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 어머니 The 고문기술자

메가박스에서 Met 오페라를 상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묘하게 갈 기회가 잘 닿지 않았습니다. 그간 상영한 토스카나 아이다는 좋아하는 푸치니와 베르디 작품이기는 했지만 제가 잘 알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 덕분에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그 유명한 ‘아무도 잠들 수 없다’를 들을 수 있기도 하고, 오후에 책 보고 있기도 싫어져서 갑작스레 예매한 다음 메가박스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간 건 아니고 추워죽겠는데 자전거를 가지고 갔습니다. :)

저는 시력이 나빠서 공연을 보러 가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웬만큼 앞자리가 아니면 공연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거죠. 거기 사람이 있고 그게 누군지도 알겠는데 그 사람의 표정이나 복장의 디테일 따위는 모르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4k 해상도로 보고 있는데 저는 DVD 해상도로 보고 오는 식입니다. … 제기랄. 그럴 거면 시력에 따라 가격을 따로 받으면 좋을 텐데, 그럴 가능성은 없군요. ㅜ_ㅜ 특히 오페라 같은 건 문제가 심각한데, 무대에 사람이 한 가득 있고 음향시설이 그저 그렇다면 심지어는 지금 떠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놓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화면에 확대해서 보고 싶은 것들을 카메라맨이 알아서 확대해주는 실황을 보니 오페라 공연도 상당히 보기 쉬웠습니다. 쉬웠다기보다는 시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것이 없어지니 훨씬 집중하기도 쉬웠습니다. 이쯤 되니 앞에 놓친 공연 두 개가 은근 아쉬웠습니다. 올 여름까지 계속해서 매달 공연 하나씩 상영하는 모양인데, 앞으로는 매달 한 번은 꼭 와야겠습니다.

좀 우울한 점도 있습니다. 일단 인터미션 뒤에 들어있는 Met 스텝 인터뷰가 상당히 길고 인터미션 시간까지 더해져 막과 막 사이에 시간이 꽤 깁니다. 그래서 중간에 기분이 좀 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오늘따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상영 실수가 두 번 있었습니다. 둘 다 인터미션 스크린 후에 인터뷰를 틀다가 일어났는데 수 초 동안이나 허옇게 뻗은 화면을 쳐다봐야 했지요. 또, 메가박스 M관 음향시설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소프라노 파트 볼륨과 나머지 볼륨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나머지 부분에 맞춰 볼륨 조절을 해놨는지 소프라노 파트 고음에서 신경 쓰이는 째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 아쉬웠습니다. :(

그리고! … 자막 만들었으면 한번 쯤은 기계 맞춤법 검사 정도는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둘러쌓여’ 쌓이긴 뭘 쌓여! –_-; 전부 다 틀린 걸 보니 한글에 서투른 분이 번역하신 모양입니다. 투란도트 공주 대사에 ‘투란도트는 뭐뭐 해요’ 따위의 대사도 있었는데, 이런 표현을 잘 쓰는 분야가 떠올라서 피식 웃었습니다.

자. 위에 이야기한 단점 말고도 한가지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온 밍크코트 입은 어머니 두 명 + 10세 전후의 아이들 네 명이 시작부터 끝까지 세시간 내내 떠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오페라를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모양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만, 뒷자리에서 보니 아무리 봐도 아이들에게는 고문이었습니다. 일단 인터미션이 있다고 해도 세 시간을 집중하는 것은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애니메이션이나 아동용 영상처럼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시청각을 휘어잡는 요소도 없습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자막을 쳐다봐야 하는데 자막은 한도 끝도 없이 길지요.

어머니가 뭔가 설명해 주는 것 같지만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해 참수당하는 페르시아 왕자 이야기에서 참수를 뭐라고 설명할까요. 왕자의 목을 장대에 꽂아 높이 세워 두는 장면은 뭐라고 설명할까요. 내일 아침이면 다 같이 사형 당하게 생긴 베이징 사람들이 칼리프에게 가지라고 준, 칼리프 주변에서 노출한 채 춤 추는 여인들을 뭐라고 설명할까요. 그냥 왠지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데려왔지만 도저히 감당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 혼자 떠들고 있는 꼬라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한 20분 앉아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일어나서 통로를 뛰어다니더군요. –_- 물론 어머니가 따로 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끝날 때 보니 어머니는 뭔가 못마땅한 듯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었고 아이들은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 욕심도 좋지만 아동인지발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The Metropolitan Opera Live HD:
장점:

  • 시력이 나빠도 오페라 공연을 편하게 볼 수 있다!
  • 필름 기그 같은 기분이라 우울하지만 저렴하게 볼 수 있다!

단점:

  • Met 인터뷰가 상당히 길어 흥을 깬다.
  • 상영 실수가 있었다.
  • M관 음향시설이 소프라노 파트를 소화하지 못한다.
  • 자막 맞춤법이 틀렸다. 어법도 틀렸다.

결론:

  • 그래도 달마다 보러 가야겠다.
2010/01/30 23:38 2010/01/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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