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경쟁심.

경쟁심은 때로는 의욕을 증진시켜 전체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역효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제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란을 플레이하고 있었습니다. 카트에서도 리버스 트랙의 기둥을 매우 싫어하는 저는 그란에서도 유독 좁은 길이 많이 등장하는 코스에 약합니다. 단지 도로 폭이 자주 변하는 시가지 코스라면 얼마든지 달려주겠지만, 좁은 도로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코스들은 정말 달리기 어려워합니다.

아직도 그란4의 초반을 진행하는 제게 곤란한 코스는 바로 '이탈리아 시가지'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대부분 직선구간이 많아서 달리기 쉬운 코스입니다. 또, 길이 좁아서 주행라인을 그리기 쉽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상대 차량을 앞지를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제게 이 코스는 정말정말 어렵습니다. 좁은 길은 이상하게 벽에 대한 강한 공포심 같은 것이 있기도 하고, 좁근 길목에 대한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인지, 영 좋은 기록을 내질 못했습니다.

어쨌든 연습모드에서 이 이탈리아 시가지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어째 오늘따라 정말 환상적인 주행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운인지 실력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깔끔하게 이탈리아 시가지 코스 1랩과 2랩을 달렸습니다. 랩타임도 정말 마음에 들었지요. 그런데 무심코 3랩에 접어들었을 때 앞에 나타난 고스트가 영 맘에 안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서의 주행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이대로 달리면 좀 더 랩타임을 개선할 수 있을까 싶어서 고스트 뒤를 쫓아간 것이 화근.

어째 계속해서 코스를 돌아도 맨 처음에 낸 랩타임을 갱신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문제는 상대가 그냥 PS2의 CPU가 조종하는 차량이었다면 '아직 실력이 모자란가보다.'하고 포기하고 잤을텐데, 상대는 방금 제가 몰았던 그 주행 그대로인, 저와 같은 놈입니다. 그러니 그런 놈에게 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스트놈을 따라잡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같은 코스를 수십바퀴쯤 돌았을 때 즈음에서야 제가 도대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_-;

결국 오늘 일은 어이없는 미스테리로 남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정신이 들어서 첫바퀴를 그렇게 깔끔하게 달렸는지, 지금 와서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짤방은 전에 찍어뒀던 것 중에서.

2005/05/27 00:03 2005/05/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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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polarnara | 2005/05/27 08:06 | 답글 | 수정

    레이싱 게임할때, 자기 자신의 고스트를 이기지 못하면 정말 짜증이 나지요 _-/
    분명히 베스트 라인을 타고 코너를 돌았던 고스트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가려면 항상 지더라구요. 오히려 그냥 고스트 무시하고 그때그때 느낌오는 라인을 타면 이길 수 있었죠.

    그래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 걸지도 몰라요..(예가 틀린가;;)

  • 야쿠자 시나리오라이터 C씨 | 2005/05/27 09:44 | 답글 | 수정

    카트로 단련된 덕분이지요

  • 블루문 | 2005/05/27 09:48 | 답글 | 수정

    카트에서도 고스트가 있답니다(정말?) 루찌100정도를 들이면 타임어택이라는것을 할수가 있는데, 좋아하는 코스로 한바퀴를 먼저 달려보세요. 그러면 2번째 바퀴부터는 고스트가 등장해요. 자신의 베스트 주행을 그대로 재현하는 또한명의 자신이 같이 달리기 시작. CPU가 모는것이라면 의외로 이까짓껏!! 하면서 따라잡을수 있는데..그게 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이상하게 따라잡기가 어려워지곤 해요.(저도 그래요^^;) 평소 달린것보다 좀더 잘 달려야 이길수 있다는 무언의 프렛셔가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 게다가 자신의 베스트 주행이라서 그런지..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이니셜D같은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곤(;)

  • 아크몬드 | 2005/05/27 23:34 | 답글 | 수정

    고스트라는 것과 레이스를 할 수도 있군요..ㅎㅎ

    진다면..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요.

  • A2 | 2005/05/28 10:11 | 답글 | 수정

    고스트가 되는 PC용 레이싱 게임은 없나요?
    고스트란거 처음 알았습니다. 해보고 싶네요.

  • 밀피유 | 2005/05/28 12:59 | 답글 | 수정

    polarnara님: 아, 정말 '저거 방금 내가 돌았던건데!' 하고 생각하니 정말정말 어렵네요 =_= 특히나 제 고스트 뒤를 따라가면 무의식적으로 제 고스트의 주행을 따라하게 되더라구요. 코너에서 브레이크 밟는 시점이라던지 그런것들이요. 한번 고스트를 off시키고 달려봐야겠어요 ;

    야쿠자아저씨☆: 그러고보니 엊그제 카트로 볼때 유난히 8풀방에 약하신 분이 보이더군요. 새로운 발견.

    블루문님: 카트 리버스 코스 중에서 제가 정말 심각하게 기피하는 코스가 하나 있는데, 그 코스를 익히는거라면 100루찌정도 들여서 줄기차게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_=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좀 곤란한 코스가 하나 있어요. -_-;;;

    아크몬드님: 웬만한 레이싱게임에는 있는거같아요. 근데 이거 pc들보다 이기기 더 어려워요 =_=

    A2님: 음. 언듯 기억나는건 예전에 NFS 할때였던거같은데, 무의식적으로 달리다가 제 고스트를 보고 '저 개새끼!' 했던 기억이 ... ..ㄹ.ㄴㅁㄻㄴㄹ

  • 레이모쿠 | 2005/05/29 23:49 | 답글 | 수정

    왠지 그럴때면 뒤에서 미사일을 날리고 싶지 않을까요? ㅋㅋㅋ;;;
    전 자기부정을 잘하는 녀석이라 ^^;; 저건 내가 아냐! 라구요

  • yser | 2005/06/02 05:44 | 답글 | 수정

    한 마디로 그건, “과거의 자신에게 지고 있었다..” 인가요?
    은근히 화나는 일이기도 하죠. 왜 이전의 내가 달린 걸 앞지를 수 없는거야?! 하고 생각하며 악착같이 달려도 좁혀지지 않는 그 간격... orz

    이것을 제로의 간격이라고 명명합니다.
    -a-;

    p.s
    A2 님, 고스트가 되는 게임으로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SIN -사이버 그랑프리 2- 부스트팩'이 있습니다. (..명칭한번 되게 기네 -_-) 역시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스피드 감에 짜릿... >o< 다만 한 번 실수할 때 마다 부스트 속도차로 저 멀리 떨어져가는 고스트를 보면 자기와의 승부욕에 밤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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