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큐브는 깡패다

이따위 표현을 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한참 고민했지만, 이 표현을 대신할만한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런 표현을 쓰게 됐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블로그 도구나, 수많은 게시판 스크립트 중에 이정도의 복잡함과 이정도의 불친절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도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도구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운영자가 마음대로 내 글을 삭제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장 정도입니다.

어느날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했더니 관리자로 로그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엉망진창인 관리자모드라 로그인 자체를 꺼렸지만 설정을 바꿀 일이 있었는데, 로그인이 안 됐습니다. 오픈아이디 인증이 안 되었는데, 오픈아이디 말고 그냥 관리자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로그인하니 로그인이 됐습니다. 아마 오픈아이디 인증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그날 이후로 지금도 오픈아이디 인증은 불가능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오픈아이디로 답글을 달려는 사람들 모두요. 포럼에서 찾아봐도 문제가 있다는 글 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저는 어떤 도구건 도메인 루트에 설치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각 도구마다 개발자들이 다른 도구를 의식하지 않아서인지 도메인 루트에 설치하면 다른 스크립트 디렉토리와 겹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오동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텍스트큐브도 './blog' 아래에 설치해 단일 블로그 모드로만 사용합니다. 다중 블로그 모드를 사용하면 단일 블로그 모드 때 사용하던 주소를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도메인에 블로그를 하나 열면서 여러 사람이 블로그를 써야 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도메인 루트에 텍스트큐브를 설치하게 됐습니다. 설치 후에 깜짝 놀랐는데, 텍스트큐브 이외의 모든 디렉토리에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검색한 다음에 텍스트큐브가 '.htaccess' 파일을 바꿨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른 디렉토리에 접근하려면 이 파일에, 접근하고 싶은 디렉토리 이름마다 설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스크립트도 '다른' 스크립트의 동작을 의식해서 만들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악질적인 방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식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스킨을 수정하는데, 캐시 때문에 페이지에 반영이 바로바로 되질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캐시를 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독하게 싫어하는 관리자모드를 여기 저기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엔 분명히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센터..글..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꾸미기..플러그인..설정..서비스관리..'메뉴를 뒤졌습니다.

일단 제 상식선에서 몇 가지 후보가 있었습니다. 일단 스킨 캐시에 관한 거니까 '꾸미기' 메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데이터에 관한 거니까 '설정'의 '데이터 관리'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양쪽 모두에도 없었는데, 한참 메뉴를 마우스로 훑으며 올라가는 혈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서비스관리'의 '서버'메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그러니까, 개발자는 'config.php를 수정하는 메뉴는 하나로 묶어야지'라고 생각했나봅니다. '서버' 메뉴에는 온갖 연관성 없는 이상한 설정들이 원래 '설정' 메뉴와는 관계 없이 모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킨 캐시를 끌 수 있었지요.

그런데, 캐시를 끄고 작업하는 동안에는 바로바로 스킨 변경이 반영되다가 스킨을 켜자 ... 이전에 만든 캐시를 다시 사용하는 겁니다. ... 결국 FTP에서 스킨 캐시 디렉토리를 내가 직접 삭제한 다음에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스킨을 수정해놓고 한참을 웃고 있었습니다.

텍스트큐브는 깡패입니다. 엔지니어들만 모여서 만들면 뭐가 나오는지, 엔지니어가 기획도 하고 개발도 하고 CS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텍스트큐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텍스트큐브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에 준하는 지식을 갖추거나, 티스토리 초대권을 찾는 편이 낫습니다. 언젠가는 분명 텍스트큐브도 글을 쓰는 유저에게, 글을 읽는 유저에게, 서버에게, 같은 계정에서 돌아가는 다른 스크립트에게 깡패처럼 굴지 않는 때가 오기는 하겠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08/12/27 15:53 2008/1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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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daybreaker's me2DAY 2008/12/29 18:47x
    제목 : 아침놀의 생각

    이런 글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불여우 정도 규모라면 모를까 대다수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가지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가 시간이라는 한계 + 전문적인 기획과 디자인 역량 부족 + 티스토리·텍큐닷컴과 보조맞추어야 하는 하위호환성 + 역사적인 이유 등이 발목잡는 듯. ㅠㅠ

답글

  • miriya | 2008/12/27 19:23 | 답글 | 수정

    제겐 티스토리도 깡패마냥 어렵게 느껴지는데 텍스트큐브니 어련하겠어요.. 최근 데쉬중인 누님 블로그 스킨 만들어주러 들어갔는데 아직 많이 열악하더군요.

  • 답글: Milfy | 2009/01/01 23:54 | 답글 | 수정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도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오랫동안 사용해 온 도구이기도 하고, 다른 도구에 없는 장점도 많아 비록 '깡패'라고 표현했지만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작정입니다.

  • 비밀방문자 | 2008/12/27 21:47 | 답글 | 수정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답글: Milfy | 2009/01/01 23:55 | 답글 | 수정

    ... 등잔밑이 어둡다고 초기화면에 떡 버티고 있는 걸 몰랐네요. 스스로 관찰력이 없음과 그런 기능은 어딘가 깊숙한 메뉴에 있을 거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왜 ㅐ시 지우기가 맨 처음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잠깐 들기도 하네요. ㅜ_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daybreaker | 2008/12/28 00:11 | 답글 | 수정

    텍스트큐브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사용하는 입장에서 참 여러 면에서 공감가는(?) 이야기네요. orz;

    우선 오픈소스의 특성상 기획자와 개발자가 엄격하게 구분되기 힘든 점도 있고, 배포용 프로그램이다보니 사람들이 이런저런 문제(특히 로그인 관련된...)들을 보고했을 때 고쳐주고 싶어도 재현이 안 돼서 못 고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냥 서비스하는 거라면 서버 환경을 최적화해서 맞춰놓고 거기서만 잘 돌아가게 만들면 쉽지만(그러면 UI 개선 등 좀더 사용자 친화적인 부분에 신경쓸 수 있겠죠) php+mysql 웹호스팅 환경들 보면 정말 별의별 케이스가 다 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환경에서 재현이 되어야 고치든지 말든지 하는데...OTL

    .htaccess의 경우는 아파치 mod_rewrite 모듈의 구조적인 문제가 큽니다. 기존의 .htaccess 파일이 있을 때, 거기에 있는 규칙과 새로 추가할 규칙이 충돌하는지 충돌하지 않는지 검사해서 적절히 병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워낙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요. 기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설치할 때 사용자한테 미리 알려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그나마 사용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개발자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 같은 불편들이 발생한다는 건 저도, 저희도 잘 알고 있지요. ㅠ_ㅠ (절대로,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ps. 텍스트큐브 2.0에선 캐시 프레임워크를 따로 만들어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일할 예정이고, 이 과정에서 아마 캐시 자체를 전면 재작성하게 될 것 같으므로 말씀하신 문제가 수정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ps2. 아마도, 워드프레스나 제로보드 같이 비슷한 정도의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배포형 웹프로그램 중에서 유독 텍스트큐브만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물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초창기의 태터툴즈와 현재의 텍스트큐브 구조가 계속 바뀌고 있는 과도기 단계라는 것이 크고, unit test와 같은 엄밀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러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남아있는 호환성 코드가 사실 굉장히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 개발자인 저희들조차도 뭔가 새로운 기능을 더하기 위해서 엄청난 부가 삽질을 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러다보니 버그 발생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 답글: Milfy | 2009/01/01 23:59 | 답글 | 수정

    먼저, '깡패' 같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단어를 골라 이런 글을 쓰게 되어 죄송합니다. 기술적인 것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텍스트큐브를 사용하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구 늘어놓다 보니 그냥 찌질거린 것 이상은 절대 될 수 없는 이상한 글을 써 버렸습니다.

    이런 글을 아무리 써도 개발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제가 느낀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을 개선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식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답글: daybreaker | 2009/01/04 11:00 | 답글 | 수정

    말씀하신 상황으로 봐서 깡패라고 말씀하신 게 충분히 이해가 되니 괜찮습니다. 사실 저도 텍스트큐브가 아닌 다른 웹프로그램 쓰면서 그런 삽질들을 해야 했다면 마찬가지로 뭐라뭐라 했겠죠.;;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과 동시에 상용소프트웨어에서 기대할 만한 사용자 지원이나 미려한 UI를 얻기는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 kachina | 2008/12/30 16:28 | 답글 | 수정

    아; 공감해버렸습니다-_ㅠ
    저도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쓰다가 텍스트큐브를 시도해 봤는 데 엔지니어링을 잘 하는 것도 아니라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참으로 많은 우울함이 다가오더군요..

    가령 오픈아이디를 3개나 만들었는데 어느것하나도 도저히 사용이 불가능하다거나..


    레몬펜쓰고싶은데오픈아이디지원이안되서 결국 뛰쳐나온....

    결국 티스토리 초대장을 얻었지만 말입니다... (엉엉)

  • 답글: Milfy | 2009/01/02 00:01 | 답글 | 수정

    사용자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잘 정리해서 개발자들에게 전달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노력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대하는 비 개발자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만한 도구가 드물고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작정입니다.

  • 계란소년 | 2009/01/02 01:30 | 답글 | 수정

    엔지니어 지향으로 만들면 그렇게 되는군요. 엔지니어들은 비전문가의 고통을 몰라요...

  • 답글: daybreaker | 2009/01/04 10:58 | 답글 | 수정

    (밀피유님 블로그에서 밀피유님 대신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 옆에서 고생하는 분이 있으면 옆에 앉아서 직접 봐드리면서 해결·고쳐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소위 '전문가' 세계에서는 짝프로그래밍이라고도 말하죠. -_-) 그래야 문제점이 뭔지 알고 개선할 수가 있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사용자들이 말하는 불편사항들이 재현되지 않을 경우 고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엔지니어도 출발은 비전문가에서 시작했습니다. 저도 제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 마찬가지의 불편을 겪는 사람입니다. 항상 자기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모두가 그렇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속 노력해야겠죠.;

    ps. 텍스트큐브 개발에 참여하시는 분들 중 완전히 비전문가였다가 맘에 안 들어서 뜯고 고치고 하다가 개발자로 편입(?)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개발자라고 해서 비개발자들의 고통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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