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부분유료화.
주말 아침. 아무 일정도 없어 늦게까지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습니다. 정확히는 아이폰을 두손에 모아 쥐고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거나 리더빌리티에 쌓인 읽을거리를 읽는 것을 빙자해 절대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타임라인에 택시 안에서 피곤하게 앉아 있는데 기사님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 분야에 걸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피곤함을 무릅쓰고 ‘네, 아 네.’를 반복하고 계신 분의 글이 지나갔습니다.
요즘 서울시내 택시 뒷 유리창을 보면 가스값은 올랐는데 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스값이 올라 운송원가가 오르는데 요금이 올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게다가 버스요금이 자꾸자꾸 올라 택시요금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면서 자꾸만 예전의 영광이 떠오르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물가 인상 부담 때문에 여간해서 택시를 포함한 대중교통요금을 올리려 하지 않는 정부 덕분에 함부로 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기도 뭣한 상황입니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모범택시 기사님들은 미치고 팔짝 뛸 입장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운송원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는데도 올릴 수 없는 택시요금은 오직 목적지까지 달리는 동안에 미터기에 찍힌 요금을 내는 단순한 유료화 모델 하나만 가지고 수십년째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택시에도 게임에서 먼저 도입한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해서 기본요금이나 거리당 요금, 또 시계요금 따위에 목숨 걸지 않고 편안하게 요금을 올려보겠습니다. 여기부터는 내용이 늘어질 수 있으니 총알점을 사용해서 나열해보죠.
- 기사님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깊은 통찰이 담긴 주장을 멈추려면 요금에 3천원을 추가합니다.
- 추운 날씨에 졸음을 깨기 위해 열려 있는 운전석 쪽 창문을 닫으려면 요금에 이천원을 추가합니다.
- 뒷좌석 틈사이에 박혀 도저히 꺼낼 수 없어 보이는 안전벨트를 꺼내려면 요금에 팔천원을 추가합니다.
- 운전중에 기사님이 정말 재미있게 보고 계신 일일연속극을 끄려면 요금에 육천원을 추가합니다.
- 귀청이 떨어지도록 크게 켜져 있는 택시 무선호출시스템의 볼륨을 잠시 낮추려면 요금에 삼천원을 추가합니다.
- 기사님이 동료 기사분과 야식을 어디서 먹을지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정겨운 전화통화를 운전 중에는 잠시 멈추도록 하려면 요금에 이천원을 추가합니다.
- 전원이 꺼져 있는 카드결제기의 전원을 켜려면 요금에 삼천원을 추가합니다.
- 카드결제기의 전원이 켜지는 동안 미터기를 멈추려면 요금에 오백원을 추가합니다.
- 기사님이 잔돈을 찾는 동안에 미터기를 멈추려면 요금에 오백원을 추가합니다.
- 금요일 저녁에 강남역 사거리에서 어렵게 잡은 택시에서 기사님이 합승을 시도하지 않게 하려면 요금에 만원을 추가합니다.
- 시외로 나갈 때 기사님이 시외할증요금이 없어졌다며 투덜거리지 않게 하려면 요금에 사천원을 추가합니다.
-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가벼운 접촉사고로 상대와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바로 현장을 빠져나오려면 요금에 이만오천원을 추가합니다.
-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지갑 안을 확인하기 위해 실내등을 켜려면 요금에 오백원을 추가합니다.
- 운전석에 설치된 네비게이션 시스템 세개 중 두 개를 끄려면 요금에 육천원을 추가합니다.
- 고속화도로에서 최고시속을 제한하려면 요금에 만팔천원을 추가합니다.
대강 생각나는건 이 정도인데 아마 무궁무진하게 많을 겁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택시 기본요금이나 거리별 요금을 올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운송원가 상승과 기타 물가상승에 대응하면서도 기본요금과 거리별 요금 상승을 막으려고 목을 매는 공무원들의 임무 완수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될 겁니다. ^^ 제가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유료화 가능한 부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