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in Kim

에어팟 사용기

이제와서 새로울 것도 없는 애플 에어팟 사용기입니다. 처음 소개될 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구입을 결정할만한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매력으로부터 예상한 경험과 가격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배송 대기시간이 순식간에 늘어났고 연초에 주문하자 배송 예정일이 2월 하순이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신용카드 대금은 이미 빠져나갔지만 물건은 받지 못한 나날이 계속되다가 결국 5주만에 물건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내에 출시되자마자 바로 달렸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한 것

일단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점을 기대했습니다. 말발굽처럼 목 뒤를 따라 도는 플라스틱 구조물이나 헤드폰처럼 머리 위쪽을 지나가는 부분도 없고 양쪽 유닛을 연결하는 선도 없어야 했습니다. 또 블루투스 기반 장비이지만 페어링과 유지 과정이 단순하길 바랬고 배터리 사용시간에 신경 끌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또 이동하면서 사용할 때 바깥 소음이 들려오길 바랬고 자전거로 이동할 때 길안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들려주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나오기를 기대했구요.

기대하지 않은 것

반면에 많이들 이야기하는 음질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음악을 듣기에는 가장 나쁜 조합으로 구성된 장비입니다. 블루투스 기반에 오픈형 거기에 이어폰이기까지 합니다. 또 귀에 아주 안전하게 붙어있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작년 페스티브 500 때 에어팟으로 길안내를 들으며 달린 분의 사진을 보니 귀에 반창고로 고정하고 있었는데 저 역시 비슷한 수준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분실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각오했습니다. 애초에 목에 걸거나 머리에 쓰는 기계도 쉽게 잃어버릴 수 있지만 그 기계들은 최소한 덩어리가 하나인 반면 에어팟은 일단 덩어리가 두 개이므로 단순히 잃어버릴 가능성이 두 배입니다. 배터리 케이스까지 하면 세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용

여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상자에서 꺼내 배터리 케이스는 충전선에 꽂아놓고 에어팟 유닛은 바로 귀에 달고 뭐든 듣기 시작했습니다. 귀에 꽂은 채로 존재를 까먹고 그냥 돌아다니고 그냥 일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일단 예상보다 잘 안 빠집니다. 걸어다니는 수준으로는 불안하긴 하지만 빠질 걱정은 좀 덜 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실내자전거를 타며 고개를 흔들고 난리를 쳐도 안빠집니다. 다만 길안내를 듣는다면 방지턱 같은 곳에서 분명 문제가 될 거라 추가 대비가 필요합니다.

페어링 경험

가장 흥미로운 경험은 페어링 과정입니다. 배터리 케이스 뚜껑이 전원이기도 하고 페어링 버튼이기도 합니다. 페어링 버튼이 따로 달려있기는 하지만 이걸 누를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뚜껑을 따면 가까이 있는 아이폰에 안내 화면이 나타나고 연결 버튼 누르면 페어링이 끝납니다. 다음부터는 뚜껑을 열면 페어링이 시작되고 유닛을 꺼내 귀에 꽂는 사이에 완료됩니다. 페어링 시간이 짧지는 않은데 연결 과정을 자연스럽게 없애버린 점이 인상적입니다. 마치 iOS 3에서 4로 올라갈 때 전체적으로 느려진 반응속도를 애니메이션 길이를 늘려 포장한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두 대 이상의 기계 사이를 오갈 때 기대한 대로 동작하지 않아 배터리 케이스에 있는 페어링 버튼을 눌러야 했습니다.

배터리

배터리 걱정은 안합니다. 연속 재생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이쪽도 페어링과 비슷하게 기술적인 한계를 경험으로 풀어냈는데 듣다가 케이스에 넣어두면 충전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제품이 에어팟이 처음은 아닐 것 같은데 다섯 시간 연속으로 귀에 꽂고 뭘 들을 일이 생기지는 않아 사실상 배터리에 신경을 완전히 끄게 됐습니다.

디자인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월마트의 밀고다니는 쇼핑카트 같은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기존에 나온 통화 전용 블루투스 헤드셋과 비교해 더 나은 디자인이었고 이상하게 느끼는 점도 한 반년이면 사라질 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내 눈에 안 띄니까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눈에 잘 안 띕니다. 통화용 헤드셋처럼 마이크가 길게 튀어나와있거나 흉한 파란색 LED가 번쩍이는 것도 아니라서요.

조작

시리 사용 경험은 좀 애매한데 더블탭 동작을 시리에 할당하거나 음악 재생과 정지에 할당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 있다면 당연히 후자 조작이 유용한데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반면 시리는 유용한 반면 내가 뭔가 말해야만 동작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작게 말해도 시리가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 많습니다. 또 시리는 여전히 극도로 멍청해 제한된 조작만 가능합니다.

무선 간섭

마지막으로 무선장비가 많은 공간에서 간섭이 있습니다. 당장 집에서도 일어났는데 한 공간에 와이파이에 붙어 있는 장비 여러 대와 블루투스를 사용하는 센서 여러 대가 있는 상황에서 음악이 끊겨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롤러를 빡세게 굴리면 간섭이 더 자주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롤러를 블루투스로 연동해서 쓰고 있는데 혹시나 ANT+로 바꾸면 나아질까 하는 기대를 잠깐 해봤습니다.

결론

기대한 대로 동작합니다. 귀에서 잘 안 빠지지만 길안내를 들으려면 귀에 고정할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시리는 멍청하지만 작게 말해도 잘 동작하고 페어링과 충전 경험은 기술적인 한계가 예쁘게 포장돼 있습니다. 이제는 장거리 라이딩에서 길안내를 듣는데 적용해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