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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게임의 관계 역전

계기

제가 한동안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출퇴근길에 판교를 돌아다니면서 귀를 기울여보면 꽤 쉽게 PTW게임1)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어떤 게임에 지불한 금액이면 싱글플레이 게임을 몇 개나 살 수 있고 각각을 플레이하며 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왜 그 게임에 그렇게 지불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 끝에 차라리 스팀에 출시할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이미 실제 세상에서 충분히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경쟁하고 있는데 게임에서까지 그래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도 하고 또 과도한 경쟁 때문에 게임에서 떨어져나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판교역 계단에서 이런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리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거나 제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세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이 PTW게임에 집중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모델을 생각했습니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세계와 게임의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모델

전통의 세계에서 게임은 세계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강력한 총을 들고 괴물을 잡거나 가볼 수 없는 곳에 가서 위험한 모험을 하거나 여간해서 해볼 수 없는 경험 - 가령 헬리콥터 조종이나 F1 레이싱 같은 - 을 게임을 통해 할 수 있었습니다. 세금과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가상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런 경험을 하던 시대를 추억하는 분들을 팀 안팎에서 간혹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 세계에서 게임은 더이상 그런 전통적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역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 세계에는 전통적인 세상과 게임의 관계가 역전된 모델이 더 어울립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더이상 게임을 통한 경험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직접 가보고 직접 해봅니다. 사람들은 자동차와 비행기를 더 많이 타고 지구 곳곳을 직접 가봅니다. 또 지구 곳곳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은 가볼 수 없는 곳의 모험에 대한 호기심을 꽤 많이 충족시켜줍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해볼 수 없는 일에 속하던 레이싱은 어떨까요. 돈을 준비할 수 있다면 비교적 안전한 카트를 직접 몰 수도 있고 자동차 앞뒤에 붙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영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간접 경험은 영상을 통해 훨씬 간단하고 강렬해졌으며 직접 경험은 더 가까워졌고 깊어졌습니다. 죽음과 세금이 해결된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파티를 이뤄 맹수를 공격하는 대신 안전한 실제 자동차 안에서 사자에게 집게로 고기를 던져주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분당선 기흥역에서 에버라인으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가면요.

반대로 실제 세계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 일부는 더이상 실제 세계에서 거의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령 정당한 경쟁, 협력, 관계정립 같은 일은 이제 실제 세계에서 경험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필요로 합니다. 이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 세계에서 이 경험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또 이 경험을 달성하지 못할 때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면 실제 세계에서 이 경험을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경험은 실제 세계 대신 게임에서 제공합니다. 게임에서는 경쟁, 협력, 관계정립 같은 목표들을 거의 즉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따르고 댓가를 약간 지불한다면요. 지불할 댓가의 크기에 따라 경험의 크기와 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의 멀티플레이

집 근처에 있는 학교 근처를 지나며 등하교하는 학생분들의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이분들의 이야기해 흥미로운 점은 게임은 오직 멀티플레이 게임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싱글플레이 게임은 게임으로 인식하지 않거나 제 귀에 들려온 대화에 따르면 싱글플레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싱글플레이 게임도 일단은 게임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제 행동을 떠올려보고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얼마 전에 모던워페어 싱글플레이를 했는데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게임플레이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세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스트라바에 기록할 수 없으면 단 1미터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아마 장거리를 달리다가도 더이상 스트라바에 기록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라이딩을 때려치고 그냥 집에 갈 겁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보조배터리를 챙기고 새로운 바이크컴퓨터에 관심을 가집니다. 내 행동이 실시간으로 전시되지 않으면 자전거를 탈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마치 자신의 플레이가 실시간으로 전시되지 않으면 게임을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거나 게임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

똑같이 게임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게임에 기대하는 역할과 현대의 게임에 기대하는 역할은 꽤 달라졌습니다. 정확히는 둘을 구분하는 유효한 시장이 변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이 모델에서 게임은 실제 세계와 관계가 역전된 세계에 맞춘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단기적으로 유효한 시장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blog/reverse-the-relationship-between-the-real-world-and-the-game.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12-08 18:38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