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검색된 포스트 '1'건

  1. 2007/06/23  체육관. (7)

체육관.

체육관에서 선거할 때 난 어린애였다. 대갈통이 한참 크고 나서도 체육관에서 한 선거가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몰랐다. 선거는 동사무소에서도 하고, 학교 교실을 빌려서도 하고, 큼직한 강당 같은게 있으면 거길 빌려서도 했다. 근데 체육관이라고 한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근데 문제는 간단했다. 동사무소와 교실, 강당 따위에서 하는 선거는 여러 곳에서 하니까 문제가 없었던 거고, 체육관에서 한 선거는 거기서만 했으니까 문제가 있었던 거였다. 부끄럽지만 두 선거의 차이를 안 건 체육관 선거가 지나가고 십 몇년이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더 이상 체육관 한곳에서만 선거하지 않도록 변하는데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2002년 여름에는 월드컵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응원을 했다. 그땐 아직 학생이었는데, 시청 앞에 모인 거대한 인파를 학교에서 야외 공연장에 마련해 준 커다란 프로젝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내 주변에도 붉은 티를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2002년 겨울부터 서울에 저주 올라올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일이 생겨 처음 서울에 올라오려던 첫날이 12월 19일이었다. 아침 일찍 올라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집과 논 하나를 사이에 둔 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하고 있었다. 논 하나를 건넜다가, 도로 집에 돌아가 투표 안내문을 들고 나와 잠시 학교에 들렀다. 그게 내 첫 대선 투표였다.

두어 해가 지난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던 봄날 저녁에 여의도에 나갔다. 여의도라면 꽃 피는 계절이 아니면 볼 거라곤 전두환 대머리처럼 생긴 흉물스런 건물 뿐이지만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 닭집 앞에 매달린 TV를 보니 한사람쯤 안가도 머릿수는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안 가면 오랫동안 찝찝할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나루역에 내려 한참을 걸었다. 뭔가 먹고싶어 근처에서 파는 닭꼬치를 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냥 배고픈 채로 걸었다. 누군가가 종이컵과 촛불을 나눠주더라. 옆사람의 도움을 받아 촛불에 불을 붙여 들고 있었다. 뭔가 외친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은 안난다. 그냥 외쳤다.

그리고 나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뭐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사건건 헌법재판소가 등장했고, 국민의 의견이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누가 무슨 개소릴 하건 그래도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걸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비록 물리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의견을 교환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엊그제 공연 때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꼴통들이 코미디 몇 마디를 주고받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현수막을 만들고, 마이크와 음향시설과 조명을 준비하기 위해 며칠을 허비하는 사이에 우리는 모니터 앞에 다가앉아 내가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일 수 있었고, 남들이 지껄인 글을 볼 수도 있었다. 우린 그냥 몇 분이면 됐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꼴통들이 '선거법을 위반하며 재집권의 야망을 불태우는 사람이 누구죠?', '노무현이요~' 라고 외치며 코미디를 하는 사이에, 우린 나름대로 좀 더 깊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얘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의 꼴통들이다.

어제 재미난 소식을 들었다. 어제로부터 180일 동안에는 인터넷에 선거에 관련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였다. 사실 선거관리위원회가 없다면 우린 아직도 투표 당일 문 앞에 놓인 돈봉투와, 평소엔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던 아무개 신문이 수십부씩 찍혀 나오는 꼴을 또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2002년 겨울에 우리 집 앞에도 있더라. 그 아무개 신문. 나중에 보니 그게 선거법 위반 어쩌구 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별 일 없이 넘어가더라. 그 신문 1면엔 그날 대통령이 된 아무개가 병신짓 한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한 활자로 찍혀 있었다. 그래도 그 아무개는 대통령이 됐다. 사람들이 선관위에 물어본 모양이다. 멋지다. 왜 나는 그 정도 행동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선관위에 전화하는 건 선거법 위반이 아니잖은가.

선거는 정치이다. 선거는 정치와 관련이 있다. 웬만한 사안에 대해 입을 여는게 어려워졌다. 선관위의 규정은 모호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좋은 법조인을 대동할 수 있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 인터넷으로 떠들 수 없다면 그냥 우리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앞 계단에 모여 '말도 안돼는 멍청한 무슨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을 선동하는게 누구죠?', '아무개요~' 라는 코미디를 하며 시간을 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럴 시간에 우린 먹고 살아야 한다. 하루하루 일하지 않으면 당장에 먹을 게 없는 마당에 누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앞 계단에 모일 것이며, 누가 수억원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가능하다. 그냥 가지고 있는 집 몇 채 중 하나의 가격이 오르면 거 하나 팔면 재판 몇 번은 족히 할 돈이 나온다. 대강당 앞 계단에서 며칠씩 코미디를 해도 매일 점심을 검은 자동차 타고 30분을 나가 깔쌈한 동네의 좋은 식당에서 먹어도 괜찮다.

불행히도, 그들의 모호한 기준으로 우리는 선거와 관련이 있는 정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180일 동안은 말이다. 그래. 분노하고, 떠들고 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를 잡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된다. 아무개는 말하셨다. 부동산 세금이 너무 비싸다고. 우리에게 그들이 고용한 법조인과 싸울 힘이 있는가. 하지만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남아있다. 인터넷 상에는 함부로 떠들 수 없을 것이다. 떠들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우린 다 안다. 글에 나온 '무슨'과 '아무개'가 뭘 말하는지. 우린 어제로부터 180일 동안 분노를 참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선거날 가서 분노의 한 표를 행사하면 된다. 양치질보다 더 분노를 내보내는데 좋은 방법이 바로 선거이다.

그래도 우린 체육관 밖에서 손가락 빨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할 수 있는게 많잖은가.

추신.
  1. 사진의 화질이 낮은 건, 꼴통 사진에 네트워크 자원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청와대블로그 밥통들아. 왜 멀쩡한 텍스트를 이미지로 올려서 검색도 안되게 만드니.
2007/06/23 13:20 2007/06/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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