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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staff-composition

인력구성

우연히 A, B, C급 인재를 언급하는 글을 봤습니다. 수 십년 전부터 닳고닳은 떡밥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정보사회를 구축한 전산학은 초기 극단적인 천재들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또 현대에 범인들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비디오게임 개발 역시 초기의 천재들이 그 근간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스포츠는 또 어떤가요. 산업의 태동기에 전설적인 천재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했습니다. 그 분들 덕분에 저 같은 어정쩡한 사람들이 월급도 받고 사대보험의 푹신함1)을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이름을 알 수 있는 산업의 여명기에 기여한 분들을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또 제가 모르는 분들을 더 알아보려는 일종의 역사를 배우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인력구성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본 주변의 환경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현대에도 이 산업에 그런 격차를 가진 인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수준의 인력은 산업을 떠났습니다. 아직도 이 업계에 남아 부조리를 질소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최고 수준의 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좁은 층위 사이에 영원히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내고 실행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최고 수준의 인력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래서 업계에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산업의 태동기에 천재들이 이룩한 기반 위에 남아 아주 느리게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이번 세대가 끝나기 전에는 바닥을 만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입니다.

대외에는 인재를 원한다고 광고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인력은 매달 소요되는 개발비용을 꼼꼼히 계산해야 할 정도로 비싸고 평범한 우리는 더이상 시장에서 그정도를 감내할만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 전부터 유일하게 채득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서로 눈치를 봐 가며 경쟁하지 않는 시점에 제품을 출시하고 출시 시점에 가까운 과거에 가장 유효했던 비즈니스모델을 빠르게 적용한 결과물을 내보내고 관찰자의 전두엽 맛이 진하게 밴 노이즈 가득한 포커스그룹테스트 결과에 따른 광고비용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함부로 충분히 훌륭한 인력을 구입할 모험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명 범인보다는 나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범인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오히려 범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장의 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현대의 개발팀은 B, C급 인력으로 이루어집니다. B급 인력의 업무는 C급 인력이 개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개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맥락을 이해하지 않아도 좁은 시야의 요구사항에 맞는 숫자만으로도 다른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달성한 결과 -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 를 재빨리 복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엑셀의 다음 행에 윗 행의 숫자에 1.01을 곱한 숫자를 반복해서 채우기만 해도 적당히 동작하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엑셀을 만져 숫자를 채우는 건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누구라도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현대 개발팀의 인력은 이렇게 구성됩니다.

blog/staff-composition.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11-16 17:58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