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in Kim

초식동물 게임 플레이어

듀랑고 정식 오픈 후에 주변에 이전부터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던 분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이전에 오랫동안 게임을 해 오던 분들이지만 한동안 이 분들이 게임을 한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분들과 하던 가장 대표적인 게임은 마인크래프트와 테라리아입니다. 또 그 중에서 어느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테라리아 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인크래프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긴 했지만 테라리아 쪽이 좀 더 여러 사람이 플레이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전자는 일인칭 또는 삼인칭 시점이라 적응하기 어려워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테라리아는 심지어 2D 게임이었고요.

이 게임의 플레이 경험이 대체로 그렇지만 느슨한 멀티플레이 경험과 이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에피소드가 게임 경험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디서부터가 게임이 직접 제공하는 경험이고 또 어디서부터가 플레이어들이 직접 만들어낸 경험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이 게임 경험을 다시 떠올려보면 내가 게임을 플레이한 기억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느슨하게 플레이하며 남은 추억이 대부분입니다.

오랫동안 이분들과 다시 게임을 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 집단의 특징을 짧게 정리해보면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느슨한 제약 속에서 방법을 찾아냅니다. 또 플레이어 각각이 원하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경쟁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목표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그리고 협동과 경쟁 방식을 타이트하게 제공하는 게임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초식동물이라고 정의하곤 합니다. 일단 게임이 방금 이야기한 조건에 적당히 들어맞으면 그때부터는 게임이 어지간히 자신을 괴롭게 만들어도 장시간 플레이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시장에 널린 어지간한 게임은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게임이 이런 바탕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떠나버립니다.

듀랑고는 좀 거칠긴 하지만 (지능지수 200 미만은 범접할 수 없는 제작이라든지) 초식동물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장기간 정착하게 만들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게임이 굳이 플레이어에게 피곤하게 굴지 않습니다. 알아서 적당한 자유도 범위 내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또 적당한 방법으로 목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경쟁이나 협력은 어느 한 쪽만 선택해도 상관 없고 각각의 방법 또한 적당히 선택하면 됩니다. 경쟁은 항상 결투장의 리더보드에서, 협력은 항상 보스몬스터를 돌아가며 때리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제 취향 역시 이쪽에 가깝고 덕분에 간만헤 PC나 플레이스테이션이 아니라서 접근성이 꽤 좋고 한국에서 나와 복잡한 방법으로 언어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오랜만에 취향이 비슷한 분들과 플레이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이런 게임은 상대적으로 장사가 덜 된다고 알려져 있어 생각보다 긴 기간에 걸쳐 취향에 맞는 느슨한 플레이와 경험을 같은 게임으로부터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