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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읽은 책 정리

지난달에는 (글을 쓰는 지금은 11월 중순이니까)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와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10월에 그렇게 읽을 시간이 부족했나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포괄임금제가 폐지되고 지난 십 수년 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초과노동시간에 임금이 정산되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이 짧아지고 있었거든요. 회사는 초과노동시간과 인사평가등급을 정비례시키려고 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더 만들어 더 읽고 더 생각할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지금까지 읽어온 작가님의 여느 이야기와 비슷한 작고 소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에 나올 법한 거창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분명 학교에서 이 주제를 배운다면 학부 1학년에 나올 법한 '어쩌구 개론!' 같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입니다. 작가님이 소소하게 그동안의 체험에 따라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다른 이야기 끄트머리마다 붙은 연도와 장소 이름으로부터 이 이야기가 끝맺어진 순간의 장소를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이야기들은 제가 아는 그 장소 어딘가에 앉아있는 작가님과 그 주변 어딘가에 있을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이미지와 함께 끝나곤 했거든요.

책에는 글쓰기를 위해 개인의 생각, 주변 환경을 적절히 통제하는 방법, 일반적인 절차, 대략적인 도구, 천재지변, 비상수단, 마감의 중요성 등을 다룹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에 글을 잘 쓰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저는 첫 부분을 쓰다 그반두는 사람이기보다는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이야기 전체를 생각해내지만 타이핑을 시작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거든요. 아니면 회사에서 문서를 작성해내고 나면 타이핑 체력이 0이 되어 키보드를 거부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요. :) 하지만 이렇게 글을 못 쓰는 병에 걸려 키보드를 거부하는 증상으로부터 저를 건져올릴 작은 실마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채식주의자

서점 웹사이트에는 카트와 위시리스트 기능이 있습니다. 카트는 책을 보관했다가 결제하는데 사용하는 기능이고 위시리스트는 언제 구입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리스트에 넣어놨다가 나중에 구입하든지 아니면 지우든지 아니면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는데 사용하든지 하는데 사용하라고 만들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위시리스트에는 단 한 권도 넣어둔 적이 없습니다. 일단 카트에 넣었다가 나중에 훑어보고 그 중 읽을 책을 골라 구입합니다. 카트는 나중에 등록한 책이 가장 위에 나타나므로 원하지 않게 후입선출 방식으로 책을 결제해 읽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흥미로운 책이 여럿 나타나 카트에 여러 권을 등록한 기간에는 더 일찍 등록한 책들이 뒤로 밀려 시간이 자나고 나중에 가서는 이 책을 카트에 보관한 이유는 잊은 채 책이 덩그러니 남아 궁금증을 자아내곤 합니다. 맞아요. 이 책도 언젠가 의지를 가지고 카트에 등록했지만 결제하지는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그 위에 쌓인 책을 읽어내고 보관함 맨 위에 이 책이 나타났을 때 이 책에 대해 제가 아는 정보라곤 언젠가 이 책이 국외 어딘가에서 어떤 상을 수상했다는 짤막한 기억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었어요. 책 표지에는 약간은 피곤한 듯 보이는 저자의 사진이 있었고요. 잠시 고민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목차엔 세 가지 제목이 적혀있었고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읽던 여러 작가님들의 단편소설집 목차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책 표지에 '연작 소설'이라고 적혀있었고 이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겠다는 정보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처음 읽기를 멈춘 때는 채식주의자 이야기가 끝나고 몽고반점 이야기가 시작된 다음 지인의 작업실에 홀로 도착한 화자를 지켜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영혜의 채식이 시작되기 전과 후의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에 걸쳐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변의 모든 세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은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든 만들 수 있습니다. 가족과 (맙소사) 사회의 시각으로부터 쉽게 온갖 단어들을 갖다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첫 이야기에서 영혜의 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온갖 이야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웠습니다. 다만 책 읽기를 멈춘 시점의 전개에 제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이던 사람이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각으로 보이고 또 어떻게 대해지는지를 따라가다가 갑갑해져 읽기를 멈추고 잠깐 베란다 (이야기에 나오는 그런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찬바람을 들이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덮어놓은 책에 읽어내지 않은 그 다음에 적혀있을 영혜의 납득할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상한 행동과 상태에 가족들의 (맙소사) 행동을 이미 끝까지 예상하고 있는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것만 같았습니다.

네. 이야기는 사실 조금 예상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마치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 나오는 죽음과 바람의 법칙인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며 흘러가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다시 지우아빠 - 이름이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는 - 의 이야기는 고통 다음의 번민의 감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비판적인 혹은 회의적인 사고를 잠깐 꺼놓고 이야기가 움직이는 대로 머릿속을 흔들거리게 놔둔 채로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곤 하는데 영혜의 현재에 이르는 일생에 이입하던 머릿속이 잠깐이나마 형부의 감정에 이입하려고 시도하다가 여러 사람들을 휘감은 밧줄 같은 것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얼굴을 찌뿌리며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가 그만 작가님이 쳐 놓은 함정에 깊숙히 빠졌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밀실에서 형부의 행동을 지켜보는 공범이 돼버렸고 다음날 아침 식탁에 엎드려 잠든 아내의 모습과 함께 단숨에 광장 한복판에 내던져져 거기 가득 모인 사람들, 출동한 병원 직원들,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의 경멸섞인 눈빛과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뭔가에 깜짝 놀라 깊은 잠에서 순식간에 깨어나는 느낌으로 그렇게 두번째 이야기 몽고반점이 끝났습니다. 아 맙소사. 내가 뭘 본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야기에서는 영혜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영혜를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때로는 어르다가 때로는 윽박지르는 듯 보이지만 한결같이 지극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이야기를 가로질러 가장 한결같이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줄곧 같은 이야기를 해 온 사람은 오히려 영혜 뿐입니다. 영혜는 자신의 생에 전체에 걸친 폭력과 억압의 끝에 꿈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기로 결정한 것 뿐입니다. 예상할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는 그 결정에 영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하나같이 두꺼운 책 한권을 가득 채울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이야기가 끝나갈무렵 병원을 나오면서 이야기에 따라 흔들리게 놔둔 머릿속을 잠깐 바로잡으며 잠깐이나마 이 다음, 그러니까 병원을 나가서 이 책에는 더이상 적혀있지 않은 그 다음의 현실을 생각해보려다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분명 지금까지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리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리 만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온갖 더러운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떨어져나가고 한번도 이야기에서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적 없는 진짜 주인공들만 남았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 잠깐이나마 현실을 생각하던 자신을 그대로 멈춰 놓고 온전히 남은 주인공들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읽은 책을 생각하다보니

네이비씰 승리의 기술을 읽고나서 한동안은 제 관점에서 수준 이하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이 정말 일을 망치자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장점은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할수록 이 책의 몇몇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이유는 좀 더 여러가지이겠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무능하고 또 무능한 의지는 악의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적의 대공망으로부터 살아돌아온 전투기의 총알자국을 보며 다음 전투기 설계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국 가방에 담겨 샤크베이스로 돌아왔고 그들은 결코 책을 쓰고 리더십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함께 해야 이 불편함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시간을 들여 생각한 끝에 이 책은 별로 추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blog/books-read-in-october.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11-16 21:13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