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in Kim

한국랜도너스 퍼머넌트 54

퍼머넌트

처음 종주수첩을 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향에 맞다고 생각했고 종주수첩을 꽉 채우면서 든 걱정은 이제 뭘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오르막 투어를 다니는 분들을 만나 종주 후 1년은 오르막을 찾아다녔습니다. 덕분에 유명한 오르막 몇 개를 올라볼 수 있었고 여러 가지 경험과 추억이 생겼습니다. 그 다음은 뭘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장거리 라이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는 한국랜도너스가 있고 이곳에서 유명한 장거리 라이딩 이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천안 200 브레베에 나갔다가 완주했지만 제한시간보다 26분 늦은 13시간 56분에 들어가는 바람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기준점이 철수해버려서 기록도 DNQ 대신 DNF가 되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그 후에 퍼머넌트를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올해 넘어오면서 그 중 하나를 신청해봤습니다.

PT-54

퍼머넌트는 브레베와 달리 내가 원하는 아무 날짜에 실행하면 됩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어쨌든 강행해야 하는 브레베보다는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한국랜도너스에 보고하며 달려야 하고 최소 거리는 여전히 200킬로미터로 그리 만만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한 코스는 PT-54 ‘삐약이’라는 코스인데 대강 알아보니 코스 이름은 제작하신 분의 닉네임인 모양입니다. :)

이 코스는 성산대교 북단에서 시작해 불광천을 따라 올라가 송추고개 근방을 지나 의정부까지 간 다음 중랑천을 따라 내려와 뚝섬을 지나 팔당, 두물머리까지 간 다음 이번에는 팔당대교를 건너 탄천, 양재천, 안양을 찍고 다시 안양천을 따라 올라와 염창, 반포대교를 건너 다시 성산대교 북단으로 돌아오는 202킬로미터 코스입니다.

기대한 것

겨우 내내 실내자전거를 탄 상태라 날씨에 적응이 안 되었을 거라고 예상해서 주중 낮 기온 예상이 가장 높은 날을 골랐습니다. 올해 첫 장거리로 이 정도 날씨에 오르막이 많지 않고 코스 대부분이 자전거도로라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년에 장거리 투어링에 주로 사용했고 또 천안 200 브레베 때도 가져간 브롬톤 ‘M6R 44T’를 겨울 오버홀 때 ‘M6L 50T’로 바꾼 상태여서 새로운 설정에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또 기왕이면 작년에 휴식시간 조절에 실패해서 제한시간을 초과한 천안 200 브레베와 달리 시간 관리 요령을 좀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 주행

전 날 잠을 단 한숨도 못 잔 채로 성산대교 근처 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둥 마눈둥 한 다음 8시 56분에 출발했습니다. 원래는 두 시간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일출시간 전에 공도를 타기도 뭣하고 다음 날 일기예보가 그 날보다 더 따뜻했기 때문에 저녁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늦게 출발했습니다. 뒤에 가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예상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의정부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송추고개 근방을 지나갈 때도 교체한 체인링이 부담스럽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다만 내리막이 시작되자 길에 남아 있던 블랙 미러에 뒷바퀴가 밀리면서 바로 옆을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량에 치어 바로 로그아웃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리막에서 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의정부부터 안양까지는 전 구간이 자전거도로입니다. 로드바이크를 타시는 분들은 자전거도로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지만 여전히 공도를 무서워하는 제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조그만 실수로 낙차하는 순간 따라오는 차에 치여 로그아웃할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하지만 중랑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는 내내 상당한 맞바람에 시달렸습니다. 먼저 이 코스를 달려 보신 분으로부터 들은 조언에 따르면 중랑천 구간 외에는 속도 낼 구간이 없기 때문에 여기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구간에서 속도를 더 이상 낼 수 없었습니다.

뚝섬에서 한강 북단을 따라 두물머리까지 가는 길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장소가 마땅찮았습니다. 겨울이라 한강변에 거의 모든 편의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평일이라 팔당 가는 길에 밥집이 문을 열지도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능내역 근처에 버거 파는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팔당 근처에서 처음 보는 차, 버거, 함박스테이크류를 파는 분위기 좋은 가게가 자전거도로 바로 옆에 문을 연 것을 보자마자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능내역 앞을 지나갈 때 보니 원래 생각했던 버거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두물머리를 돌아 안양까지 55킬로미터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팔당대교 오르막은 그냥 끌고 올라갔는데 예상보다 빨리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저녁에 온 한 겹을 더 가져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차안에 그냥 두고 온 겉옷 한 장이 절실했습니다. 광나루 근처에 이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을 열고 있을 것이 분명한 편의점에서 이미 술이 상당히 오르신 것이 분명한 브틉 할아버지들 옆에서 라면을 대강 먹고 탄천합수부에서 라이트를 켠 다음 탄천과 양재천을 달립니다. 그러는 사이에 일몰시각이 완전히 지나 캄캄해졌고 일정보다 1시간쯤 늦게 안양에 도착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 다시 한강으로 올라오는 길은 공사구간도 많고 직선 도로도 거의 없어 시속 20킬로미터에 간당간당한 수준으로 달렸습니다. 체온 유지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데다가 겨우내 실내자전거를 타는 바람에 추위에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덕분에 파워젤 가져간걸 다 먹고도 모자란 상태가 됐고 지치기도 지쳤습니다. 염창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는 남은 거리를 시속 22킬로미터로 달리면 간신히 제한시간 안에 들어갈까말까한 상태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의도, 반포대교를 돌아 성산대교 북단까지 달렸습니다. 뭐. 다리에 힘은 없고 유난히 허브기어가 뒷바퀴를 붙잡는 것 같고 잠수령은 또 왜 이리 가파르며 반포대교 북단에서 성산대교 사이에는 뭔놈의 다리가 이렇게 많은지 또 콧물은 왜 이리 떨어지며 길은 왜 이리 구불구불하고 몸은 왜 이리 춥고 배는 더 이상 고픔도 안 느껴지는데 왜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인지 짜증도 화도 아니지만 또 기분이 좋지는 않은 이상한 상태로 성산대교 북단에 제한시간인 13시간 28분 전체를 다 사용한 다음에야 도착했습니다.

결과

결국 제한시간 안에 들어오기는 했습니다만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인증사진을 찍어 보내야 했습니다. 사진을 보내고 한참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추웠지만 추위를 피해 어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또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사람이 완전히 털려 있었어요. 한 100~150킬로미터 정도는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털릴 경험을 덜 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까지 탈탈 털렸습니다.

교훈

브롬톤으로 달리려면 휴식시간, 식사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거의 안 쉬고 달려야 간신히 제한시간을 맞출 수 있는 수준입니다. 50T로 바꾼 체인링은 주행 기어가 5단에서 4단으로 바뀐 것 이외에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오르막이 나오면 여느 때와 달리 힘을 아낄 생각으로 그냥 끌고 올라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바람 때문이기는 했지만 전체 평속을 충분히 올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다시 한다면 보급을 충분히 챙기고 점심식사를 생략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겁니다.

앞으로

이렇게 2월 장거리 이벤트는 지나갔고 3월에는 서울 200 브레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정도로 달린다면 말할 것도 없이 제한시간을 초과한 DNQ 입니다. 또 다시 그런 수모를 겪지 않으려면 실내자전거는 슬슬 마무리하고 밖에 나가야 할 듯 합니다. 또 설정을 바꾼 자전거에도 더 익숙해져야 하겠고요. 자. 그러면 3월 이벤트 후에 또 글을 써 보겠습니다. :)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