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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빗 아리아 체중계 사용기

(2014년 9월 2일)

체중계가 필요했습니다. 몸무게가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정도 기간에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간단히 동네 마트에 가서 하나 집어 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서기 2014년의 체중계는 좀 더 많은 일을 나한테 묻지 않고 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조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체중계 중에서 핏빗이라는 회사의 저울을 골랐습니다. 이 회사에서 파는 체중계 이름은 ‘아리아’‘입니다. 핏빛 아리아 …

체중계에 대한 제 요구사항은 일단 올라서서 체중을 잴 수 있어야 합니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저울도 그 정도는 하니까요. 그리고 측정한 체중을 내가 받아 적는 대신 알아서 어딘가에 기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기왕에 전력을 사용하는 김에 몸에 전류를 흘려 체지방량을 측정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도 요구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거기에 기왕이면 너무 이상하지 않게 생겨야 하고 너무 무겁지 않아야 하며 발로 차서 움직일 정도로 바닥이 미끄럽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아리아 체중계가 이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만족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상은 어땠을까요.

상자에서 체중계를 꺼내 뒤집어 건전지 끄트머리를 막고 있는 종이를 뽑아내고 건전지 뚜껑을 닫아 다시 뒤집으면 켜집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는 해야 하지만 디스플레이가 부실한 기계들이 대체로 그렇듯 처음 켜지면 스스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생성하고 작은 웹서버로 설치 과정을 안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체중계를 네트워크에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PC든 핸드폰이든 웹 페이지를 열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이드에서는 먼저 핏빗 웹사이트(‘‘https://www.fitbit.com/setup/’)에 접속해서 가이드를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폰으로 저 주소에 접속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 사용기의 대부분은 핏빗 웹사이트가 얼마나 거지같은지, 핏빗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멍청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물론 기계 자체의 사용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겁니다.

자. 일단 위에 이야기한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에서 일부 핏빗 제품을 구할 수 있지만 체중계는 한국에서 팔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한국 홈페이지에는 아리아 관련 메뉴가 아예 없습니다. 영문 페이지에 접속하려고 해도 자동으로 ‘‘kr’‘이 들어 있는 한국 페이지로 리다이렉트 해 버렸습니다. 한참만에야 페이지 하단 구석에 있는 국가 변경 메뉴를 눌러 영문 페이지로 바꿨고 그제서야 체중계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헌데 이 페이지는 스스로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핏빗 앱을 다운로드하도록 유도하는 페이지입니다. 그러니까 영문 페이지로 이동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앱을 다운로드해서 앱을 실행하면 굳이 저 페이지에 갈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보가 된 기분으로 앱을 실행하자 이번에는 회원 가입을 해야 했는데, 회원 가입 메뉴를 누르자 다시 사파리 브라우저를 열어 가입 페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쯤 되자 왜 체중계가 배송되기 전에 핏빗 웹사이트에 가입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입 페이지를 보기까지 핏빗 웹사이트, 핏빗 앱, 다시 핏빗 웹사이트를 거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가입하는데 필요한 온갖 정보를 입력했고 그러는 사이에도 저울은 계속 켜진 상태로 어떻게든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가입 과정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내 신장과 체중을 입력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신장은 대충 입력하고 체중은 이제부터 측정할 테니 빈 칸으로 남겨놓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트에 가입하려면 체중 정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체중을 측정하려고 체중계를 구입했는데 그 체중계를 사용하기 위한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체중 정보를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고요? 이게 무슨 가위를 샀더니 가위 포장을 가위로 뜯으란 소린가요. 급 짜증이 치밀었지만 환불하기도 뭣하고 해서 아무 숫자나 입력하고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가입에 성공했는데 가입한 다음 원래 앱으로 돌려보낸다든지 그런 배려는 절대 기대해선 안됩니다. 가입이 끝나자 나를 설정으로 가득한 이상한 페이지에 떨궈놓고는 가이드가 끝나버렸고 저는 직접 홈버튼을 두 번 눌러 핏빗 앱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핏빗 앱으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로그인을 하고 드디어 체중계를 어떻게 해 보라는 화면이 나타났는데 이 화면은 아이폰의 와이파이 메뉴에 가서 아리아로 시작하는 네트워크를 찾아 거기 접속한 다음 이 화면으로 다시 돌아와 링크를 누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앱에서 제시하는 설치는 결국 체중계 자체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접속한 상태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약속한 페이지 이름의 링크에 불과했습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맨 처음에 접속한 핏빗 웹사이트에서부터 이 링크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웹사이트에서 앱을 받고 앱에서 다시 웹사이트로 보내 가입시키고 다시 앱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다음 다시 체중계 네트워크상의 사이트에 접속시키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한국어로 설명이 나왔지만 체중계 내장 웹페이지는 영문으로만 나타났습니다. 어쨌든 설치과정을 마치고 다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되돌린 다음에야 체중계 설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체중계에 프로필을 등록해야 하는데, 이게 또 로그인한 계정과는 또 다른 짧은 이름의 프로필을 요구하는 방식인데 … 이 설명까지는 안 하겠습니다. 설치만 하다가 글이 끝나고 말겠어요.

거기에 나 말고 다른 친구를 초대하는 과정은 더 가관입니다. 친구의 이메을을 입력해 초대를 보낼 수 있는데 이 링크를 받아 핏빗에 가입하고 나서 나타나는 절차는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메일 링크를 받아 가입하고 나면 체중계를 설치하는 화면으로 보내줍니다! 그러니까 친구에게 링크를 받아 가입했더니 날더러도 체중계 초기설정을 하라며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바꾸라느니 말라느니 하는 안내를 보여주고 거기 멈춰버립니다. 여러 페이지를 클릭했다가 말았다가 로그인을 몇 번을 반복했다가 한 끝에 가까스로 친구 등록에 성공했지만 어지간해서는 이쯤에서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체중계의 기본 동작은 평소에는 전력을 아끼기 위해 꺼져 있다가 누군가가 올라가면 켜져서 체중을 재고 체지방량을 잰 다음 이를 보여주고 인터넷을 통해 핏빗 웹사이트를 통해 동기화한 다음 다시 꺼지는 것입니다. 동기화된 데이터는 핏빗 웹사이트나 핏빗 앱을 통해서 볼 수 있고 원한다면 IFTTT 채널을 통해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해둘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핏빗 웹사이트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IFTTT를 통해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하게 해놓고 스프레드시트에 차트를 넣어 그래프가 나오도록 해놨습니다. 일단 설정해 놓고 나면 매일 적당한 시간에 올라가서 몇 초 서 있다가 내려오면 알아서 기록되고 알아서 차트를 만들어 줍니다. 기록에 대해 신경 쓰지 않지만 알아서 해 주는 이것이 원하던 동작이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좀 많이 돌아온 것 같지만요.

전반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에 많은 문제가 있는 제품입니다. 일단 설치과정이 엉망이었고 웹사이트는 대단히 복잡하고 불편합니다. 수많은 설정 중에 눈에 띄는 영향을 주는 설정은 많지 않습니다. 앱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와 뭔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은데 앱 메인 메뉴에서 친구 초대 메뉴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위 메뉴 어딘가를 안내해 주면서 거기 가서 친구를 초대하라는 안내만 덜렁 나타납니다. 측정한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거나 공유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간단한 조작으로 프라이버시 체계를 우회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체중계 자체 소프트웨어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체중계 하나에 여러 사람의 프로필을 등록할 수 있고 대부분은 자동으로 누군지 알아내지만 가끔은 내가 누군지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내 이니셜을 띄우며 나인지 묻는데 처음에는 여기 대답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제품에 들어있는 한 장 짜리 메뉴얼에는 물론 안 나와 있었고 핏빗 웹사이트에도 특별히 안내가 없었습니다. 또 메뉴얼 같은 것이 있을까 했는데 그런 것은 아예 없었습니다. 한참만에야 프로필 메뉴 근처에 있던 ‘‘아리아 101’‘이라는 튜토리얼 메뉴를 눌러보니 거기에 ‘‘No’‘라고 대답하기 위해 체중계를 발로 탭 하라는 안내가 나와 있었습니다. 딱 거기에만 나와 있었고 FAQ를 포함한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잘 동작합니다. 내가 올라가면 알아서 내 프로필을 인식하고 체중과 체지방량을 측정해 보여준 다음 알아서 동기화하고 이러는 사이에 알아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록됩니다.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서는 전원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파악할 수 있고 그 이외에는 내가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웹, 앱, 펌웨어 등 모든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낮으며 원활하게 가입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기계 자체는 예쁘게 만들어졌고 기능 대로 동작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만들기까지 과정이 서려깊음과는 너무 거리가 멀도록 만들어졌고 이런 이유로 이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온갖 소프트웨어가 수정되어 설치와 등록 과정이 편안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요.

blog/fitbitaria.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10-09 21:32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