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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books-read-in-july

7월에 읽은 책 정리

두달 전과 같은 상태. 분명 6월에도 책을 안 읽진 않았지만 6월 한달 내내 책 하나를 붙들고 결국 6월 안에 읽질 못해 6월에 읽은 책은 한 권도 없게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이어 이번에도 한달 건너뛰고 읽은 책을 정리해봅니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다가 문득 제가 그 책을 읽고 사람들에게 책에서 제시하는 생각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앞마당 쓸 듯 처음부터 다시 읽어가야겠다 생각하다가 별 계획도 없이 집어들었습니다. 1회차때는 -6000년부터 시작하는 고대 역사에 시작부터 질려버렸습니다. 이유는 제가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는 -4000년부터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식할 수 있는 역사에 이런 제한이 있던 이유는 20년 넘게 반복해온 시드마이어의 문명 때문입니다. 항상 역사는 -4000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보다 오래된 역사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그렇게 오래된 시대의 생활수준을 추정하는 과정을 보고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시작부터 의심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끝까지 진행하고 나서도 저자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같은 책을 집어들었고 이번에는 마치 서양 팀과 동양 팀의 문명을 플레이하는 기분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에 따라가기 힘들었던 고대 역사가 지나가고 중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지리적 차이에 의한 동서양의 차이가 보다 제 자신에게 익숙한 역사적인 사건들로 명백히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세계는 누가 먼저 초원지대를 통해 교역을 시작하고 누가 먼저 범 지구적인 탐험을 시작하며 또 누가 먼저 신대륙에 도달하는지에 따라 희비가 갈리게 됐다는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오히려 동양 혹은 제가 태어난 극동아시아 지역은 태평양과 유라시아대륙이 가로막고 있던 덕분에 고대와 중세의 서양 중심 역사에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지금의 모습대로 남아있을 수 있던 것이 어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댓가로 동아시아가 서양 중심의 역사에 편입되는데 큰 댓가를 치러야 했고요. 사실 이 책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긴 기간 동안의 역사를 동서양을 구분하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끝에 가서는 그래서 이 세계의 미래를 대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저는 책 기준에 미래의 사람이고 저자가 예측한 미래의 일부를 이미 알고 있어 저자의 예측이 일부 빗나가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이야기하는 방법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1회차에는 와닿지 않았던 인류가 새롭게 도달할 생활수준은 인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마치 문명 테크트리 끝에 있는 '미래기술' 다음의 테크트리를 상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위안위안의 비눗방울

위안위안의 비눗방울삼체 3권의 한역을 기다리다 못해 문득 류츠신의 단편 낱권을 팔길래 한권만 사볼까 싶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비눗방울을 아주 오래전에 불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눗방울에 집중하면 이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짧게 웃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책을 제목과 표지만 보고 덥썩 사보기도 하는데 그런 플로우라면 여간해선 선택하지 않을 법한 제목과 표지였습니다. 책 제목은 텍스트로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지만 책 제목에는 큼직하게 '관 내 분 실'이라고 적혀있을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책인지 표지만으로는 예상할 수가 없었고 또 저게 무슨 말인지 맥락 없이는 예상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읽기 시작한 다음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두 이야기를 때마침 작가님의 단행본이 나올 시점 직전에 읽게됐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훌륭했고 어떤 이야기는 좋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별로였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 탑제된 안드로이드 이야기는 손쉽게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가 돼버립니다. 또 다른 인간의 부류를 안드로이드에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기는 하지만 짧은 기간 안에 같은 방법을 쓴 이야기를 여럿 만나서인지 휼륭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햇습니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지만 설정만은 안드로이드인 등장인물들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마치 안드로이드라고 설정해놓으면 그게 인간처럼 생각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머릿속까지 전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좀 곤란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이런 설정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내 언캐니밸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안드로이드 껍데기를 뒤집어 쓴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평가는 낮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 만난 두 이야기는 마치 시리도록 쨍한 느낌이 들었고 단행본 출간 즈음에 이 이야기들을 먼저 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바로 앞에 정말 우연히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이 책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류츠신의 짧은 이야기를 기웃거릴 때와 비슷한 물음표 가득한 모습이었겠죠. 하지만 작품집을 먼저 읽은 덕분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견 없이 덥썩 집어들었습니다. 작품집에서 읽은 두 이야기는 마치 체렌코프효과처럼 빛나는 푸른색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간 다음 잠깐 멈추고 한숨을 푹 쉬게 만든 비슷한 느낌을 받은 두 글이 같은 작가님의 글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서로 다른 감정을 만들어냈지만 이 책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한 줄은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였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각각의 세상이 생겨난 역사에 다다라보니 저 짧은 표현에 담긴 무게를 상상했습니다.

증명된 사실

서점 사이트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입한 독자들이 함께 구입한 책 목록에 나타났습니다.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타임라인에 작가님의 계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 읽은 이야기의 감정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어서 증명된 사실을 읽기 시작. 이번 달에 단편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문득 삼체 3권이 왜 안나오나 기다리다가 같은 작가님의 단편이라도 읽어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아주 신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딱 한 권을 읽고 그만뒀지요. 그러다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부터 시작한 단편들은 글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었습니다.

'증명된 사실'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짧은 글 안에 이렇게 이야기가 깔끔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야기 하나를 읽을 때마다 한참이나 멈춰 멍하니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희박한 환각'을 읽고 나서 유난히 더 오래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특히 일몰 시각이 지나 퇴근하는 자전거 위에서 검은 하늘을 비춘 탄천을 바라보면서요. 만약 인간 말고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가령 ''처럼 사람이 죽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하게 되는 모양이나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토가를 걸친 백인남성의 모양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에 이 이야기에 나온 모양과 그런 과정이라면 그걸 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내가 그 사람이라면 결코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한동안 출퇴근 자전거 위의 생각 거리였습니다. 한편 증명된 사실에서 그렇게 연구소를 빨리 닫아야 했을지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가령 진실을 숨기고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범죄 이야기라든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한참이나 신났습니다.

지난 두 달에 읽은 책을 정리해놓고 보니 그럼 8월에 뭘 읽고있을지 좀 뻔한 구석이 있군요. :)

blog/books-read-in-july.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8-18 20:27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