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검색된 포스트 '130'건

  1. 2009/11/01  자원 과다 사용 (4)
  2. 2009/05/17  남부터 의심하다
  3. 2009/01/01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나 (2)
  4. 2008/12/15  하지만 대단한걸! (12)
  5. 2008/11/16  폭력적인 이름 짓기

자원 과다 사용

USB 포트가 부족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난주에 기어코 7포트 짜리 허브를 사고 말았습니다. USB에 붙이는 기계라고 해봐야 키보드, 마우스, 메모리카드 리더기가 전부인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 둘씩 붙이다 보니 어느새 개수가 늘어나 버렸습니다. 아. 그러니까 저 7포트 짜리 허브는 두 번째 허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USB 포트 14개가 책상 위에 늘어져 있는 거지요.

usbports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 줄은 키보드, 미니USB케이블, 마우스, 둘째 줄은 블루투스 동글, 외장하드, 카메라, 프인터, 포토프린터, 웹캠, 핸드폰 케이블입니다. 원래는 훨씬 더 적은 포트만 가지고도 적당히 안 쓰는 기계는 빼 놓고 사용했지만 어느 순간 이게 너무 귀찮아지더군요. 그래서 그냥 포트를 늘리면 편하겠다 싶어 포트가 많이 달린 허브를 사 보니 이 꼴입니다.

언제나 사용 가능한 포트가 있고, 굳이 다른 USB 기계를 뺐다가 끼우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모든 USB 기계가 컴퓨터에 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필요한 기계는 키보드, 마우스, 외장하드 정도이고, 나머지는 포트 한 두 개만 가지고도 돌려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전원을 따로 먹는 USB 허브를 두 개나 달고 거기에 사용하지도 않는 기계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전기를 먹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었습니다.

전기 외에도 집에서 저런 기계들을 가지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로 컴퓨터를 사용하고 외장하드에 백업을 하고, 프린터로 사진을 뽑고, 미니 USB에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 이외에는 나머지는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입니다. 잠시 끼웠다 뺐다 하기가 귀찮아서 이런 식으로 기계와 자원을 굳이 낭비하지 않아도 조금만 귀찮으면 훨씬 적은 자원으로도 원래 하던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기계와 자원에는 전원 플러그와 랜 케이블이 있고, 이쪽에도 과하게 사용하는 것들을 ‘과연 정말로 쓸모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좀 줄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2009/11/01 00:44 2009/11/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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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터 의심하다

오랫동안 들고 다니던 반지갑이 꽤 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커다란 장지갑에 비하면 반지갑은 반도 안 되는 크기이지만 어째 한 손에 붙잡기 부담스럽단 느낌입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회사에서 입사 기념으로 줬던 명합지갑에 눈이 갔습니다. 원래는 간단한 신분증인 명함 정도를 넣으라고 만든 것 같지만 가트 몇 장과 약간의 현금을 넣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쓰는 카드를 작은 지갑으로 옮기고 전에 쓰던 큰 반지갑은 가방에 넣고만 다녔지요.

그렇게 지갑을 바꾸고 첫 출근 하던 날,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문제를 만났습니다. 원래 버릇 대로 반지갑을 가방에서 꺼내 개찰구에 갖다 댔는데 개찰기가 아무 반응도 없는 겁니다. 이상합니다. 일단 바로바로 지나가던 개찰구 앞에서 몇 초를 어리둥절하며 출근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나쁩니다. 살짝 짜증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며 저는 그 옆에 있는 개찰구로 갔습니다. 분명 방금 전에 반응이 없던 개찰기는 뭔가 기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그 옆 개찰기도 마찬가지로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뒤로 물러나 지갑 안을 보니 교통카드로 쓰는 카드가 없었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제 밤에 다른 지갑으로 카드를 옮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지갑도 가방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집까지 돌아가는 사태는 면했습니다. 그리고 제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주변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얼마 전부터 엑박으로 게임을 하다 보면 화면에 수상한 녹색 노이즈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이즈가 일어나는 범위가 늘어났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엑박은 사람들이 레드링 뜬다고 난치 치는 바로 그 즈음에 생산된 모델이라 ‘아 씨바 나한테도 레드링이 찾아오는가’ 싶었지요. 그리고 한 번 수리 보내면 한 달은 족히 걸린다는 악명 높은 엑박의 수리 기간도 생각났습니다. 일단은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객센터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답장이 왔습니다.

답장은 꽤나 길었지만 대충 요약하면, 1. 게임 DVD에 먼지가 있나 확인, 2. 하드드라이브 없이 게임 구동, 3. 새 게이머태그로 테스트, 4. 연결 케이블 확인, 5. TV를 바꿔 보라, 6. 대시보드 화면 초기화, 그래도 안 되면 고객센터로 문의를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해봤지만 다른 모니터로 바꿔 보지는 않았습니다. 바꿀 다른 TV도 없었고 모니터 두 대를 바꿔 끼워 보기에는 배선이 너무 복잡하게 되어 있어 별로 손 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노이즈가 일어나는 상황에 디스플레이 자체를 바꿔보라니 어이가 없기도 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어이 없는 답장이 왔다’며 고객센터의 성의 없음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냥 노이즈가 보이는 채로 엑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컴퓨터와 엑박의 배선을 모두 다시 하게 됐는데, 같은 모니터 두 대를 서로 반대 방향에 놓게 됐습니다. 배선을 다 마치고 컴퓨터를 켰는데 윈도우 바탕화면에 보라색 잔상이 나타나더군요. 화면 왼쪽 위에 있는 아이콘이 보라색으로 변해 뿌옅게 화면 가운데 쯤에도 있었습니다. ‘아 이사오면서 컴퓨터가 바보됐나’ 싶었습니다. 이삿짐 센터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할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모니터 두 개를 서로 바꿔봤습니다. PC쪽 모니터에는 노이즈가 사라졌고 엑박쪽 모니터에는 다시 예의 녹색 노이즈가 돌아왔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모니터 문제였고 지난번에 엑박 고객센터에서 보내온 답장이 옳았습니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돌아보면 제 사고방식 자체가 일단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면 우선 주변부터 의심하고 보는 식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찝찝했습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이것 저것 의심해 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순서가 일단 나에서 주변으로 나가는 쪽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05/17 01:59 2009/05/1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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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나

'집단 떼쓰기 문화'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닦지 않아 지저분해진 흰색 키보드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구도심 일대를 가득 매운 촛불, 비록 보도되지 못했지만 바로 어제 저녁에도 보신각 일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외침 이 모든 것들이 '집단 떼쓰기 문화'라는 말 한 마디에 멈춰섰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의 원리에 대해 가르쳐야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들. 가만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그들은 사용자이고 우리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들은 정치인이고 우린 그냥 노예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것을 먹을 수도, 진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잘못됐습니다. 비록 고등학교 때 처음 정치 과목에서 국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아련하게 날 뿐이지만, 우리가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지는 권리,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에 가지는 권리, 우리가 노예들이기 때문에 가지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꾸벅꾸벅 졸면서나마 배운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부당하게 안전하지 않은 것을 먹지 않을 권리가 있고, 직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고, 진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결코 집단 떼쓰기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에 회사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불황의 기운을 맨 처음으로 맞이하는 택시기사 입에서 '귀족 노조는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스스로 노동자이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여전히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올해는 왜 그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거기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잘 알 수 있도록 아무 생각 없이 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01/01 23:52 2009/01/01 23:52

하지만 대단한걸!

며칠 전에 작은 컴퓨터를 하나 샀습니다. 기준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넷북'이란 범주에 드는 컴퓨터인 모양입니다. 인텔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한 컴퓨터가 기준인가 했는데, 가끔 데스크탑에도 쓰이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크기가 작아서 그런가 하면 또 UMPC들이 버티고 있으니 정확히 이게 왜 넷북이라고 불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스토리지가 아주 작아서 뭔가 하려면 어떻게 스토리지 사용 없이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지요.

빅뱅이론을 보고 있습니다. 한창 우울한 도중에 신나는 드라마를 보게 돼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즌 1의 에피소드 9에서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전등에 수신기를 달고, 인터넷을 통해 집안의 여러 가지 기기들을 조작하는 내용인데요, 겉보기엔 전등이 켜지는 정도이지만 명령을 내리는 노트북과 전등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생각해보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하워드의 설명대로 신호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일어나는 대단한 일이지만, '마트에서 유니버설 리모컨 하나 사면 되지 않아요?'라는 한 마디에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이런 내용을 며칠 전에 산 컴퓨터로 침대 위에서 수영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bbt

생각해보니 제가 침대 위에서 수영하며 노트북으로 빅뱅이론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일단, 이 컴퓨터에는 스토리지가 8기가밖에 없고, 운영체제와 페이지 파일과 하이버네이션을 위한 예비 공간과 드라이버와 최소한의 기본 프로그램만으로도 아슬아슬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돌리기에 충분한 사양이지만 도통 동영상을 볼 수가 없지요. 그래서 파일 서버에 무선으로 연결해 동영상을 봤습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요.

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냐면, 제가 침대 위에서 엔터키를 눌러 곰플레이어를 실행시키면 이 신호는 공기중을 날아 무선공유기로 넘어가고, 무선공유기에서 FTTH 모뎀을 거쳐 지역 ISP로 날아간 다음, 바다를 건너 LogMeIn 사의 서버에 접속해 제가 요청한 파일 서버가 어디 있는지 찾아낸 다음, 다시 바다를 건너 지역 ISP로 날아와 제 FTTH 모뎀으로 돌아와 무선공유기까지 온 다음, 유선으로 물려 있는 스위치 허브를 한 바퀴 훑어 지금은 파일서버로 사용되는 구형 노트북에 물려 있는 USB 스토리지에 있는 동영상 파일을 읽어낸 다음, 다시 스위치 허브와 무선공유기를 거쳐 공기중을 날아 제 노트북으로 돌아와 동영상을 보여주는 겁니다!

... 사실은 침대에서 기어나와 책상 위까지 걸어와서 파일 서버에 윈도우 파일 공유로 공유되어 있는 동영상 파일을 그냥 보면 되는거지만 ... 일단 침대에서 나오기도 귀찮고 할 수 있잖아요! ... 내가 고화질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해서 보는데 제 노트북과 제 파일서버 두 대를 제외하고도 전 세계의 최소한 석 대의 서버와 고속 인터넷 회선이 동원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 결과는 결국 동영상이 나오는 것 뿐이긴 하지만요. [......]

2008/12/15 00:01 2008/12/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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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이름 짓기

지하철을 오가다가 문득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봤습니다. 지하철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로 말하자면 실컷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중인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라며 아무 의미 없는 병신 같은 광고를 하기도 하고, 힘들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앞에 멀쩡한 에스컬레이터를 세워놓고서는 '전기 절약' 이딴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합니다. 이런 포스터들을 기획한 사람의 머리속엔 쥐새끼만 들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ziral

이 포스터를 보고 좀 찜찜했습니다. 분명 그럴싸한 내용입니다. 전기를 아낀다며 꺼 버린 에스컬레이터와 발 한짝 들여놓으려니 불같이 성네는 노인네들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하철 이용을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찜찜한 이유는 이 서비스의 이름 때문입니다. '교통약자 도우미' ... 꼭 이딴 이름을 지어 넣었어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아 그러면 화장실에 그런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머리에 쥐새끼만 든 사람들은 '아! 그럼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면 되겠군'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교통약자 도우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꺼져 버린 에스컬레이터와 노친네들에게 점령 당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굳이 그런 사람들을 '교통약자'라고 불러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더 편한, 더 자연스러운 이름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아무 고민 없이 정책 입안자와 기획자의 폭력성과 이 포스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없는 시선이 그대로 묻어나는 포스터였습니다.

게다가 이 포스터는 '플랫폼'에 붙어 있습니다.

2008/11/16 22:50 2008/11/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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