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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컴퓨터에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믿고 달리다가 계산중에 멈추거나 안내가 안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겪는 분들 이야기를 종종 봅니다. 당연히 가민 기계에 대한 실망을 보이고 또 가민 기계를 대체할 다른 기계가 있는지 알아보곤 하지만 결국 뾰족한 방법이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가민 기계를 아슬아슬하게 매번 장거리 주행에 들고나갑니다. 이게 차라리 브레베라면 내비게이션 기능이 고장나도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가면 되니까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지만 퍼머넌트를 혼자 달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가민 엣지 같은 소형 바이크컴퓨터에는 자동차에서 사용하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해선 안됩니다. 기계가 처한 기술적 한계를 이해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동작을 기대해야 합니다.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기계나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내비게이션 앱이 그렇게 길 안내를 잘해주는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계 성능이 충분히 훌륭할 뿐 아니라 경로탐색을 서버에 의존합니다. 둘째. 각 서비스마다 훌륭한 지도를 사용합니다.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기계여야 내비게이션 기능이 기대한 수준으로 동작할 겁니다. 그런데 가민 기계는 이 둘 중 어느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일단 성능부터. 이제 아이패드 프로같은 기계는 괴물같은 성능을 보여주면서도 배터리가 항상 10시간쯤 지속됩니다. 대신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대각선 길이가 8인치는 됩니다. 반면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는 기껏해야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에 배터리는 적어도 15시간1) 이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배터리 시간의 규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큰 배터리를 달거나 전력을 조금만 사용하게 하면 되는데 가민은 뒤쪽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가민 엣지 기계에 달린 프로세서는 어처구니없습니다. 사소한 메뉴 조작에도 한박자씩 느리게 동작합니다. 고작 몇 백 킬로바이트짜리 경로 파일을 불러오는데도 몇 초씩 걸립니다. 경로 탐색을 시키면 몇 분씩 걸리며 진행율을 제대로 표시하지도 못합니다. 프로세서가 너무 느린 나머지 장거리 라이딩 후 저장시키면 저장 도중에 기계가 다운된 채로 몇 분씩 유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기계에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요구하고 실시간 경로탐색 기능을 붙였다고요? 이게 정말 동작한다면 가민이 마법을 부리는 것 이외에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는 없고 실제로도 전혀 제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지도. 한국에서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앱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동작하는 이유는 각자 지도를 잘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김정호가 지도를 만든 이야기를 보면 지도 제작이 얼마나 노동집약적인 일인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직접 가서 기록하는 겁니다.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앱이 어떻게 내 앞에 있는 과속방지턱 개수와 위치를 이토록 정교하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내비게이션 제작사 직원이 직접 자동차를 몰고 과속방지턱을 기록하며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지도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듭니다. 이런 물건을 고작 바이크컴퓨터회사에 쉽게 공개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이크컴퓨터 제작사나 스트라바 같은 자전거 관련 서비스 회사들은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합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려고 하면 제대로 동작하질 않습니다. 자전거 뿐 아니라 자동차용 경로탐색은 어처구니없는 경로를 표시하기 일쑤이고 자동차보다 탐색 난이도가 더 높은2) 자전거의 경우에는 이 경로를 신뢰했다가는 나를 아무 경고도 없이 자동차전용도로에 밀어넣는 일도 일어납니다.

요새는 작은 크기와 긴 배터리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바이크컴퓨터와 연결된 스마트폰을 경로 계산에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고 이건 꽤 똑똑한 생각입니다. 굳이 가민 엣지같은 느려터진 기계에서 직접 모든걸 처리할 필요가 없고 그저그런 스마트폰도 바이크컴퓨터에 들어있는 하드웨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도도 뚜렷한 결과로 돌아오진 않을 겁니다. 일단 성능이 뛰어난 스마트폰에서도 결국 오픈스트리트맵으로 경로탐색을 할 겁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나쁜 결과를 더 빨리 받는다' 정도이겠군요. 또 이전에는 하드웨어와 거기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정도를 제작하면 됐었지만 이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앱도 만들어야 하므로 제작사의 개발 난이도가 올라갔고 이걸 모두 잘해내는 제작사는 드뭅니다. 제조사의 광고만 보고 트림원 같은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저도 한대 주문해봤지만 내비게이션 기능을 잘 수행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스트라바입니다. 스트라바는 바이크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데다가 지도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글로벌 히트맵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여기에는 자전거로 실제 주행한 길과 각 경로의 주행 빈도 데이터가 표시됩니다. 경로탐색을 할 때 실제 지도 데이터 없이도 꽤 신뢰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3) 하지만 어째서인지 스트라바의 경로설정 기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집니다. 짧은 거리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먼 거리의 경로를 탐색하기에는 너무 불편한데다가 항상 스마트폰을 거치해야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 제가 선택한 장거리 주행 방법은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에 경로를 표시하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끄는 겁니다. 그러면 바이크컴퓨터가 경로를 로딩한 다음 아무 처리도 하지 않고 베이스맵에 그냥 표시만 해줍니다. 그대로 지도 화면을 켜놓고 주행하다가 등골이 서늘할때마다 고개를 숙여 지도를 보고 선을 따라 주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중간에 멈출 일도 없고 계산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트림원에 기대하는건 가민 엣지는 슬슬 눈밖에 나기 시작했지만 브라이튼은 너무 후지고 엘리먼트의 디자인은 눈이 썩을 것 같아서 대안을 찾는 수준입니다. 만약 그들이 광고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동작한다면 대성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거리 주행에는 가민 엣지와 함께 거치하고 한쪽에는 경로만, 다른 한쪽은 기록만 하는 용도로 사용할 작정입니다.

다시한번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는 여러 가지 이유로 턴바이턴 내비게이션을 기대할 수 없으며 미래에도 이 문제가 개선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기계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만 시키면 스트레스받지 않고 불확실한 기능에 내 중요한 라이딩을 맡길 필요도 없습니다. 바이크컴퓨터에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냥 될 리가 없고 될 수가 없어요. 끝.

1)
그나마 겨울 시즌을 한두번 보내고 나면 200km 주행조차도 버티지 못하지만
2)
빗면이나 계단 등 명시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경로를 포함해야 하며 자동차전용도로를 피해야 하고 자전거전용도로를 선호해야 하는 등 요구사항이 더 복잡함
3)
가령 양평에서 용문으로 이동할 때 6번국도를 우회하곤 하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우회로를 이용하므로 스트라바에서 이 구간에 경로탐색을 하면 자동으로 우회로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지도에서는 이 구간에 경로탐색을 하면 그냥 6번국도로 경로를 지정해 위험한 구간을 달리게 만듭니다.
blog/directions-for-bike-computers.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5-06 19:05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