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같으면 상관 없다.

WM7에서 멀티태스킹 기능을 제한하겠다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이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든지, WM7이 설치된 핸드폰을 사지 않겠다든지, 불편하다든지 뭐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핸드폰에서 멀티태스킹 기능을 없애거나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굳이 핸드폰 뿐 아니라 모든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빠른 반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나, ‘불러오고 있습니다’ 따위 문구를 멀거니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지 모릅니다. 누르면 누른 즉시 반응해야 합니다. 이게 핸드폰에서는 더 절실합니다. 핸드폰에서 조회하는 정보 상당수가 즉시 튀어나와야 하는 것들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 지도, 주변에 누가 있는지, 지금 이 책에 대한 검색,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버스가 언제 오는지 같은 정보는 지금 당장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빠른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됩니다. 하나는 네트워크 속도, 다른 하나는 핸드폰 속도입니다. 네트워크 속도는 사실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전파가 잘 닿지 않는 곳에서는 당연히 느립니다. 같은 마이크로셀에 이용자가 많아도 느립니다. 애초에 3G 네트워크 속도 자체도 느립니다. 4G가 나오고 LTE가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빨라지겠지만 와이파이가 몇 백 메가씩 나오는 이 마당에 3G 네트워크는 아직 7.2메가 수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핸드폰 속도입니다. 핸드폰에 더 빠른 프로세서와 더 많은 메모리를 달면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쪽은 이미 충분히 빠른 프로세서와 아주 싼 메모리가 널려 있어서 지금 당장 충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망할 핸드폰은 왜 이렇게 느릴까요. 물론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를 개떡같이 만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에서 안 만든 핸드폰도 왜 이리 느릴까요. 왜 WM은 이렇게 느리다는 평을 받을까요. 저는 이 이유를 멀티태스킹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멀티태스킹을 제한한 아이폰은 WM 기반 핸드폰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빠른 것처럼 보입니다.

차이는 WM 기반 핸드폰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한 번에 실행할 수 있습니다. 메신저 띄워 놓고 브라우저 띄워 웹 구경 좀 하다가 트위터 프로그램 켜서 글도 올리고 이러는 도중에 카메라를 켜서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뭔가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찰나에 문제는 시작됩니다. 트위터 프로그램을 켜고 글을 하나 올리려는데 갑자기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뒤에 떠 있는 메신저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인데, 지금 당장 앞에 떠 있는 트위터가 버벅 거리는 겁니다. 트위터를 쾌적하게 사용하려면 메신저를 종료하면 됩니다.

아이폰은 어떨까요. 아이폰은 사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에 제한을 걸어 전화와 음악 이외에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무슨 프로그램이 돌든 말든 홈 버튼 누르면 무조건 프로그램을 종료해 버리고 홈 화면으로 돌아옵니다. 내 눈 앞에 떠있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느려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핸드폰에는 내 눈 앞에 떠있는 프로그램 이외에는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트위터에 글을 올리려다가 누군가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트위터 프로그램을 끄고 메신저 프로그램을 실행한 다음 이야기를 하고, 다시 메신저 프로그램을 끄고 트위터 프로그램을 켜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폰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험이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폰 다음 세대에는 멀티태스킹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느니, ‘만약 그로케 모타면 아이포늘 일케 되겠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을 한다는 건 위에 이야기한 이전 WM이나 블랙베리OS에서 겪은 것과 똑같은 문제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뒤에 뭐가 떠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메신저가 버벅 거리는 통에 답글을 못 쓰는 일이 생길 겁니다. 아이폰에 멀티태스킹 도입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반응 속도가 중요한 핸드폰에 멀티태스킹을 도입하는 것은 지금으로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은 실제로 여러 프로그램이 동시에 메모리에 올라가 프로세서를 시간 별로 나눠 실행되는 그런 개념과는 다릅니다. 사실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프로세서가 시간을 나눠 실행이 되든지 말든지 관심 없습니다. 다만 뒤에 메신저도 떠 있으면 좋겠고 트위터도 떠 있으면 좋겠는데 이 상태에서 사진도 찍고 전화도 하고 음악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멀티태스킹’이라는 기술적인 요소와는 아무 상관 없이 거의 ‘연출’에 가까운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멀티태스킹을 집어넣고 아이폰이 버벅 거리는 꼬라지를 보여준다면 곤란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핸드폰이 버벅 거리면 프로그램을 종료해 버벅 거리지 않게 만들면 된다고요. 하지만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윈도우에서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과 작업표시줄에 내리는 것의 차이를 컴퓨터를 처음 써보는 열 살 짜리 꼬마에게 설명해 보세요.” 만약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아이폰에, 혹은 WM7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을 집어넣어도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설명하기 어렵거나 설명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은 기계를 다루기 어렵게 만들고 속도를 떨어뜨리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겁니다.

위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은 다분히 ‘연출’에 가까운 요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아이폰에는 지금도 연출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콘을 누르자마자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홈 버튼을 누르자마자 홈 화면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건 애니메이션일 뿐이고 실행과 종료는 유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동안 애니메이션으로 빨리 실행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할 뿐입니다. 사용자들이 멀티태스킹에 원하는 경험 역시 이런 연출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습니다.

핸드폰 전체에 글로벌한 스케줄러와 푸시 매니저, 그리고 프로그램 각각의 서스팬드와 리스토어를 웬만하면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OS 기능이 있다면 기술적으로는 완전한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티태스킹처럼 보이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카메라를 켜면 메신저는 종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메신저 대신 OS 레벨에서 메시지를 받아 놓고 카메라는 멀쩡히, 버벅 거리지 않고 실행됩니다. 카메라를 끄면 다시 메신저가 돌아오고 OS가 받아둔 메시지를 받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던 멀티태스킹 개념으로 동작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경험을 줍니다. 게다가 아무 프로그램도 버벅 거리지 않습니다. 같은 경험이지만 훨씬 더 쾌적하고,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적습니다.

프로세서가 충분히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멀티태스킹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 될 거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이 하는 일이 예전에 비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예전에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보여주는데 낮은 사양의 PC만 있어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비행기 시간표처럼 보여주느라 프로세서 클럭이 1기가는 돼야 돌아갑니다. 예전의 모바일 메신저는 따로따로 나눠져 있었지만 요즘 모바일 메신저는 여러 서비스를 통합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예전의 카메라 프로그램은 찍어서 저장하면 땡이었지만 요새는 동영상에 실시간으로 효과를 줘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같은 프로그램이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더 많고 어려워지면서 프로세서 속도가 빨라지는 속도로는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핸드폰에는 멀티태스킹을 사용하는 대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면서도 사용자가 멀티태스킹처럼 느끼는 연출을 사용하는 식으로 타협해야 합니다. 사용자들은 멀티태스킹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코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멀티태스킹 비슷한 사용 경험입니다.

정리하면:

  • 모바일 기기에서 멀티태스킹은 사용 경험을 나쁘게 만든다.
  • 유저들이 원하는 건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경험이다. 그들의 동시 실행 여부는 관계 없다.
  • 멀티태스킹 경험은 제한적인 멀티태스킹 지원과 연출을 통해 만들 수 있다.
  • 지금 당장은 아이폰이 가장 이상적이다.
  • WM7이 개선되어 나오면 이런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One Response to 결과만 같으면 상관 없다.

  1. 청명 says:

    동감하는 글이군요. 아이팟 터치 사용자인데 멀티태스킹이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뭐, 메신저에서 제가 들락날락 하는 걸 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WM7이 말씀하신 방법에 가장 근접할 것 같더군요. 프로그램을 실행 중 정지시키면 상태가 저장된 후 아예 정료되고 유저가 다시 돌아오면 상태를 로드… 램 혹은 메모리 사용은 좀 있겠지만 cpu 사용은 아예 없는거니까 프로그램은 버벅대지 않겠지요.

    WM6.1~6.5의 바람개비가 많이 거슬렸던 저로써는 WM7의 이런 선택이 매우 기대되네요. 그 라이센스 방식도 그렇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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