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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반 동안 혹시나 잃어버릴까 무서워 영화 티켓을 모아 두는 바인더 맨 뒷 페이지에 넣어 두고 넣어둔 것을 잊어버릴 까봐 핸드폰 캘린더에 적어놨습니다. 어제 저녁에 회식에서 술을 있는 대로 마시고 집에 돌아와 가물거리는 정신에 덜덜 떨고 있는 핸드폰을 꺼내보니 '바인더 맨 뒷 페이지에서 내일 공연 티켓을 꺼낼 것'이라고 써있더군요. 핸드폰님의 명령에 따라 한달 반 동안 고이 모셔져 있던 티켓을 꺼냈습니다. 어느새 기다림이 끝나고 파이널 판타지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두시 반, 예술의전당 주변을 수천 오덕들이 뒤덮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는 다른 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입구 카페에 샌드위치 하날 시켜놓고 창가에 앉아 여친과 창 밖을 보며 서초 11번 마을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저 사람들은 뭘 보러 왔을 지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외형이나 행동에 보이는 특징만으로 구분하는 건 위험하지만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한 짐작은 잠시 후 콘서트 홀에 들어가 거의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파이널 판타지 오케스트라 디스턴스 월드 공연은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프로그램 구성이 재미없었고 '얼마나 좋을까'를 부르러 나온 이수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노래를 완전히 망쳤습니다. 오케스트라 편곡은 힘과 섬세함에 균형을 잃고 전곡이 비실거렸고 특히 금관악기는 맥 빠진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내한 공연임에도 영어로 떠드는 지휘자가 뭐라고 하는지는 각자 알아서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싼 수십 오덕들이 곡이 시작되는 순간 제목 먼저 맞추기를 하느라 쉴 새 없이 재잘거렸습니다. 작년의 잼프로젝트 공연이나 칸노요코 공연과 비교해 보면 진심으로 돈이 아까운 공연입니다.
일단 프로그램 구성이 재미없었습니다. 이쪽은 연출의 영역일 텐데, 사실 곡 하나하나와 화면 연출은 흥미로웠습니다. 초코보데왈츠를 연주하며 파판 전 시리즈에 걸쳐 초코보를 구경시켜 준다든지, 바밍 미션을 연주하며 파판7 초반 플레이를 그대로 보여준다든지 하는 부분들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여러 곡을 연결해야 하는 이런 공연에서 각 곡은 앞뒤 곡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이 연주됐고 그냥 가나다 순으로 정렬해서 연주해도 공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좋을까'를 부르러 이수영이 나왔습니다. 지휘자가 이수영을 소개하자 다들 환호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전날 술이라도 마셨거나, 신종플루에라도 걸린 듯 빌빌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내려갔습니다. 마이크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던데, 마이크가 이상했다고 해도 곡의 절반가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마당에 음향시설을 탓해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 공연에서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 거라고 희망을 가져 봅니다. 물론 저는 토요일 한 번으로 족합니다. :( 등장할 때 들려온 환호와는 달리 퇴장할 땐 박수소리조차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금관악기들이 우울한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처음에는 편곡이 이상한 게 아닐까도 의심했지만 파판 오케스트라는 이게 첫 공연이나 편곡의 첫 발표가 아닙니다. 적어도 10년 전부터 편곡해서 연주하던 곡들입니다. 그런데 상당히 맥 빠지고 잘 맞지 않는 연주를 들려줬는데, 특히 금관악기들이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습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황 엘범을 통해 수없이 듣던 연주와는 달리 금관악기들이 치고 나와야 할 부분에서도 빈둥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덕짓 하려면 모국어 포함 3개 국어는 기본입니다. 하도 복사질을 하다 보니 시장이 작아져 아무도 한글화나 정발을 하지 않는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자 유저들은 알아서 외국어를 익히기 시작해 수준급에 다다랐습니다. 일본어나 영어로 진행되는 해외 유명 개발자나 가수, 성우, 아티스트 등의 인터뷰에 통역을 끼우지만 통역이 입을 떼기 전에 이미 오덕들은 반응해 버립니다. 질문 시간이 되면 오히려 이쪽에서 영어나 일본어로 직접 물어보고 통역은 오히려 관객들의 말을 다시 관객들에게 통역하는 괴상한 일도 벌어집니다. 그리고 우리 오덕들은 이런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행을 담당한 지휘자가 영어로 떠들며 진행하는 모든 부분에서 한글 통역, 자막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덕들이 원래 외국어에 강하지만 이건 준비 부족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덕들의. 매너도 엉망이었는데, 제 왼쪽 오덕은 곡이 시작될 때마다 그 옆 오덕과 "칠이다", "십일이다" 라며 떠들고 앉았고, 그 뒤에 앉은 다른 두 오덕은 "이건 에어리스 죽을 때 나왔어" 라든지, "레노아 지금 보니 허접하다" 따위의 감상 평을 연주 도중에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덟 시 방향에 앉은 오덕은 남자목소리 톤이 높아 아주 거슬렸는데, 눈에 살기를 담아 두 번 마주쳐주니 조용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오덕들의 관객매너는 엉망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주 실망스러운 공연입니다. 만약 일요일 공연도 토요일 공연 수준이라면 저는 티켓을 환불 받을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다시 오겠다"는 이런 공연의 마무리 멘트와는 달리 영영 오지 않는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실망스런 경험이라고 그냥 가서 보고 듣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니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칸노요코도 잼프로젝트도 결코 다시 내한하지 않지요. :( 요약하면 구성도 연주도 관객도 그저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부디 토요일의 시행착오를 일요일에 만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처음으로 핸드폰으로 블로깅을 시도해 봤는데 생각보다 편하네요. 앞으로는 블로깅에 핸드폰을 좀 더 자주 써야겠습니다. :) )
이전의 데이터 유실 사고 같은 경험을 통해 데이터의 많은 부분을 구글독스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데스크탑의 증분 백업 사이는 점점 줄어들어 관리하기도 편해지고 커다란 디스크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웹 브라우저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파일을 꺼내 쓸 수도 있게 되었고, 프리젠테이션을 공유하기도 이전보다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구글 스토리지 200기가를 구입한 후에 생긴 변화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됐고, 만약 스토리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제 데이터가 어떻게 될 지 걱정해야 하게 됐습니다. 또 구글이 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게 됐지요. 그리고 데이터를 올릴 때마다 이 데이터가 구글 약관에 걸리는 파일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됐습니다. 역시 가장 큰 공포는 구글이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내 계정을 차단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잠시 검색해보면 갑자기 구글 서비스가 아무 말 없이 차단되어 곤란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날 애드센스 계정이 차단되었지만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고 문의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냥 몇 백 달러가 증발했지요. 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때문에 갑자기 계정이 삭제되어 동영상을 날린 분도 자주 보입니다. 이쯤 되면 빅 브러더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구글 홈페이지 어디에도 내 행동거지가 빅 브러더 눈밖에 나는 것이 아닌지를 물어볼 곳은 없었고, 알아서 약관을 잘 읽으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약관이라는 건 그쪽의 법무 스탭이 작성한 거고 법적으로 빈틈없이 작성되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는 아주 불친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몇 번을 읽고 문장을 육하원칙에 따라 나눈 다음 나와 구글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단어를 배치해 봐야 간신히 안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죠.
또 한가지 문제는 내가 가진 모든 파일이, 혹은 내가 작업에 사용하는 모든 파일이 언제나 내가 권한을 보유한 파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구글닥스 업로드 페이지에는 ‘법적 권한이 없는 컨텐츠를 올리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나에게 권한이 있다는 것은 내가 만들었거나, 내가 구입한 컨텐츠라는 의미인데, 위에 이야기했다시피 내가 가진 모든 컨텐츠를 내가 만들거나, 구입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잊어버린 논문 파일이 굴러다니고 프리젠테이션 파일이 굴러다니며 누가 캡쳐했는지 모르는 스크린샷이나 동영상들이 굴러다닙니다. 이들은 적어도 내 하드디스크 안에 있을 때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구글닥스에 올려 어디서나 사용할 생각을 하면 이거 괜찮은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약관에서는 내게 권한이 없는 파일을 파일을 공개해서 다른 사람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두거나, 저작권자의 신고가 있을 때만 대응하고 기본적으로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미국 법률을 지킨다고 적혀 있기는 합니다만, 어느 날 갑자기 계정을 차단해 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금까지 모습을 볼 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뢰할 만한 저렴한 스토리지 서비스를 제공 받는 것은 좋지만 이런 법적인 문제와 구글의 행정 처리에 대한 문제로 말미암아 내 파일을 구글에 맡기고 나서도 여전히 “구글 계정이 갑자기 차단될 때를 대비해 디스크를 하나 구입해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비스는 훌륭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입장과 설명을 들을 수 없는 행정 절차 때문이 일어난 웃기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
지난 토요일날 삼성역에 가는 김에 자전거를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성남에서 강남은 자전거로 다니기에 딱 적당합니다. 거리도 20~25킬로미터밖에 안되고 탄천 자전거도로와 한강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도로로 나갈 일도 별로 없습니다. 특히 삼성역은 삼성교까지 자전거도로로 나온 다음 몇 백 미터만 인도로 가면 되기 때문에 성남에서 자전거로 다니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으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는지 정부에서는 연일 자전거 도로를 만들겠다고 개드립을 치고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강남에 자전거를 가지고 가기 어려운 건 보관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도로를 아무리 잘 만들어서 그리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목적지에 도착해 보관할 수 없으면 땡입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강남구에서 삼성역, 학여울역, 수서역에 간지나는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로 출입증 신청을 하고 냅다 달려가서 출입증을 수령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출입카드가 없이는 애초에 들어갈 수도 없는 자전거 보관소라는 겁니다. 헌데 출입증을 받아 오자마자 강렬한 추위와 눈사태 엄습으로 한동안 엄두를 못 내다가 1월 말이 다 돼서야 투란도트를 보러 가는 길에 삼성역에 자전거를 가지고 갔습니다.

자전거 보관소는 삼성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에 있습니다. 삼성역 남동쪽 방향이라고 기억하셔도 될 겁니다. 뭔가 유리로 으리으리하게 지어놨는데, 2월 28일까지 시범 기간이라고 합니다. 아마 그 후로는 유료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정도라면 유료로 운영해도 기꺼이 돈을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출입카드가 있는 사람만 유리문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 도난을 보상하지는 않지만 나름 안에 CCTV도 달려 있어 도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은 대강 이렇게 생겼습니다. 밤중에 가면 가운데 불은 꺼져 있다가 자동으로 켜지기도 하고, 자전거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도록 만들어 놓기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열라 감동 먹었음) 자전거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아 파손 우려가 거의 없습니다. 일반 보관소에서 자전거 하나 넘어뜨리면 대단한 도미노 게임을 볼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 칸 각각에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식이라서 웬만해서는 다른 자전거를 내 마음대로 꺼내갈 수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민번에 주소에 전화번호까지 깐 사람들 뿐이고, CCTV님이 보고 계셔서 자전거를 도난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는 앞바퀴를 물려서 세로로 세워 두는 방식으로 보관합니다. 레일에 맞춰 앞바퀴를 밀어 넣고 버튼을 누르면 앞바퀴를 꽉 잡아 안으로 끌고 들어가 자전거를 세워 둡니다. 아마도 자전거가 차지하는 면적이 좁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자전거에 따라 스텐드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자전거도 스텐드가 없어 어디다 세워둘 때 아주 난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앞바퀴를 잡아 세워 두는 방법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아마도 자전거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편리하고, 곳곳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전거를 넣고, 안장에 헬멧을 걸어 둔 다음 문을 잠그고 마음 편히 투란도트를 보고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자전거는 안전하게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엄한 곳에 세워놓고 사라졌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조마조마 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말이었는데,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보관소가 아주 인기 있게 되어 자전거를 끌고 왔는데 자리가 없다면 상당히 끔찍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자전거 보관소는 훌륭합니다. 자전거를 어딘가에 보관할 때 겪는 곤란함을 한 번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보관 공간은 도난에도 안전하고 파손에도 비교적 안전합니다. 자전거를 들고 나올 때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조명은 내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켜집니다.
조낸 엄한 자전거 도로 짓는다고 강바닥 파내는 삽질을 하는 대신에 이런 끝내주는 보관소를 주요 역사에 설치하기만 해도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사람이 얼마든지 늘어날 겁니다. 비록 지금은 서울 시내에, 그것도 강남구 내에 세 곳 밖에 없고, 그나마 사전에 출입 카드를 발급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런 보관소라면 유료로 전환된다 해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강남구 자전거 보관소:
장점:
단점:
결론:
왜냐면 이번 설에는 출시되지 않을 테니까.
iPad을 보면서 이거야말로 부모님께서 사용하시기에 최적의 플랫폼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올 추석 때 iPad이 국내에 출시된다면 3G 지원 모델을 한대 사 들고 집에 내려갈 작정입니다. 오늘은 iPad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핸드폰에 멀티메일을 확인하는 방법을 말씀 드리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핸드폰에서 사진이 첨부된 멀티메일을 확인하는 방법은 스스로 설명하면서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서 문자메시지와 멀티메일은 서로 다른 메뉴로 들어가 확인해야 하는 걸까요. 어째서 서로 다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야 하는 걸까요. ‘이건 왜 그런 거야?’라는 질문에 제 스스로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연락에 전화와 문자를 사용하지만 흔해빠진 사진 한 장을 보내기 위해 매번 100원씩 내며 저해상도 사진을 불편한 방법으로 콩알만한 화면으로 불편하게 봐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멀티메일은 거의 활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큼직한 사진을 커다란 화면에서, 보낼 때마다 100원씩 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메일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메일을 사용하기 위한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컴퓨터 세트를 하나 사 들고 내려가 설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뭐… 동네 인터넷 회선 하나를 구입해 설치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랜선을 컴퓨터 꽁무니에 꽂고 네트워크를 설정하고 브라우저를 열어 메일 서비스에 로그인하는 것도 뭐 …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메모리카드를 뽑아 메모리카드 리더기에 꽂고 이 메모리카드 리더기를 USB 케이블에 꽂은 다음 메모리카드 디렉토리에서 하드디스크로 사진 파일을 가져와 사진 파일을 픽쳐 뷰어로 열어 확인하고 이걸 메일에 첨부해 보내는 건? … 뭐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들을 한번에 알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또,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구입해 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이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엔진오일을 갈아야 하고 기름도 넣어야 하고 소모품도 갈아야 합니다.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대강 어디가 이상한 것인지도 알아야 서비스센터에서 ‘그거 원래 그래요’ 드립에 당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인데, 뭔가 원하는 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어 이거 왜 이러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으면 컴퓨터는 순식간에 바보 기계상자가 되고 맙니다. ‘인터넷이 안돼’라는 간단한 질문에 전화로 응답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격 지원이요? 원격 지원이 가능하도록 설정하려면 얼마나 복잡한지 생각해보세요.
네. 이 골 때리는 모든 상황을 iPad로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G 네트워크로 구동되면 인터넷 연결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없애거나 납득할만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안돼” 라는 질문에 인터넷 설치기사를 부르거나 네트워크 설정을 확인하는 대신 ‘핸드폰 터지나요? 핸드폰 터지는 곳에서 하면 될 거에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정말 쉽습니다. 핸드폰 안테나가 안 뜨기 때문에 인터넷이 안 되는 거고, 기술적으로도 거의 맞는 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컴퓨터가 느려졌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플래시 배너 수십 개가 번쩍거리는 브라우저가 프로세스에만 떠서 자원을 먹고 있을까요? 일단 Ctrl + Shift + ESC 키를 눌러서 작업관리자를 띄워 ‘iexplorer.exe’ 가 있는지 확인하고 블라블라 … 그리고 이걸 부모님께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모릅니다. 대신 iPad라면 멀티태스킹이 안 되니까 어차피 느려질 가능성도 낮고 만약 느려졌다면 ‘아 그거요. 홈버튼 누르세요’ 하면 됩니다. 홈버튼 누르면 다 종료되고 초기화면으로 나올 테니까요.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어 조작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장점입니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눈앞에 있는 아이콘을 찍는데 왜 눈앞에 있지도 않은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화면에 있는 마우스커서를 움직인 다음에야 아이콘을 찍을 수 있을까요. 그냥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동작은 어떤 동작보다도 직관적이고 설명하기도 쉽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하려면 브라우저를 열고 번쩍거리는 플래시 배너 로딩이 끝나 주소표시줄에 반응이 없는 상태가 끝난 다음 www.gmail.com 을 친 다음 여기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세요’ 라고 말하는 것 보다 ‘이 편지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누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직관적입니다.
iPad은 이런 식으로 컴퓨터나 네트워크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제한된 기능을 가장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계로 원래 노트북에서 사용하던 기능을 모두 활용하고 싶다면 절대 어울리지 않는 기계입니다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사용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기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모님과 이메일 한 통 주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수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부모님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 추석에 iPad 3G 버전이 만약에 나온다면 사 들고 내려갈 겁니다. 지금 이것 보다 더 직관적으로 기기가 제시한 제한적인 기능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컴퓨터는 없습니다. :) 아. 웬만하면 저도 하나 사려구요, :)
메가박스에서 Met 오페라를 상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묘하게 갈 기회가 잘 닿지 않았습니다. 그간 상영한 토스카나 아이다는 좋아하는 푸치니와 베르디 작품이기는 했지만 제가 잘 알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 덕분에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그 유명한 ‘아무도 잠들 수 없다’를 들을 수 있기도 하고, 오후에 책 보고 있기도 싫어져서 갑작스레 예매한 다음 메가박스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간 건 아니고 추워죽겠는데 자전거를 가지고 갔습니다. :)
저는 시력이 나빠서 공연을 보러 가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웬만큼 앞자리가 아니면 공연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거죠. 거기 사람이 있고 그게 누군지도 알겠는데 그 사람의 표정이나 복장의 디테일 따위는 모르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4k 해상도로 보고 있는데 저는 DVD 해상도로 보고 오는 식입니다. … 제기랄. 그럴 거면 시력에 따라 가격을 따로 받으면 좋을 텐데, 그럴 가능성은 없군요. ㅜ_ㅜ 특히 오페라 같은 건 문제가 심각한데, 무대에 사람이 한 가득 있고 음향시설이 그저 그렇다면 심지어는 지금 떠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놓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화면에 확대해서 보고 싶은 것들을 카메라맨이 알아서 확대해주는 실황을 보니 오페라 공연도 상당히 보기 쉬웠습니다. 쉬웠다기보다는 시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것이 없어지니 훨씬 집중하기도 쉬웠습니다. 이쯤 되니 앞에 놓친 공연 두 개가 은근 아쉬웠습니다. 올 여름까지 계속해서 매달 공연 하나씩 상영하는 모양인데, 앞으로는 매달 한 번은 꼭 와야겠습니다.
좀 우울한 점도 있습니다. 일단 인터미션 뒤에 들어있는 Met 스텝 인터뷰가 상당히 길고 인터미션 시간까지 더해져 막과 막 사이에 시간이 꽤 깁니다. 그래서 중간에 기분이 좀 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오늘따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상영 실수가 두 번 있었습니다. 둘 다 인터미션 스크린 후에 인터뷰를 틀다가 일어났는데 수 초 동안이나 허옇게 뻗은 화면을 쳐다봐야 했지요. 또, 메가박스 M관 음향시설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소프라노 파트 볼륨과 나머지 볼륨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나머지 부분에 맞춰 볼륨 조절을 해놨는지 소프라노 파트 고음에서 신경 쓰이는 째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 아쉬웠습니다. :(
그리고! … 자막 만들었으면 한번 쯤은 기계 맞춤법 검사 정도는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둘러쌓여’ 쌓이긴 뭘 쌓여! –_-; 전부 다 틀린 걸 보니 한글에 서투른 분이 번역하신 모양입니다. 투란도트 공주 대사에 ‘투란도트는 뭐뭐 해요’ 따위의 대사도 있었는데, 이런 표현을 잘 쓰는 분야가 떠올라서 피식 웃었습니다.
자. 위에 이야기한 단점 말고도 한가지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려온 밍크코트 입은 어머니 두 명 + 10세 전후의 아이들 네 명이 시작부터 끝까지 세시간 내내 떠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오페라를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모양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만, 뒷자리에서 보니 아무리 봐도 아이들에게는 고문이었습니다. 일단 인터미션이 있다고 해도 세 시간을 집중하는 것은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애니메이션이나 아동용 영상처럼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시청각을 휘어잡는 요소도 없습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자막을 쳐다봐야 하는데 자막은 한도 끝도 없이 길지요.
어머니가 뭔가 설명해 주는 것 같지만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해 참수당하는 페르시아 왕자 이야기에서 참수를 뭐라고 설명할까요. 왕자의 목을 장대에 꽂아 높이 세워 두는 장면은 뭐라고 설명할까요. 내일 아침이면 다 같이 사형 당하게 생긴 베이징 사람들이 칼리프에게 가지라고 준, 칼리프 주변에서 노출한 채 춤 추는 여인들을 뭐라고 설명할까요. 그냥 왠지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데려왔지만 도저히 감당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 혼자 떠들고 있는 꼬라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한 20분 앉아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일어나서 통로를 뛰어다니더군요. –_- 물론 어머니가 따로 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끝날 때 보니 어머니는 뭔가 못마땅한 듯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었고 아이들은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 욕심도 좋지만 아동인지발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The Metropolitan Opera Live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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