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기획의 가정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들어갈 개념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쓸 작정이었는데, 아직 초기 검토 단계니까 기획하고 있다고 하기도 뭣하고, 개념을 정의 /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이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혀줄 것인지, 대신 뭘 줄 지, 또, 괴롭히는 과정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지에 관한, 어떻게 보면 꽤 추상적인 레벨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욕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늘어놓고,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게임의 형태에 대입해 그럴싸한 설정이나 룰을 이끌어내는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 가지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유저 스토리를 만들어 봅니다. 맨 처음에 유저가 게임에 접속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전투를 하고, 뭐… 퀘스트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파티 플레이를 하고… 잠깐. 파티 플레이?… 파티 플레이를 한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합니다. 파티 플레이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두 가지 가정을 하는 것인데, 하나는 유저가 파티 플레이를 좋아하고 별 무리 없이 적응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 게임에 다른 유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여기서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고, 여기서는 후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방금 이야기한 유저 스토리에서는 이 게임에는 이미 파티 플레이를 할 다른 유저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기초적인 게임 룰에 어느 정도 적응한 유저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파티 플레이를 하거나, 길드를 이루는 식으로 게임의 다른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레이드를 뛰거나, 공성전을 하거나, 공성 시작 직전에 상대 혈이 모인 PC방에 가서 스위치 허브 전원을 내리고 튀거나 하는 플레이가 일어나는 거죠. 이 모든 건 게임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런 가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게임에 사람이 조금만 부족해도 순식간에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열라 짱쎈 RvR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게임에 파리만 날려서야 시스템이 돌아가질 않습니다. 열라 신나는 파티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파티 구하는데 한 시간씩 걸려서야 Alt + F4에 손가락이 올라가기 십상입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온라인 게임은 돈을 들여 게임 밖에 광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알지롱에 광고를 걸고, 루리웹에 광고를 합니다. 돈이 좀 더 있다면 버스나 지하철에, 돈이 좀 더 있다면 코엑스몰이나 네이버 메인 배너를 걸 수도 있습니다. 운 좋게 이 배너를 눌러 접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쓸데 없이 개발자들에게도 안 주는 최신형 그래픽카드나, 커다란 모니터를 경품으로 내 걸고 이벤트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스팸메일함에는 파란 경품쟁이 메일 따위가 들어있지요.

반면에 소셜 게임에서는 게임에 유저가 이미 들어 있을 거라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소셜 게임 관련 세미나에서 소셜 게임들은 이미 구축된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가 네트워크를 타고 흡사 바이러스와 비슷한 모양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 가까운 넥슨별은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 타는 대신 스스로 게임 내에 접속한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든 관계를 만들어주기 위한 다양한 게임 룰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 명이 필요하고, 여러 명이 있어야 유지되는 온라인 게임을 만든다면 이런 차이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면서도 애초에 게임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가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겁니다.

네. 게임 안에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없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배너 광고도 없고, 모니터를 경품으로 걸지도 않습니다. 마케팅 예산이 안 들어서 마케팅에선 좋아할지도 있겠군요. 그럼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요. 운 좋게 누군가가 처음으로 게임에 접속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우리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게임에 또 다른 사람이 접속해 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게임에 접속해 온 사람의 네트워크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현재 소셜 게임이 하고 있는 행동과 똑같습니다.

지난번에 저는 소셜 게임과 온라인 게임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이 글의 첫 문단을 다 적고 난 시점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써 내려가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온라인 게임도 게임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가정을 버리고 접근하면 소셜 게임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접근해야 합니다. 이미 게임은 게임 밖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셜 게임은 일반적으로 크로스 플랫폼과 브라우저 기반의 높은 접근성을 무기로 광고도, 이벤트도 없이 사람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온라인 게임도 이런 부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접근성 조정’, ‘네트워크를 타고 쉽게 퍼질 수 있는 방법 개발’ 등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에야 온라인 게임이 지금까지 십 수년 간의 노력으로 얻은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이나, ‘클라이언트 기반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겠지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 게임 내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가정.

해야 하는 것:

  • 접근성 개선.
  •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 속성.

더 잘 해야 하는 것:

  •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 클라이언트 기반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것.

앞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 스스로 만든 네트워크를 유지시킬 궁리.
2010/02/20 12:19 2010/02/2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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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펑키보이 | 2010/02/21 19:45 | 답글 | 수정

    ^^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케팅 예산을 안 쓴다고 마케터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예산과 관계없이 개발팀이 고생고생 해서 만든 게임을 많은 유저들이 즐겁게 플레이 하고 충분한 수익이 나오는 것이 즐거운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 준비하시는 작품 대박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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