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성': 검색된 포스트 '2'건
- 2009/08/24 엑셀을 쓰려면 IQ 150 이상일 것 (9)
- 2009/06/25 비밀번호 마스킹 (4)
‘난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어.’
방금 저는 엑셀 2007에서 파일 하나를 공유 모드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파일을 공유 모드로 만들어 네트워크 드라이브에 던져 두면 아무나 동시에 열어서 마구 편집할 수 있고 편집한 내용을 추적할 수도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회사에서는 늘 이 기능을 사용했는데, 집에서 이 기능을 사용하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엑셀 파일을 새로 만들고 파일을 공유 모드로 설정한 순간 이런 대화상자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써있는지 잘 안 보이지만 억지로 읽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통합 문서에 대해 개인 정보를 설정했으므로 이 통합 문서를 공유할 수 없습니다. 이 통합 문서를 공유하려면 Microsoft Office 단추를 클릭한 다음 [Excel 옵션]을 클릭하십시오. [Excel 옵션] 대화 상자에서 [보안 센터]를 클릭한 다음 [보안 센터 설정]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개인 정보 옵션] 범주에서 [저장 시 파일 속성의 개인 정보 제거] 옵션 옆에 있는 확인란 선택을 취소하십시오.’
여기까지 읽은 다음 정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이 미친 새끼야?’
일단 처음 읽고선 저게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공유모드로 설정이 안 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통합 문서에 대해 개인 정보를 설정'했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몰랐습니다. 방금 새 파일을 열고 바로 저장한 거라 저는 아무 것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튼 저는 빨리 공유모드로 파일을 설정하고 자러 가고 싶어졌으므로 다음 지시사항을 읽어봤습니다. ‘음. 일단 오피스 버튼을 누르고 엑셀 속성을 클릭하라는 거군.’ 여기까지 읽은 다음 그대로 수행하고 보니 아까 대화상자에 뭐라고 써있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다시 창을 닫고 다시 저 대화상자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또 읽었습니다. ‘음. 일단 오피스 버튼을 누르고 엑셀 속성을 클릭한 다음 … 보안 센터를 클릭한 다음 … 보안 센터 설정 단추 … 개인 정보 옵션 범주 …아 씨발! 내가 천재냐? 이걸 어떻게 기억해!’ 라고 소리친 다음 창을 복사해 메모장에 붙여 넣고 엔터를 눌러 아래처럼 정리했습니다.
‘이 통합 문서에 대해 개인 정보를 설정했으므로 이 통합 문서를 공유할 수 없습니다.
이 통합 문서를 공유하려면 Microsoft Office 단추를 클릭한 다음
[Excel 옵션]을 클릭하십시오.
[Excel 옵션] 대화 상자에서 [보안 센터]를 클릭한 다음
[보안 센터 설정]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개인 정보 옵션] 범주에서
[저장 시 파일 속성의 개인 정보 제거] 옵션 옆에 있는 확인란 선택을 취소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메모장을 화면 적당한 곳으로 치운 다음 힐끔힐끔 메시지를 쳐다보면서 간신히 체크를 끄라는 체크박스를 찾아 체크를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 개새끼들-_-‘ 애초에 이런 조작을 대화상자 하나로 덜렁 알려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다가 그 조작이 위처럼 여섯 단계를 거쳐야 해서 한 번에 보고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자. 일단 대화상자 구성을 위처럼 단계 별로 표시해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화상자는 닫기 전에는 다른 조작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위 조작은 절대 대화상자로 나타내서는 안됩니다. 그 잘 만든 엑셀 도움말로 나타냈다면 한 단계, 한 단계씩 따라갈 수 있었겠지요.
유저는 메뉴나 체크박스가 실제로 어느 메뉴의 하위에 달려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 체크박스까지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조금만이라도 더 생각했다면 제가 바꿔야 했던 체크박스를 대화상자 안에 넣고 나중에 어디서 바꿀 수 있는지를 알려주든지, 그 잘 만든 하이퍼링크 하나 걸어서 누르면 바로 체크박스가 달린 대화상자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았을 겁니다.
결국 엑셀 파일을 공유 모드로 설정해 사용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과정이 아주 아주 불쾌했습니다.
‘비밀번호를 감추지 마라?’를 보고 생각해봤습니다. 글의 내용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킹 하는 것이 실제 보안에 별 도움이 안 되며 비밀번호를 정확히 입력했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사용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할 경우 마스킹 때문에 곤란을 겨끈 적이 있습니다. 비밀번호는 ‘●’ 문자로 나타나는데 비밀번호 입력란이 비밀번호 길이보다 짧다면 비밀번호를 몇 글자쯤 입력했는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기나긴 비밀번호를 단숨에 입력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타이핑 실력을 믿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웬만큼 긴 비밀번호는 입력하다가 중간에 한번쯤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재앙이 시작됩니다. 어디까지 입력했는지 잘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입력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입력해야 합니다.
사실 이건 별 문제가 아닙니다. 키보드를 몇 번 더 두드리는 건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상 큰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좀 귀찮고 짜증이 날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게 아주 귀찮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키보드가 없는 기계에서 로그인을 하면 어떨까요. 엑박 라이브에 로그인할 때 비밀번호를 입력하면서 화가 뻗쳐 패드를 던질 뻔 한 경험이 있습니다. 엑박에서는 키보드를 붙이지 않는 한 문자 입력을 스크린 키보드에서 커서를 패드로 움직여 입력해야 합니다. 키보드와는 달리 입력 속도가 느리고 중간에 입력을 방해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키보드에서는 ‘a1b2c3d4’ 같은 문자열을 입력하는데 별로 비용이 들지 않지만 패드로 이런 걸 입력하다 보면 내가 방금 ‘c3’을 입력했는지 ‘d4’를 입력했는지 헛갈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냥 비밀번호를 보여주면 안 돼?’ 라며 짜증을 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요.
또 모바일 기기에서 로그인할 때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쿼티 키보드가 달린 블랙잭을 사용할 때도 방금 입력한 글자가 제대로 입력됐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분명 비밀번호를 제대로 입력한 것 같은데 비밀번호를 잘 못 입력했다고 나오면 ‘내가 비밀번호를 아예 다르게 입력한 것인지’ 아니면 ‘오타가 난 것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어 답답했습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두 번 로그인을 시도해서 실패하면 더 이상 로그인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은 숫자판만 달린 전화로 바꾸면서 더 심해졌지요. 지금 쓰는 전화에서 모바일 메신저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는 입에서 불을 뿜을 겁니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밀번호를 가리는 것은 여전히 보안에 도움이 됩니다. 뒤에서 누군가 날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물론 집에서 엑박 라이브에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는 등 뒤가 벽이라 문제 없겠지만, 회사에서 어딘가에 로그인 한다면 비밀번호를 가리는 기능은 필요합니다. 단지 위에서 이야기한 귀찮고 짜증나는 문제가 있을 뿐이지요.
봄부터 사용하고 있는 스카이프 와이파이폰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기본적으로 비밀번호를 가리지만 맨 마지막에 입력한 글자 하나는 보여줍니다. 비밀번호를 주욱 입력하면 앞글자는 마스킹 되지만 뒷글자는 확인할 수 있어 오타를 줄일 수 있지요. 덕분에 거지같은 집 AP의 기나긴 패스워드를 아슬아슬하게 오타 안 내고 입력할 수 있었지요.
비밀번호를 가려서 보여주는 건 싼 비용으로 기본적인 보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키보드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러 가지 귀찮은 상황이 일어납니다. 스카이프 와이파이폰의 예처럼 마지막 글자를 보여준다든지, 몇 글자마다 컴마를 찍어 글자 수를 보여주는 정도로 타협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누군가 뒤에서 쳐다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면 아예 비밀번호를 보여주는 쪽이 실수할 가능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