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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books-read-in-august

8월에 읽은 책 정리

지난 8월에는 5월 즈음부터 계속해서 SF를 읽고 있습니다. 이게 한번 시작하니 이와 연결된 다른 책을 계속해서 보느라 멈출 수가 없네요. 이번달에는 '지상 최대의 내기', '전쟁은 끝났어요', '텅 빈 거품', '삼체 3권'을 읽었습니다.

지상 최대의 내기

곽재식 작가님의 글을 처음 본 건 (다른 몇몇 분들과 마찬가지로) 트위터 타임라인에 예고도 없이 여간해서 마주칠 일 없는 거대한 알티 횟수와 함께한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이었습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또 한동안은 웃다가 또 한동안은 웃는 내가 어처구니없어 또 웃다가 이야기가 끝나고 한참이나 웃음기 없이 내가 뭘 본 건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분명 웃은 기억은 남아있었는데 한동안은 도무지 웃을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짧은 글로 잠깐 스쳐지나갔다가 이 분의 '수많은' 단편집이 있다는걸 알게됐습니다. 왜 첫 글을 읽고 바로 알아보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해서 익숙한 그 첫 글이 실려있는 단편집인 '지상 최대의 내기'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 책이 어느새 여섯번째 단편집이라는 소개를 보고 이런 이야기들을 모르고 살다니 거참 안타까운 인생이다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분명 픽션이지만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판타지인지 잘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져 고개를 가로젓다가 갑자기 등장한 외계인들 앞에서 아 맞아 이건 현실이 아니었지 싶다가도 종속선언서의 멍청한 우리들을 보고선 아 이건 완전 다큐멘터리인데 싶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은 병력을 전부 선택해서 어택땅 하려는 완벽한 순간에 방송국 기자가 나타나 전원을 내려버리는 그런 순간에 딱 끝나버리는 이야기들에 깜짝 놀라 '와 씨 진짜 ㅠ_ㅠ' 같은 반응을 하기도 하고요. 신났습니다. 아직도 이 책 앞에 다른 단편집이 다섯 개나 있다니까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버려도 크게 분노하지 않을 겁니다. :)

전쟁은 끝났어요

지난 7월에 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부터 연결된 책을 찾기 시작하면서 맨 먼저 나타난 책입니다. 일단 책 소개가 재미있었어요. 일련의 작가님들을 모아 누군가는 유토피아, 또 다른 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쓴다. 그렇게 해서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실린 책입니다. 사실 그런 소개를 보고 난 다음부터는 이 책이 둘 중 어느 것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실은 책인지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그래서 내가 방금 읽은 이야기가 둘 중 어디에 속하는 이야기였을지를 생각해보고 책 표지로 돌아가 '아 맞다 이거..' 하고 정답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문득 책 제목과 같은 '전쟁은 끝났어요'의 전개에서는 댄브라운의 인페르노가 생각났습니다. 인류의 문제를 좀더 인위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인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를 묻는다고 생각했는데 제 입장에서는 “뭐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긍정적이었습니다. 가령 이번달에 읽은 삼체 3권에서 태양계를 우주에서 지워버릴 저광속 블랙홀에 의해 살아남을 인류와 그로 인해 인류의 과학기술에 일어날 여러 가지 변화 혹은 퇴보를 생각해보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런 일련의 시도 사이에서 '전쟁은 끝났어요'의 결론은 그 중 가장 비폭력적이지 않나 싶었고요. :)

텅 빈 거품

'전쟁은 끝났어요'와 '다른'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모은 책. 처음엔 '다른' 대신 '그와는 반대로'라고 쓰려고 했는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서로 수직선 상에 반대 방향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 '다른'이라고 고쳤습니다. 굳이 평면상에 있다면 비슷한 점에서 출발해 시간축이 커질수록 서로 거리가 멀어질 뿐 서로 애초에 반대방향은 아니었던. '벗'은 나 자신에게도 들키지 않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생각을 하는 주체가 난데 나한테도 들키지 않고 할 수 있는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유튜브에서 좌뇌와 우뇌가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마치 두 사람처럼 행동하는 영상을 보곤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 쓸모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벗은 내가 아니지만 벗과 함께 온건하게 살아가려 한다면 벗을 마치 내 세번째 뇌 정도로 인정하고 뇌 각각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 들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이야기의 설정을 더 생각해보게 만든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이게 '디스토피아' 이야기로 묶일만한 이야기일까 하는 의문을 남겨주었습니다. 가령 언인스톨은 비록 유토피아와 거리가 조금 있지만 디스토피아의 일부를 영원히 날려버리는 이야기이고 두 행성의 구조신호 역시 그렇습니다. 텅 빈 거품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들의 미래는 비록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디스토피아와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졌고 또 그 방향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일단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전쟁은 끝났어요'와 '텅 빈 거품'을 서로 다른 책 두 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삼체 3권

앞서 삼체 두 권을 보고 꽤 오래 기다렸습니다. 지난 '암흑의 숲'에서 삼체인들과 이야기가 일단락되며 나름의 대단원을 맞이했습니다만 아이패드를 끄고 커버를 덮다가 문득 '어 잠깐' 싶었습니다. 아니 잠깐. 아직 태양계를 향해 다가오는 삼체함대와 저 멀리 버려진 어둠의 자식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에 '아 이게 뭐야' 싶었습니다. 삼체 행성의 삼체인들과 지구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끝났을지 모르지만 우주에 버려진 지구 출신들을 포함한 우주인들은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아직 우주에 버려져있었거든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마치 보이저가 태양계를 완전히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삼체의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만, 처음 삼체 3권을 끝까지 읽었을 땐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삼체뽕에 차 있었습니다. 별의 계승자에서는 거인들이 태양계를 격리하기 위해 고안해낸 중력장이 여기서는 암흑의 숲으로부터 태양계를 안전하게 격리하는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제블렌인의 행성에 건조중이던 이 장치를 보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뻔 했는지 놀라워하는데서 더 나아가 광속과 제3우주속도가 같은 세계에 사는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은 어떤 느낌일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두어 주가 흐르고 나서야 뭔가 찜찜한 부분들, 잘 수습되지 않았거나 대체 왜 이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나타났습니다. 근본적으로 계단 프로젝트가 이전의 면벽에 비해 저를 잘 설득하지 못했고 주인공의 존재 역시 안드로메다 성운을 읽고 난 다음만큼이나 불편했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는 모든 여성 등장인물들이 불편하도록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거든요. 이번 삼체 세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의 그리 길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시간과 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시간에 따라 빠르게 늙어가는 설정 사이에 곤란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래로 가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지만 3권에 이르자 선택된 사람들이 계속해서 시간을 뛰어넘어가며 항상 자신들에게 준비된 세계와 맞닥뜨리는 설정이 이전만큼 훌륭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삼체 뽕이 빠지면서 시작부터 그랬던 작가의 일뽕이 소설의 나머지 부분과 구분되지만 잘 어울린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아쉽고 또 곤란하고 또 잘 마무리되지 않은 다양한 떡밥과 갑툭튀 소우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읽던 이야기들이 좀더 작고 소소한데 비해 '아몰랑! 거창하게 가보자!'라고 외치는 듯 온 우주로 마구 펼쳐니는 이야기는 인상깊었습니다. 광속이 달라진 세계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이는 다시 이번 달 - 9월 - 에 읽고 있는 토끼의 아리아에 나오는 '박승휴 망해라'와 이어져 온갖 생각을 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 기록: 9월, 8월, 7월, 5월, 3월, 2월, 1월

blog/books-read-in-augus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9-10 09:09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