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4 10:50
장하다 한글과컴퓨터
제게 한글과컴퓨터라고 하면 오피스 환경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둘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잠시 누리던 워드프로세서의 영광 속에 허우적거리며 이제 거의 다 망한 회사라는 이미지입니다. 제대로 된 뷰어를 제공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파일 포멧에 대한 끈질긴 폐쇄정책 덕분에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이상한 포멧과 워드프로세서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신경 끊고 살다가, 가끔 *.hwp 파일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느려터진 한글 뷰어를 실행하곤 했습니다.
요즈음 소프트웨어 단속이 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문제가 되는 소프트웨어가 없나 하고 점검하다가 문득 회사에서 ‘한글 뷰어를 삭제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아니 무슨 소리지?’ 하고 생각했지요. 뷰어 프로그램은 당연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기업에서는 한글 뷰어를 사용하려면 한글과컴퓨터의 서면상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담당자가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한글뷰어 배포 페이지에 가봤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기업에서 한글 뷰어를 사용하려면 한글과컴퓨터에 서면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됩니다. 외부 업체와 일을 하다가 – 내부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또라이는 없으니까 – 한글로 된 파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한글 뷰어를 사용하기 위해 한글과컴퓨터에 서면상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서면상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고, 소프트웨어 단속 등에서 악영향을 받게 됩니다. 만약 이쪽이 외부 업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면 ‘한글 파일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뷰어를 삭제했습니다. 레지스트리에도, 파일시스템에도 안 남게 확실하게 지웠지요.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이따위 프로그램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요. 이쯤 되면 한글이나 한글 뷰어를 더이상 업무 환경에 사용하지 말라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포멧에 대한 폐쇄정책이나, 기업의 뷰어 프로그램 사용에 대한 병신같은 제한은 스스로를 점점 고립시켜 한컴이 생각하는 최악의 결과 – 우리가 생각하는 제발 빨리 그렇게 됐으면 하는 상황 – 를 만들 겁니다.
참고로, 워드 뷰어 다운로드 페이지에는 저딴 문구도 없고, 워드 뷰어의 EULA에는 ‘This product is "freeware." You are encouraged to copy and distribute Word Viewer to friends and co-workers, or post it on public electronic bulletin boards, LANs, and Internet sites.’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 개인이나 기업이 배포할 때는 최신 상태를 유지하거나 버전넘버를 붙여 달라는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입니다.
자사 파일을 읽을 수 있는 뷰어를 삭제하도록 종용하는 회사라니 정말 독특한 회사란 생각이 듭니다. :) 일단 삭제했고, 팀 전체에도 삭제하라고 공지를 할거고, 앞으로도 영원히 설치할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