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0 22:14
백업 습관의 변화
이곳에 가끔 들리시는 분들은 제가 백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파일을 복사하는 수준의 백업이나, DVD 몇 장에 ‘꼭 필요한 데이터’ 정도를 어쩌다가 한 번씩 구워두는 수준의 백업이 상당히 위험하고, 그 귀찮음에 비하면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저 자신도 하드디스크에 주기적으로 자동 백업이 되도록 하고, 회사와 집에서 각기 다른 백업 방법을 사용해 보면서 장단점을 비교해 보기도 했습니다. 몇 번인가 사고가 일어났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새 하드디스크 구입 비용’을 제외하고는 손실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고는 일어났습니다. 오래된 ‘IBM Thinkpad X22’를 서버로 사용하며 여기 물려 집안에 있는 여러 PC에 음악과 동영상을 중계하고, 집과 회사 사이에 SVN 서버로도 사용하던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SVN 서버가 응답이 없길래 ‘오래된 노트북이 또 멈췄나보군’ 하고 별 문제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확인해 보니 오히려 노트북은 몇 주에 걸쳐 전혀 문제 없이 돌고 있었고, 하드디스크가 인식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되살릴 수 없었지요.
중요한 점은 이 디스크는 백업이 없었다는 겁니다. –_- 사실 여기 저기서 모은 동영상 파일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100% 불법 동영상입니다. 영화, 드라마 등등, ‘구입할 방법이 없다’는 건 사실 핑계이고, 어떻게든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 동영상들에 대한 제 생각도 “뭐 날아가도 할 수 없지” 수준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게 날아가 버렸습니다. SVN 리파지토리도 회사와 집 사이에 파일 동기화에 너무너무 편리하게 사용했지만 이것 역시 윈도우 7로 넘어오면서 슬슬 다른 ‘덜 삽질스러운’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던 중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언제 날아가도 ‘하는 수 없지’ 하던 데이터였지만 막상 사라지고 보니 상당히 아쉽더군요. :(
그 후로 몇 주 사이에 꽤 많은 습관을 바꿨습니다. 일단 거대한 용량을 차지하던 사진을 구글 스토리지 200기가를 구입해 모두 웹에 올려놨습니다. 웬만한 문서나 PDF 파일 따위는 개인 계정에 있는 위키에 정리하거나, 구글독스에 올렸습니다. 집과 회사의 파일 동기화는 드롭박스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서비스 공포증과 반대인 행동입니다. 웹서비스는 언제 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그런 서비스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제 주변의 데이터들이 더 이상 저 스스로 관리 부담을 지기에는 너무 빨리 변하고, 많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부분을 웹서비스에 의존하면서 제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진 파일을 메인 PC와 다른 두 개의 백업디스크에 보관하는 대신 메인 PC, 메인 PC의 백업 디스크, 피카사웹에 보관하는 쪽이 더 안전하고 속편합니다. 문서는 구글독스에 올려놓는 편이 내 하드디스크보다 안전하고, SVN 서버를 굴리며 거대한 파일을 리파지토리에 집어넣는 삽질을 하느니 드롭박스가 백배는 편합니다. 관리 부담이 줄어든 대신 문서를 읽고 사진을 구경하는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 치우고 백업장비는 이거 하나 남았습니다.
물론 동영상 + SVN 리파지토리 디스크가 날아갔다고 해서 백업을 모두 없앤 건 아닙니다. 여전히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곧 9년차에 접어드는 ‘IBM Thinkpad X22’ 노트북 서버는 돌고 있고, 메인 PC에 물린 백업디스크 하나는 남겨놨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지노선이지만 어쩌면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하드디스크 대신 윈도우7 DVD 한장 덜렁 놔두고 장애가 생기면 윈도우 DVD만 넣고 부팅한 다음 복구는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서버로부터 전송 받아 진행하게 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백업 디스크는 하나만 남았고 백업을 관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을 시간을 벌었습니다. 물론, 제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는 어느 서버에 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