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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겪은 보안 문제 - 반도에선 이메일만이 살길.

나름 로그인 보안이나 스토리지 암호화, 네트워크 통신 암호화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스워드는 ‘1Password’가 랜덤으로 생성한 것을 사용하고 덕분에 하나의 패스워드는 하나의 로그인에만 사용했습니다. 어지간한 스토리지는 암호화 되어 있고 제가 관리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최소한 ‘업계 표준 수준’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 두 곳과 조선반도 전용 인증 서비스 한 곳이 털리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귀찮음 때문에 방금 나열한 원칙을 깬 어딘가에서 패스워드가 털렸고 그 덕분이었는데, 과정을 좀 설명해 보겠습니다.

며칠 전 한밤중에 아키에이지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제가 패스워드를 방금 바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려고 자리에 누워 알람을 맞추는 도중이었는데 무슨놈의 패스워드 리셋인가 싶어 도로 일어나 노트북을 열고 아키에이지 홈페이지에 접속해 패스워드 리셋을 시도했습니다. 휴대전화 문자 인증을 요구했는데 이걸 시도해보니 이용량이 많다며 인증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용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싸구려 대행사를 아무렇게나 쓰는 모양입니다. 여튼 서너번 시도해도 안되길래 그냥 자고 다음날 오후에 다시 시도해서 패스워드를 바꿨습니다.

오늘 메일 두 통이 왔습니다. 하나는 아이핀 패스워드가 변경되었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배틀넷 패스워드가 변경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란다에서 꽃 사진 찍고 있었으니 분명 제 또 다른 인격이 패스워드를 바꿨을 리는 없었습니다. 일단 아이핀 나부랭이보다는 내 배틀넷 패스워드가 더 소중하므로 일단 배틀넷에 갔는데 잘 생각해보니 여기 패스워드를 리셋하려면 아이핀 패스워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이핀 패스워드를 리셋하러 갔습니다.

아이핀은 서비스를 맨 처음 시작할 때 한번 가입해 놓고 쓸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 다시 가보니 서비스 업체가 왕창 생겨났고 로그인할 때마다 아이디가 중복이라며 개 쌩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아이핀 홈페이지는 믿을 수 없을만큼 불편한데, 사이트 생긴 것을 보면 어디서 쌍팔년도 웹디자이너를 시급 100원에 데려다가 두어시간 만에 만들어낸 인터페이스입니다. 이건 인터페이스고 뭐고 고려하고 자시고 한 것이 없고 그냥 간신히 동작만 하는 모양새입니다. 여튼 패스워드를 바꾸러면 아이핀 아이디, 내 이름을 넣고 인증 방법을 선택하는데, 신용카드 인증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딴 병신 사이트에 신용카드 번호를 잘도 입력하게 생겼군요. 그냥 전화번호를 넣고 인증을 거쳐 패스워드를 바꿨습니다.

이어서 배틀넷 홈페이지에 가서, 방금 바꾼 아이핀 패스워드로 로그인을 한 다음 패스워드를 바꿨습니다. 배틀넷도 비슷하게 내 계정과 내 이름을 넣고 아이핀 인증만 하면 패스워드를 바꿀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서 아이핀과 배틀넷이 동시에 털린 이유는 제가 아이핀 패스워드를 ‘짧고’, ‘외우기 쉽고’, ‘허접한 사이트에 사용하는’ 것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 패스워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1Password’가 자동 생성해 주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가끔 로그인 하는 사이트는 전부 이 패스워드를 사용합니다. 제가 외울 수 없어서 언제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다른 하나는 병신 같은 사이트에 앞으로 영원히 로그인할 일이 없을 것 같고 지금 당장 저 서비스를 딱 한 번만 사용하고 싶은데 가입하라고 지랄을 떨 때 아무렇게나 입력하는 패스워드가 있습니다. 아마 이 패스워드를 아이핀에 넣어 둔 것이 화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핀 패스워드가 털리자 바로 아이핀에 연결된 배틀넷이 털린 것으로 그렇게 추정했습니다.

아이핀 패스워드는 최대 20글자까지 설정할 수 있는데, 조선반도 웹사이트가 늘 그렇듯 특수문자 사용 없이 영문자와 숫자만 사용 가능한데다가 신비롭게도 숫자를 8글자 이상 써야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공격자에게 20글자 중 적어도 8글자는 숫자라서 0~9 까지만 시도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또라이새끼가 이런 정책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일 오전에 출근하다가 사고로 죽길 바랍니다. 여튼 아이핀 패스워드를 ‘1Password’로 관리하기 시작했으니 아이핀에 연결된 다른 로그인이 털리는 일이 없길 기대합니다. .. 물론 아이핀 패스워드 리셋 과정으로 봐선 내 행세를 한 누군가에 의해 쉽게 털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만. :(

이번 경험으로 인터넷 로그인 보안의 핵심은 이메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상의 문제를 인지하게 해준 것도 이메일이었고 패스워드를 리셋하는 과정에 휴대전화와 이메일을 사용해 인증을 해야 했습니다. 또 신용카드 번호 보다는 이메일 계정을 통한 인증이 조선반도 보안에서는 좀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이메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만약 이메일이 털린다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내가 패스워드를 얼마나 길고 까다롭고 또 다른 사이트와 다르게 설정해 놓았다고 하더라고 이메일을 통해 리셋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일을 겪고 나서 한동안 귀찮아서 꺼놓았던 2차 인증 옵션을 켜고 로그인 할 때마다 랜덤 번호를 추가로 입력하도록 해놨습니다. 아이핀이고 공인인증서고 나발이고 조선반도에서 ‘패스워드’를 사용해 로그인하는 모든 행동의 맨 마지막은 이메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메일이 털리면 정말 끝장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메일 로그인 하나만은 보안에 크게 신경 써야 합니다. 적어도 반도국에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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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을 만들었다

윈도우 8 이야기입니다. 윈도우 8이 나왔을 때 진심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맥을 사용했고 윈도우는 반도국 웹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와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윈도우 8은 컨슈머를 대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업무용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다못해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업무에 의미 있는 수준의 생산성을 가지고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죠. 아이패드로도 ‘세상에 마우스란 존재하지 않아’라고 자기최면을 건 다음에야 뭘 만들어낼 수 있는 마당에 말입니다. 그러다가 와콤 시스템에 뿅가 슬레이트 PC를 구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에서 윈도우 8을 사다가 윈도우 7이 깔려 있던 슬레이트 PC에 설치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하여 관심도 없던 터치스크린 윈도우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윈도우 8은 이 이미지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들 예쁜 ‘메트로 인터페이스’에 집중하지만 그건 윈도우 8의 절반일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인 ‘데스크탑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살펴봐야 윈도우 8이 어떤 환경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 8은 터치 인터페이스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지만 지금까지 20여년의 세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를 죽도록 괴롭혀 온 하위 호환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OS X’을 발표하면서 시스템 9를 관 속에 처박아버리거나 뻔뻔하게 ‘이번 버전부터 로제타 지원은 없어’라는 식의 무책임한 애플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하위 호환이라면 목숨을 걸고 지켜 왔습니다. 윈도우 95와 심시티 2000이나 윈도우 7에서도 돌아가는 비즈칼크의 전설은 다들 아실테고, 이 기조는 터치 인터페이스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윈도우 8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러니까, 메트로 인터페이스를 도입하고 나서도 데스크탑 인터페이스를 차마 치워버릴 수 없었던 겁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메트로와 데스크탑은 서로 조작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메트로는 손가락으로, 데스크탑은 마우스 커서로 조작할 것을 예상하고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전자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후자는 20년 전부터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서로 다른 조작 환경을 하나로 합쳐 바로 옆에 갖다놓고 키 하나만 눌러 양쪽을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도가 없었다는 것 뿐입니다.

스티브 발머가 윈도우 7이 깔린 슬레이트를 들고 시작 버튼을 한 열번 시도해서 간신히 누르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윈도우 8에서도 데스크탑은 똑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윈도우 기본 인터페이스에 기존 툴바보다는 조금 더 큰 리본 인터페이스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리본 각각은 내 새끼손가락에 비해서도 너무 작았고 이걸 누르려면 손가락 끝을 잘 세워서 손톱이 닫도록 해야 합니다. 실수로 컨텍스트 메뉴에서 복사 대신 잘라내기나 삭제를 누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바탕화면에 아이콘을 더블클릭 하다가 미끄러져 엉뚱한 앱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문제는 마우스를 사용하면 해결되고 마우스를 꽂을 수도 있게 되어 있지만 마우스를 꽂는다고 금새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키보드에 달린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지금까지 보던 화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아름다운! 메트로 인터페이스가 화면을 가득 메워 버리기 때문입니다.

윈도우 8 시작 화면은 사실 꽤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 애플 기계처럼 아이콘만 덩그러니 늘어놓고 숫자 뱃지로 간신히 정보 표기를 하기에 급급한 것도 아니고 안드로이드처럼 정신나간 위젯 화면과 아이콘 화면을 오가며 정신을 빼앗기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콘 자체가 위젯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앞서 말한 두 가지 환경의 단점을 해결했고 그 자체로 보기에도 나쁘지 않으며 손가락으로 누르기에도 훌륭합니다. 세로 해상도가 768 픽셀밖에 안되는 슬레이트 PC에 타일 세 줄이 나와도 손가락으로 조작하기에 너무 편리합니다. 이 정도면 인피니티 루프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말고 달려가 개발을 시작해야 할 정도로 위기입니다만, 앞서 데스크탑을 사용하기 위해 꽂아 둔 마우스를 잡아 보면 또 다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우스로 조작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당신, 메트로 인터페이스는 이걸 마우스로 누른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마우스 커서는 하릴없이 거대한 타일 사이를 오가고 앱을 하나 실행시킬래도 거대한 시작메뉴를 오른쪽으로 한참이나 스크롤 해서 그룹으로 묶여 있지도 않은 앱 사이를 헤매야만 합니다.

자. 이제 삽질하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 어떤 점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해 봅시다.

첫째. ‘윈도우 로고 키’가 하는 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윈도우 7 까지는 ‘시작 메뉴’를 부르는 키였습니다. 시작 메뉴는 윈도우에 설치된 앱이 그룹 별로 나타나고, 여기에 제어판이나 도움말, 검색 같은 추가 기능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메뉴’였습니다. 메뉴를 조작하는 동안 여전히 바탕화면 위에 떠 있는 앱과 이걸로 진행하던 작업의 맥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매니저로 맵을 그리다가 여기 붙여넣을 스프레드시트를 열기 위해 시작 메뉴에서 엑셀을 찾아 헤매는 사이에도 여전히 마인드매니저를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윈도우 8에서는 이게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윈도우 8에서 시작 메뉴는 더 이상 ‘메뉴’가 아니라 ‘화면 전환’이자 ‘모드 전환’입니다. 마인드매니저 작업을 하다가 ‘윈도우 로고 키’를 누르면 - 시작 버튼이 없으므로 - 메트로 인터페이스 ‘모드’의 ‘시작 화면’으로 이동해 버립니다. 사실 이 화면 안에서 내가 원하는 앱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만, 기존에 시작 메뉴에서 앱을 탐색하던 습관과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화면 전체를 덮어버리며 맥락을 잃게 만듭니다. 나는 엑셀 파일 하나를 열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일정과 일기예보와 할일과 트위터 답글이 빼곡히 적힌 화면이 나타나는 겁니다. 맥으로 말하면 ‘알트 탭’을 눌렀더니 ‘대시보드’가 나타나는 꼴입니다.

윈도우에 기반한 운영환경의 강점은 맥락을 유지한 앱 사이의 작업 전환입니다. 비지오에서 그림을 그려 알트 탭을 눌러 바로 워드에 붙여넣을 수 있는 그 작업 플로우 자체가 강점입니다. 그런데 윈도우 8에서는 이 플로우를 깨버렸습니다.

둘째, 메트로 모드와 데스크탑 모드는 서로 상대 모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하지만 서로 상대 모드에 의존성이 있습니다. 메트로 모드에 제어판이 있고 데스크탑 모드에 또 다른 제어판이 있습니다. 메트로 모드에 윈도우 익스플로러가 있고, 데스크탑 모드에 또 다른 윈도우 익스플로러가 있습니다. 메트로 모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있고 데스크탑 모드에 또 다른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있습니다.

아마도 윈도우 RT 환경을 의식해서 서로 상대 모드에 의존성을 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데스크탑 환경에서 이미지를 더블클릭하면 이런 생각도 무너집니다. 이미지를 열면 메트로 쪽 뷰어로 날아가 그쪽에서 보여주거든요. 반대로 메트로 쪽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백업 옵션이나 하드웨어 설정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데스크탑 모드에 가서 그쪽 제어판을 열어 접근해야 합니다.

셋째. 메트로와 데스크탑은 멀티태스킹에 대한 제어방법이 서로 다릅니다. 일단 데스크탑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대로입니다. ‘X’를 누르면 꺼지고, 예외로 트레이에 살아남아 있는 것들만 신경 쓰면 됩니다. 헌데 메트로에서 앱을 실행하다가 홈 버튼을 눌러 시작 화면으로 돌아오면 앱은 꺼지지 않은 상태로 유지됩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사용하던 경험 그대로입니다. 아이패드에서는 특별히 앱을 종료할 필요가 없는데, 자원이 모자르면 알아서 앱을 꺼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도록 앱을 개발해야 하고 종료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가끔 새로 실행한 앱이 중간에 그냥 꺼진다거나 하는 상황이 있지만 그럭저럭 잘 동작합니다. 메트로 모드도 이렇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메트로에서 앱을 실행했다가 종료에 신경 쓰지 않고 시작 메뉴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 윈도우 CE를 사용하던 시절처럼 빼도박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단 시스템이 꽤 버벅거린다고 느껴질 시점까지 앱이 꺼지질 않습니다. 아마도 자동으로 끄도록 설계했을 것 같은 냄새가 곳곳에서 나는데 체감상 잘 동작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앱 사이를 전환할 때 홈 버튼을 누르기 보다는 화면을 내리 그어 앱을 끄면서 시작 화면으로 돌아가는 편이 더 안전하며 이 동작을 할 때마다 멀티태스킹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메트로 모드에 여러 앱을 종료 없이 들락거린 다음 알트 탭을 눌러 보면 작업의 맥락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잠깐 보고 싶었던 날씨, 할일, 달력, 메일, 브라우저 등등 온갖 앱이 동시에 떠 있고 이들 사이를 전환하는 일은 꽤 피곤합니다. 이런 상황이 서로 상대 모드에서 일어나면 모드를 전환하기 전까지는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이 떠서 빨아먹는 배터리 이야기는 굳이 여기서 더 꺼내지 말도록 하죠.

넷째. 메트로 모드와 데스크탑 모드 사이에 접근성 옵션 처리가 서로 다릅니다. 간단히 데스크탑에서 사용하던 돋보기가 메트로에서 동작하지 않고 나레이터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화면을 읽어줍니다. 화면이 보이지 않을 경우 데스크탑에서 메트로로 전환하고 나면 다시 데스크탑으로 돌아오기 아주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온갖 문제점들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사용해 오던 커서 기반의 인터페이스가 터치 기반의 인터페이스와 통합되면서 일어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만 이렇게 삽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플도 멀쩡한 맥에 풀스크린 앱을 도입하고 미션 컨트롤을 도입하고 대시보드를 축소하고 런치패드를 만들어 가며 온갖 삽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애플의 접근은 기존 맥이 가지고 있던 맥락을 유지한 상태의 멀티태스킹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정 반대의 방법을 시도하는 부분은 다릅니다. 장기적으로 이들 인터페이스는 잘 통합되거나, 보다 부드러운 전환 방법을 제공하는 식으로 개선되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로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머리 둘 달린 괴물을 만들었고 한동안 이 머리 둘을 제어하느라 사용자 입장에서 꽤나 골치를 썩게 될 겁니다.

곧 후속 버전인 윈도우 블루 업데이트를 내놓는다는데, 공개되는 스크린샷은 온통 예쁜 메트로 인터페이스 뿐이라 많이 걱정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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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PC 사용기

한동안 아이패드에 필기를 하다가 슬레이트 PC에 와콤 스타일러스가 달렸고 신형 아티브가 나오면서 가격이 내려간 것을 보고 슬레이트 PC를 덥썩 샀습니다. 지금까지는 어지간한 어떤 필기 입력 기계도 와콤 스타일러스보다 나은 필기 경험을 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이패드용 필압감지 펜을 팔아버리고 슬레이트 PC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기계도 일단 마구 만들고 일단 팔고, 다음에는 모른 척 하고 보는 제조사의 특성을 고려해 옴니아 수준의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냥 참고 쓰고 있었는데, 심각하지만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한 세 가지 이슈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괴상합니다.

이 기계에 달린 여러 버튼은 윈도우 운영체제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기계 전면에 달린 홈 버튼은 아이패드의 홈 버튼과 같은 기능을 할 거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버튼은 키보드에 달린 ‘왼쪽 윈도우 키’입니다. 그래서 윈도우 8 환경에서 홈 버튼을 누르면 시작 메뉴가 나타납니다. 여기까지는 아이패드 홈 버튼과 같지만 절전 모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절전 모드에서 홈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어판 깊숙한 어딘가에서 키보드 입력으로 절전 모드를 해제하는 옵션을 켜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기본 상태에서는 절전 모드에서도 반드시 전원 버튼을 눌러야만 기계를 켤 수 있습니다. 또 윈도우 로고 키 입력을 받지 않는 앱이 포그라운드에 떠 있으면 홈 버튼은 먹통이 됩니다. 윈도우 운영체제에 의존성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만, 하드웨어 입장에서 같은 버튼이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동작을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앰비언트 라이트 센서가 희한한 곳에 달려 있습니다. 정면의 오른쪽 상단부터 1/4 지점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에 원노트에 필기를 하다 보니 화면이 저 혼자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는데 이유를 몰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반사 필름을 붙이고 나서 보니 그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가 앰비언트 라이트 센서 자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의문이 풀렸습니다. 저는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오른손이나 팔뚝이 종종 저 센서를 가렸고 그럼 기계는 당연히 주변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하고 화면을 어둡게 만든 겁니다. 또 손이나 팔뚝을 치우면 다시 밝아졌다고 생각하고 화면을 밝게 만든 거겠죠. 뭐 개발자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이건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일단 펜을 달아놓고 개발 스탭 중 어느 누구도 장시간 펜 입력 테스트를 한 적이 없다는 것과 아무도 앰비언트 라이트 센서가 한쪽에 치우쳐 있는 설계가 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거란 점입니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보면 해결 방법은 간단한데, 그냥 센서를 화면 상단 중앙이나 그 근방에 갖다 놓으면 됩니다. 애플 제품을 그렇게 잘 배껴대면서 왜 이런 부분은 배끼지 않나요. 설마 화면 상단 중앙에 달린 앰비언트 라이트 센서 위치가 특허인가요?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분명 와콤 센서를 달고 와콤 펜을 끼워 주면서 기계 본체는 펜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웹에서 이 기계를 뜯어 놓은 이미지를 본 적이 있는데, 내부는 여기 저기 빈 자리가 많았는데 여기 어딘가를 짜맞춰 펜 한자루 넣을 공간을 확보하자는 결정이 그렇게도 어려웠거나 설마 이걸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치밉니다. 물론 최신 제품인 아티브에는 펜 꽂는 자리가 있다고는 합니다만, 그럼 슬레이트 PC에 펜을 쓰는 사람들은 다들 펜을 다른 주머니에 곱게 넣어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요? 하다못해 서피스 프로만 봐도 자석을 이용해 펜을 기기 한쪽에 붙이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 저기 잘 배끼면서 왜 이런 기능은 안 배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계는 ‘와콤 펜으로 원노트에 필기 입력을 한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에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기계 자체의 만듦새를 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치밉니다. 이딴 기계를 만들어 고가에 파는 깡도 대단하고 이런걸 덥썩덥썩 구입해주는 호갱님들 - 저를 포함한 - 도 대단합니다. 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조사는 서기 2013년에는 너무 당연한 최소한의 디테일에 별 관심 없이 여전히 기계를 찍어내는데 급급한 수준이 아닌가 하고 넘겨짚으며 오늘도 앰비언트 라이트 센서를 가릴 때마다 어두워지는 화면을 보고 글씨를 씁니다. :(

그 외에도 이상한 펜 컨트롤, 이상한 뒷 판 설계, 마이크로SD 카드 슬롯의 위치 문제 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참 많지만 그저 ‘일단 만들어놓고 제대로 기계를 써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전부 다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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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아침에 안드로이드 기기가 접근성에 문제가 있고 국내 관련 법령 개정 이전에 수정하지 않으면 곤란할 수 있다는 글을 봤습니다. 거기 달린 의견들을 읽어보니 안드로이드는 처음부터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지만 최근에는 스크린 리더나 확대 기능 등을 집어넣어 접근성에 큰 문제는 없다는 의견이나, 안드로이드보다는 iOS가 접근성이 더 낫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나마 괜찮은 것으로 알려진 iOS나 맥도 사실 별 거 없다는 것입니다.

접근성에 관련된 기능에 접근할 때 중요한 점은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OS나 애플리케이션 레벨에서 뭔가 기능을 추가하면 될 거라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기기는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으니 스크린 리더 기능을 추가하면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기능을 추가한 코더들만 고생하고 기능을 구입하는데 들어간 비용만 날릴 뿐입니다. 물론 이쪽이 법률비용보다 저렴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런 접근은 실제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스크린 리더가 OS 레벨에 붙어 그나마 잘 동작한다고 알려진 iOS도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려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OS는 기능을 지원하지만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은 이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쪽은 인터페이스 가이드에서 스크린 리더가 인터페이스를 읽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앱을 만들어도 스크린 리더는 개발자가 인터페이스에 집어넣은 텍스트를 읽어주는 수준에서 그칩니다. 결코 앱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작업의 맥락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이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이기 때문에 상당수 예쁜 커스텀 컨트롤을 사용하는 앱은 스크린 리더와 전혀 호환되지 않습니다. 마치 웹 사이트에 달린 플래시 같은 느낌입니다.

접근성 문제에 과거부터 형식적인 기능으로 일관해 오기로 말하면 윈도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윈도우에는 시력이 약한 사람이 사용하라고 텍스트 크기를 키우는 설정이 있습니다. 원래 표시되는 텍스트를 100%로 잡고 125%로 설정하는 기능인데, OS에서 지원하기는 하지만 이걸 켜고 재시작 하는 순간 굉장한 꼴을 보게 됩니다. 이 설정에서 제대로 보이는 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메시지박스에 텍스트 마저도 텍스트가 박스 밖으로 잘려나가 읽을 수 없거나 버튼이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가 영원히 조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서드퍼티 앱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오피스도 어느 컨트롤은 이 설정을 지원하고 어느 컨트롤은 설정을 지원하지 않아 흉한 꼴이 되고 이 설정을 끄러 가기조차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이건 쓰라고 만든 설정이 아니라 법률 비용을 아끼려고 넣은 설정입니다.

윈도우 돋보기도 비슷한데, 화면을 확대해 주기는 하지만 분명 이보다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도 십 수년 동안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접근성 기능 중 하나입니다. 돋보기를 켜면 화면 상단에 확대 영역이 나타나고 마우스커서나 캐럿의 이동에 따라 확대 영역이 정해지는데, 인터페이스를 깨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텍스트 확대 기능보다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윈도우에서 행하는 작업 대부분이 ‘툴바’와 ‘캐럿’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가지 오브젝트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일이 많음을 감안하면 한 번에 한 장소만, 그것도 상하 폭이 제한된 크기만을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능은 형식적이거나, 아니면 한번 만들어 넣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거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맥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마도 이런 기능을 쓸 일이 없는 사람들이 낸 소문이 분명합니다. 물론 화면 확대 기능을 생각하면 분명 윈도우보다는 쓸만합니다. 화면 전체를 확대해 인터페이스가 깨지지 않고 화면 전체를 확대하기 때문에 동시에 사용할 인터페이스를 확대된 화면 안쪽에 잘 배치하면 그럭저럭 작업도 가능합니다. 또 랩탑을 사용한다면 트랙패드를 사용해 확대 기능에 말도 안될 정도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에서 돋보기 기능을 켜고 꺼 보세요) 하지만 이 확대 기능은 100% 배율일 때 텍스트에 안티앨리어싱이 먹은 상태 그대로 확대해 주기 때문에 높은 배율에서 글자 주변에 망가진 픽셀이 그대로 눈에 들어와 거슬리고 장시간 쳐다보면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스크린 리더 기능은 윈도우나 맥 양쪽 모두 인터페이스를 읽어주는데 집중한 나머지 작업의 맥락을 파악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스크린 리더 앱에 훈련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하겠지만 단순히 화면에 배치된 인터페이스를 읽어 주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실제 이 기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적극적인 피드백이나 실제 개발 참여가 있었다면 분명 작업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스크린 리딩이 아니라 음성 어시스턴트 기능 같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양쪽 모두 극도로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리눅스요? .. 음.. 어… 넘어가죠.

요즘 기기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금 튀어나오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만, 이런 이야기 자체, 그리고 개발 과정에 실제 이런 기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참여 없이 진행되어 봐야 법률 비용을 물지 않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 그냥 답답해서 지껄여봤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