 구식 마인드에서 '작은 스토리지에 일단 오피스만 깔리면 되지 않나'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식!? 생각까지 뒤섞여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이정도 기기에는 더이상 큰 스토리지가 필요하지 않을 거란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스토리지를 추가해 관리 부담을 늘리는 것 보다는 싼 네트워크와 VPN을 동원하는 쪽이 지금은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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