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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컴퓨터에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믿고 달리다가 계산중에 멈추거나 안내가 안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겪는 분들 이야기를 종종 봅니다. 당연히 가민 기계에 대한 실망을 보이고 또 가민 기계를 대체할 다른 기계가 있는지 알아보곤 하지만 결국 뾰족한 방법이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가민 기계를 아슬아슬하게 매번 장거리 주행에 들고나갑니다. 이게 차라리 브레베라면 내비게이션 기능이 고장나도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가면 되니까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지만 퍼머넌트를 혼자 달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가민 엣지 같은 소형 바이크컴퓨터에는 자동차에서 사용하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해선 안됩니다. 기계가 처한 기술적 한계를 이해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동작을 기대해야 합니다.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기계나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내비게이션 앱이 그렇게 길 안내를 잘해주는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계 성능이 충분히 훌륭할 뿐 아니라 경로탐색을 서버에 의존합니다. 둘째. 각 서비스마다 훌륭한 지도를 사용합니다.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기계여야 내비게이션 기능이 기대한 수준으로 동작할 겁니다. 그런데 가민 기계는 이 둘 중 어느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일단 성능부터. 이제 아이패드 프로같은 기계는 괴물같은 성능을 보여주면서도 배터리가 항상 10시간쯤 지속됩니다. 대신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대각선 길이가 8인치는 됩니다. 반면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는 기껏해야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에 배터리는 적어도 15시간1) 이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배터리 시간의 규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큰 배터리를 달거나 전력을 조금만 사용하게 하면 되는데 가민은 뒤쪽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가민 엣지 기계에 달린 프로세서는 어처구니없습니다. 사소한 메뉴 조작에도 한박자씩 느리게 동작합니다. 고작 몇 백 킬로바이트짜리 경로 파일을 불러오는데도 몇 초씩 걸립니다. 경로 탐색을 시키면 몇 분씩 걸리며 진행율을 제대로 표시하지도 못합니다. 프로세서가 너무 느린 나머지 장거리 라이딩 후 저장시키면 저장 도중에 기계가 다운된 채로 몇 분씩 유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기계에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요구하고 실시간 경로탐색 기능을 붙였다고요? 이게 정말 동작한다면 가민이 마법을 부리는 것 이외에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는 없고 실제로도 전혀 제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지도. 한국에서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앱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동작하는 이유는 각자 지도를 잘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김정호가 지도를 만든 이야기를 보면 지도 제작이 얼마나 노동집약적인 일인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직접 가서 기록하는 겁니다.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앱이 어떻게 내 앞에 있는 과속방지턱 개수와 위치를 이토록 정교하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내비게이션 제작사 직원이 직접 자동차를 몰고 과속방지턱을 기록하며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지도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듭니다. 이런 물건을 고작 바이크컴퓨터회사에 쉽게 공개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이크컴퓨터 제작사나 스트라바 같은 자전거 관련 서비스 회사들은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합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려고 하면 제대로 동작하질 않습니다. 자전거 뿐 아니라 자동차용 경로탐색은 어처구니없는 경로를 표시하기 일쑤이고 자동차보다 탐색 난이도가 더 높은2) 자전거의 경우에는 이 경로를 신뢰했다가는 나를 아무 경고도 없이 자동차전용도로에 밀어넣는 일도 일어납니다.

요새는 작은 크기와 긴 배터리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바이크컴퓨터와 연결된 스마트폰을 경로 계산에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고 이건 꽤 똑똑한 생각입니다. 굳이 가민 엣지같은 느려터진 기계에서 직접 모든걸 처리할 필요가 없고 그저그런 스마트폰도 바이크컴퓨터에 들어있는 하드웨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도도 뚜렷한 결과로 돌아오진 않을 겁니다. 일단 성능이 뛰어난 스마트폰에서도 결국 오픈스트리트맵으로 경로탐색을 할 겁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나쁜 결과를 더 빨리 받는다' 정도이겠군요. 또 이전에는 하드웨어와 거기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정도를 제작하면 됐었지만 이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앱도 만들어야 하므로 제작사의 개발 난이도가 올라갔고 이걸 모두 잘해내는 제작사는 드뭅니다. 제조사의 광고만 보고 트림원 같은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저도 한대 주문해봤지만 내비게이션 기능을 잘 수행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스트라바입니다. 스트라바는 바이크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데다가 지도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글로벌 히트맵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여기에는 자전거로 실제 주행한 길과 각 경로의 주행 빈도 데이터가 표시됩니다. 경로탐색을 할 때 실제 지도 데이터 없이도 꽤 신뢰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3) 하지만 어째서인지 스트라바의 경로설정 기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집니다. 짧은 거리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먼 거리의 경로를 탐색하기에는 너무 불편한데다가 항상 스마트폰을 거치해야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 제가 선택한 장거리 주행 방법은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에 경로를 표시하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끄는 겁니다. 그러면 바이크컴퓨터가 경로를 로딩한 다음 아무 처리도 하지 않고 베이스맵에 그냥 표시만 해줍니다. 그대로 지도 화면을 켜놓고 주행하다가 등골이 서늘할때마다 고개를 숙여 지도를 보고 선을 따라 주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중간에 멈출 일도 없고 계산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트림원에 기대하는건 가민 엣지는 슬슬 눈밖에 나기 시작했지만 브라이튼은 너무 후지고 엘리먼트의 디자인은 눈이 썩을 것 같아서 대안을 찾는 수준입니다. 만약 그들이 광고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동작한다면 대성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거리 주행에는 가민 엣지와 함께 거치하고 한쪽에는 경로만, 다른 한쪽은 기록만 하는 용도로 사용할 작정입니다.

다시한번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가민 엣지 바이크컴퓨터는 여러 가지 이유로 턴바이턴 내비게이션을 기대할 수 없으며 미래에도 이 문제가 개선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기계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만 시키면 스트레스받지 않고 불확실한 기능에 내 중요한 라이딩을 맡길 필요도 없습니다. 바이크컴퓨터에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 기능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냥 될 리가 없고 될 수가 없어요. 끝.

페이스북이 URI에 싸놓은 작은 똥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회사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자들을 추적하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페이스북의 새로운 fbclid는 너무 노출되어 있어 굳이 페이스북이 아니라도 웹 주소가 퍼지는 과정 일부를 쉽게 추적할 수 있어 이전에 비해 훨씬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의 추적 방식은 페이스북의 게시물이나 답글에 포스팅한 웹 주소 뒤에 고유 문자열을 붙여놓는 것입니다. 이 문자열은 아마도 같은 게시물, 서로 다른 답글마다 새로 생성되어 이들 각각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있을 겁니다. 이 문자열은 사용자들이 이 주소로 이동한다고 해서 바로 페이스북에게 뭔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주소를 복사해서 페이스북의 다른 게시물이나 페이스북 바깥의 어딘가에 붙여넣는 순간 이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페이스북 안에서는 당연히 누군가가 새로 포스팅한 글에 포함된 웹 주소가 이전에는 어느 게시물이나 어느 답글에 있었는지 즉시 파악할 수 있고 페이스북 바깥에서는 잠재적으로 이 주소가 페이스북 내부로부터 왔으며 페이스북 바깥에서는 이 문자열을 추적해 같은 페이스북 내부의 같은 게시물로부터 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페이스북은 구글과 달리 검색엔진을 운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페이스북은 잠재적으로 이 문자열을 통해 페이스북으로부터 출발한 주소가 페이스북 바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추적할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게다가 이 문자열이 페이스북 바깥을 돌고 돌아 다시 페이스북 안으로 돌아오면 페이스북은 자신들의 포스팅이 페이스북 밖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통찰을 가질만한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됩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웹을 크롤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요.

이 문자열은 페이스북 내부 뿐 아니라 페이스북이 아닌 곳에서도 모든 사용자들에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먹으면 이 문자열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구글처럼 광범위하게 인터넷을 크롤링하지 않더라도 같은 문자열을 포함한 웹 주소가 관심을 가진 작은 영역의 어디어디에 나타나는지를 파악한 다음 각 페이지의 포스팅 시각에 따라 정렬하면 웹 주소가 퍼져 나가는 순서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같은 웹 주소라도 서로 다른 문자열에 따라 전파속도가 다를 경우 이 경로를 파악할 수도 있고 또 운이 좋다면 이 주소가 페이스북의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아낼 여지도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그냥 복사해서 붙여넣으면 그만이던 주소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추적장치를 달고 다니게 됐습니다.

이런 페이스북의 행동이 싫다고 해도 사실 별 방법이 없습니다. 사용자들에게 URI 뒤에 붙은 똥을 떼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모바일 브라우저 사용자들은 웹 주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 자체가 간단하지 않으며 애초에 웹과 앱을 잘 구분하지조차 않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웹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중간에서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이 싸놓은 똥을 온통 묻히고 다니지 않도록 끊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2019-04-21 21:03

맥주 보관 문제

전주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 어느 봄날 저녁에 저는 전주시내의 한 예식장에 있었습니다. 여느 하객들과 마찬가지로 예식에 대한 관심보다는 밤 늦은 상경에 서둘러 밥 한끼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피로연장을 찾았습니다. 여느 뻔한 피로연장과 다르지 않게 수많은 하객들과 이들을 제한된 인원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먹여야 하는 직원들 사이에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난 자리는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치워졌고 비닐로 만든 식탁보가 덧씌워졌으며 가운데 소주 몇 병과 콜라, 그리고 맥주가 세팅됐고 바로 옆에는 몇 사람의 손을 거치며 플라스틱 손잡이가 끈적해진 병따개도 놓였습니다.

집에서 만들어먹자니 고통스러운 예식장 표준 식사메뉴인 잡채와 양념육회를 몇 젓가락 집어먹다가 문득 눈앞에 놓인 맥주를 쳐다봤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맥주하면 떠오르는 후각적 심상이 있습니다. 이런 냄새를 상상해보세요. 어느 초여름날 도시 근교 초저녁. 모래 바닥 위에 기둥 두 개를 세워 고정한 천막 아래에 자투리 나무를 짜맞춰 만든 평상에 비닐장판이 깔려 있습니다. 비닐장판은 실외에 몇 년 동안 방치되며 대부분 빛바랜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뿜어냅니다. 상 위에 지난 장마때 물에 잠긴걸 끄집어낸듯한 냄새를 풍기는 비닐을 깔고 종이접시에 담아낸 눅눅한 파전을 한 젓가락 집어먹으려는데 바닥으로부터 그 자리에 작년부터 골백번은 엎질러진 채 쉬어비틀어진 썩은 맥주냄새가 풍겨오는 겁니다. 한국 맥주는 맥주병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런 냄새를 상상하게 됩니다. 이제 평상 앞에서 눈을 감고 벌름거리는 코를 그대로 둔 채 주변에 헤이즐럿 향을 살짝 뿌리면 장소는 순식간에 여느 도심지 지하 1층에 있는 노래방이 됩니다. 잘 맡아보면 어둡고 끈적이는 페브리즈에 쩐 소파 사이에서 어젯밤 술 마시고 누가 토한 것 같은 냄새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하 1층 노래방 안에서 멍하니 쉰 맥주 냄새를 맡다가 순식간에 현실로 불려나온 제 앞에는 이미 종이컵 가득 아까 본 한국 맥주가 담겨 있었습니다. 여긴 천막 밑 평상도 아니고 지하 1층 노래방도 아니니까 뭐 괜찮겠지 싶어 한모금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한잔을 더 비우곤 말했습니다. “어 이거 뭐야” 그리고는 병을 집어다가 한잔을 더 따라 마시고 또 한잔을 더 따라 마시고는 끈적한 병따개를 집어들고 병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 이거 괜찮았습니다. 상상한 맛과 굉장히 달랐고 멀쩡한 맥주맛이었습니다. 멀쩡하다못해 맛있었습니다. 그날 결국 종이컵이 물렁해져 새 종이컵을 써야 했고 마지막 예식인 덕분에 하객이 우리 테이블만 남을 때까지 마셨습니다. 나중엔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예식장을 빠져나왔고 그제서야 하이트 공장이 전주에 있다4)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맛있었습니다.

판교

회식으로 예약한 돼지고깃집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일행은 드넓은 홀을 가로질러 기둥을 왼편에 두고 꺾어 나온 복도를 한참 지나서야 자리로 안내받을 수 있었고 자리에 붙어있는 번호는 거의 세자릿수에 가까웠습니다. 숯을 깔고 고기를 주문했지만 무슨 술을 마실지 결정하지 못해 술은 좀 있다 주문하겠다며 서버를 돌려보내고는 술 생각을 끊고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행 중 누군가가 새로 광고하는 맥주5)가 있는데 전에 먹어보니 괜찮았다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주문해보기로 하고 여러 병을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처음 보는 녹색 병이 깔렸고 그 중 일부를 따서 유리컵에 따랐습니다. 불판 가까이 뒤집혀 놓여 있던 유리컵은 커피머신 위에 올려놓은 에스프레소컵마냥 따뜻했습니다. 맥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는데 이건 영락없이 한국 맥주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봄날 저녁 판교 돼지고깃집에서 튀는 기름과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 사이에 앉아있던 저는 코로 숨을 한번 들이쉬자마자 끈적이는 쉰냄새로 가득한 천막 아래 평상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걸 만들어 파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맨정신으론 도저히 더 마실 수가 없었고 이정도면 굳이 자전거를 회사에 두고 퇴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시 판교로 돌아와보니 일행들이 이미 남은 술을 서버에게 반납하고 있었고 저도 제 테이블에 있던 술을 반납했습니다. 불판 가까이 있던 술병은 원적외선 치료기마냥 뜨끈했습니다.

분당

저녁때 실은 어제부터 땡기던 치즈에 잘 버무려진 짭짤한 감자튀김을 먹고싶어서 집 근처에 있는 패밀리레스토랑에 갔습니다. 감자튀김을 주문하면서 맥주라도 마실까 하고 메뉴판을 보니 카스 생맥주가 있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순간 판교 주변의 상가에서 익히 봐 온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판교에 널린 멋진 유리건물의 저층부에는 상가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상가들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복도에는 가게에서 쓸 물건이 쌓여있기도 한데 종종 그 사이에는 내용물이 들어있는 술병이 놓여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평소에는 그렇게 아무데나 쌓아놨다가 판매 당일에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든 다음 서빙하는 모양입니다. 또 그 술병들이 주문되어 불판 옆에 놓였다가 다시 냉장고로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이 패밀리레스토랑은 이벤트 메뉴의 객단가를 6만원으로 잡고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지경은 아닐 거라고 믿고 가장 싼 카스 생맥주를 시켜봅니다. 만약에 실패해도 다른 맥주 가격의 57%니까 돈 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느 술집과 다르지 않게 안주삼을 감자튀김이 나오기 한참 전에 맥주가 먼저 나왔고 소파 사이에서 페브리즈 냄새를 가득 품은 토사물 찌꺼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겠다는 각오로 한모금 마셨는데.. 어. 괜찮습니다. 파이프 안에 몇날며칠 늘러붙은 썩은 맥주찌꺼기 냄새 없이 그냥 멀쩡한 맥주입니다. 돈을 허공에 날려버릴 위기에서 금새 현실로 돌아와 잔을 거의 비울때쯤 감자튀김이 나왔고 바로 같은 맥주를 더 시켰습니다. 주문한 음식 메뉴만으로는 목표 객단가를 채우지 못했겠지만 술값으로 객단가를 상회했으니 패밀리레스토랑 입장에서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었을 겁니다. 평소에는 쉬어터진 냄새를 풍기는 카스 맥주였는데 여기서는 아니었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괜찮았습니다.

교훈

맥주 제조사들이 블라인드 테스트6)도 해가며 자신들이 그렇게까지 쓰레기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어필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우리 손에 들린 이 쓰레기 사이에 어째서 이런 거대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지 고민했었습니다. 사실 이유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 만원에 네 캔 짜리 편의점 맥주가 어째서 그렇게 놀랍도록 맛있었는지, 여름이 다가올수록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게 앞에 생맥주통을 쌓아놓고 장사하던 그 닭집 맥주가 어째서 그렇게 놀랍도록 쉬어터졌는지 말입니다. 우유는 냉장유통이 상식이지만 어째서인지 몰라도 맥주는 그게 상식이 아닙니다. 여느 고깃집이 그렇게 하듯 상온에 방치했다가 냉장고에 잠깐 넣어 차게 만들어 내놓는 맥주가 멀쩡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이쯤 되면 맥주회사는 자신들이 멀쩡한 물건을 만들어 판다고 블라인드 테스트 기사를 내놓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게 냉장유통을 해야 하는 물건이라고 판매점에 광고를 해야 할 지경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맥주 보관 문제를 피할 적당한 방법은 있습니다. 맥주 공장이 있는 도시에 간다면 그 회사의 맥주를 사 마십니다. 생맥주를 마셔야 한다면 비교적 깔끔한 가게에 가거나 표준 매뉴얼을 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프랜차이즈 가게에 갑니다. 그런 곳이라면 최소한 맥주통을 뙤약볕에 방치하거나 몇날며칠 기기 청소 없이 판매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적을 테니까요. 오늘 맥주를 시켜 마신 그 가게에는 다시 가서 또 적당히 맛있는 짭짤한 감자튀김에 그 생맥주를 시켜 마실 겁니다. 그 가게의 맥주는 아마도 오비맥주에서 생산에 관여한 사람들이 의도한 맛과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며 고객들을 바보로 만드는 마케팅 대신 멀쩡한 시설과 프로시저에 따라 술을 파는 가게를 조사해 리스트를 공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인데 요즘은 흐지부지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2019-04-14 22:09

3월에 읽은 책 정리

지난 1월, 2월에 이어 3월에 읽은 책을 정리해 둡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은 세상의 여러 가지 경제적인 사건을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책에서 가끔 언급될 뿐 아니라 뒷부분에 책이 저자의 자서전으로 변신할 때 나타나는 전작 넛지는 읽지 않았습니다. 넛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세상의 정말 중요한 일은 그런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점차 인간에 대한 회의론자가 되어 가는 중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말 자체를 인터넷에서 어느 뉴스 사이트에 나온 긴 글을 읽다가 본 적이 있는 수준에서 이 책을 읽고 제가 받아들인 행동경제학은 그 이전까지는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콘들의 세상을 기준으로 경제적인 사건의 진행과 결과를 연구해온 경제학이 실제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콘 대신 실제 불합리한 판단을 반복하는 인간들에 적용해 사건을 설명하려 시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제게 그것이 이콘들의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의미 있는 책입니다. 한편으로는 실제 세계의 문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 저자는 분명 책이 자신의 자서전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아무리 봐도 그 말은 틀렸습니다.

서늘한 신호

서늘한 신호는 사실 작년 연말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진이 빠져 끝까지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의뢰인이 처한 폭력 상황으로부터 위험 수준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결정하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사회에서 생활하는 개개인이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폭력 상황을 나열하고 실제 사례를 들어 이런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행동 요령을 설명합니다. 가령 시작부터 성폭력 생존자의 사례에서 이 생존자가 성폭력에 노출된 이유와 예상할 수 있는 죽음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생존 교훈이 나열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선택하는 요령,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법, 사회적으로 길러진 행동양식에 따른 심리적 덫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이를 회피하는 요령을 최소한 이론적으로 설명합니다. 또 일상생활이나 직장, 친구, 사람이 모인 그룹 등 여러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 사건의 징후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하지만 어떤 설명보다도 이 책의 원래 제목인 'Gift of Fear' 자체가 폭력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내 직관은 나를 지금까지 생존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도망치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교훈입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어느 날 타임라인에 지나가는걸 보고 그 자리에서 구입해 또 그 자리에서 읽어버린 책입니다.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 구성이 가볍고 읽기 쉬웠습니다. 또 읽은 다음에는 지난 달에 맙소사 마흔을 읽고 든 기분처럼 예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내가 포함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할 때 쉽게 사용하는 예쁜 말들이 결코 그들을 대우하거나 사회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령 출퇴근할 때 타는 지하철에서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분들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양보합시다' 같은 표현이 당당하게 수만명에게 울려퍼지는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란 어떤 것일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사회에서 자립하는 일과 내가 하고싶은 일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상깊었습니다.

· 2019-04-14 18:00

애플워치 사용기

3년 전에 애플워치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사용하던 보통 손목시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했지만 딱 한가지, 초침이 정확한 시각에 맞지 않는 점이 불만이었습니다. 제가 초침까지 정확한 시각을 봐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방송이나 항공산업에 종사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인터넷 서비스 대부분은 정시로부터 몇 초 정도 틀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초 단위가 정확히 맞는 시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로 초 단위가 정확한 시계는 제가 범접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애플워치의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로 정확한 시각을 광고하고 있었고 적당한 가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 싶어 애플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워치는 시계 이외의 기능도 있었습니다. 하드웨어는 아무래도 속도보다는 저전력이 핵심일 것이 분명한 낮은 속도로 동작하는 프로세서와 조그만 스토리지 기반에 심박계와 모션 센서, 기압계, 모션센서 정도입니다. 그 외에 제가 모르는 다양한 하드웨어가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하드웨어는 저 정도입니다. 소프트웨어에는 아이폰과 비슷한 몇몇 내장 앱과 애플워치를 지원하는 서드퍼티 앱을 이용해 기능을 확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애플은 아이폰보다 더 사용자의 몸에 가까이, 더 오래 붙어있을만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해냈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불만으로 가득 차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간의 결론은 애플워치는 '시계'를 제외한 나머지 어떤 용도로 만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먼저 정보를 전달하는 기기로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표시할 수 있는 정보량은 뻔했습니다. 작은 화면이 정보를 잘 전달하려면 사용자의 행동을 잘 추적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적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가령 온갖 정보기기 사용 사례에 늘 등장하는 비행기 탑승 시나리오를 생각해봅시다. (왜 항상 비행기 탑승 시나리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플워치의 작은 화면에 내가 탈 비행기의 보딩시작시각, 출발시각, 터미널 이동시간을 고려한 출발시점을 한 화면 가득하게 보여줄 수 있고 이미 대다수 앱이 그러고 있습니다만 사실 각각의 정보를 시점과 상황에 맞게 작은 화면을 통해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앱 개발사들은 이런 연구를 그리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플 자신도 이런 행동과 맥락에 따른 정보제공보다는 별로 와닿지 않는 통화 중 차고 문 여닫는 시연이나 호수 한가운데에서 전화받는 시연 따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드퍼티 개발사들의 동기를 유발하는데 실패했고 애플워치용 앱스토어는 몇 년 째 (몇 달 아님) 거의 비슷한 앱을 나열한 초기화면에 여전히 별로 매력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않은 앱 목록이 있을 뿐입니다.

느립니다. 애플워치는 느립니다. 가장 최근 세대 제품도 충분히 빠르지 않습니다. 애플워치는 손목에 매달려 움직이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로부터 정보를 얻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지금 당장 표시되어야만 합니다. 애플워치 앱스토어에 천년만년 걸려있는 앱 중에는 환율 앱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폰 대신 애플워치에 깔린 환율 앱을 실행하며 사용자가 할 기대를 생각해봅시다. 주머니나 가방 안에 있을 아이폰을 꺼내 실행하는 것보다 더 빨리 정보를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로딩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어야만 그나마 앱의 초기화면에 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시간이면 아이폰 앱을 실행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폰은 모든 작업을 훨씬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주머니나 가방만큼 가까이 있는데 말입니다. 다른 작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에게 질문하면 시리는 종종 응답이 지연됩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스트라바7) 초기화면은 로딩이 덜 끝나 버튼이 눌리지 않습니다. 곧 버스가 도착할텐데 버스 안내 앱은 아직 로딩중입니다. 이런 경험이 쌓인 결과 애플워치 배터리시간은 자꾸만 늘어났습니다. 어지간한 작업을 애플워치로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앱을 언인스톨하고 아이폰 앱의 푸시만 받아도 별 무리 없이 살 수 있는데 뭐하러 로딩을 기다리며 애플워치에 앱을 직접 설치해 사용할까요?

애플워치의 피트니스 기능은 부정확합니다. 특히 심박측정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애플워치가 심박을 온전히 측정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바닥에 누워 잠잘때 뿐입니다. 네. 정말로 누워서 잠잘때 외에는 심박을 예정된 간격에 따라 정확히 측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일단 애플워치가 선택한 광학식 심박측정 자체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피부에 땀이 나면 심박을 자주 놓칩니다. 네. 심박을 놓칩니다. 운동강도를 올려 실내자전거를 탄 다음 기록을 보면 중간에 별다른 이유 없이 심박이 사라진 구간이 나타납니다. 이를 악물고 드랍바를 잡고 있었을 뿐이지만 단지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는 이유로 심박은 사라지고 운동량 계산은 오차가 큰 한심한 숫자를 표시합니다. 파워미터 데이터를 참고하는 스트라바가 아니었으면 애플워치에 뜬 한심한 숫자를 믿었을 겁니다.

심박은 부정확하고 또 너무 띄엄띄엄 측정합니다. 가령 핏빗8)은 심박을 매 5초마다 측정합니다. 그러고도 배터리는 최대 1주일간 유지됩니다. 애플워치는 매 10분 (초 아님) 마다 심박을 측정하고 모션센서로 내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추가로 심박을 측정합니다. 워크아웃이나 스트라바 같은 앱을 사용하면 심박 측정 주기를 1초로 할 수 있습니다만 스트라바 앱을 통해 연속으로 심박을 측정하면 배터리는 6-8시간 안에 바닥납니다. 이 말은 애플워치가 한동안 피트니스 기기로 광고했지만 이 기기를 결코 지구력 운동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루짜리 등산은 물론이고 가장 짧은 브레베9)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번은 자랑스럽게 액티비티가 없을 때 심박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할 때 경고했는데 이건 기적적으로 10분에 한번 심박을 측정할 때와 내가 인터넷 게시물을 읽으며 짜증이 대폭발하는 순간이 일치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애초에 10분에 한번 측정하는걸론 아무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나마 잘때 애플워치를 사용하면 다른 수면 측정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심박을 통해 수면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데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핏빗이 압도적으로 더 잘할겁니다. 그쪽은 10분이 아니라 5초마다 측정하니까요.

패션 용품으로는 어떨까요.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흰색을 골랐습니다. 흰색 케이스는 제품 라인업 중 가장 스크래치가 안 생기는 재질로 만들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인정합니다. 알루미늄이나 스틸 케이스를 사용하는 애플워치들은 이미 바람만 불어도 스크래치가 생긴다는 젯 블랙 아이폰 뒷판 꼴이 됐지만 흰색 케이스는 사정없이 여기저기 부딪쳤음에도 생활 스크래치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하지만 애플 웹사이트 어디에서도 이 케이스가 애플에서 발매하는 스포츠밴드를 제외한 그 어떤 밴드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워치는 시계 본체와 밴드가 직접 연결되므로 둘 사이의 색상이 다르면 놀랍게 꼴보기싫게 됩니다. 가령 흰색 케이스에는 가죽 밴드가 놀랄 정도로 안 어울립니다. 또 가죽 케이스는 연결 고리가 스틸 케이스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나머지 알루미늄 케이스, 특히 색상이 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에 가죽 밴드를 연결하면 길거리에서 아무 옷을 조각조각 구입한 다음 대충 기워 입은 듯한 어처구니없는 하이퍼스팀펑크 액세서리가 되고 맙니다. 패션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밴드가 모든 라인업을 고려해서 제작되지 않으며 웹사이트에서도 이런 점을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밴드나 케이스에는 서로 어울리는 소수의 조합이 있고 이는 이미 웹사이트에 나열된 사진의 조합 뿐입니다. 이 조합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엉멍이 됩니다. 이런걸 패션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참다못해 두번째 애플워치를 구입해 지금은 애플워치 두 개를 사용합니다. 최초의 용도는 애플워치를 하루에 22시간쯤 하고 있었더니 충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낮에만, 하나는 밤에만 사용하면 하루 두 번 완전히 충전된 애플워치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흰색 케이스 말고 스틸 케이스가 필요했습니다. 스틸 케이스에는 그동안 흰색 케이스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쓸 수 없던 가죽 밴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아 이제는 하루 두 번 충전 걱정 없이 애플워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또 가죽 밴드가 어울리지 않을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근본적으로 기기의 용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십 수년 전 아이팟, 폰,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로 정리된 아이폰에 비해 애플워치는 수 년에 걸친 무성한 소문과 조악한 선점 제품 가운데 팀쿡의 손목에서 뜬금없이 등장했습니다. 꿈은 패션 아이템과 작은 아이폰이었겠지만 현실은 그 어떤 미션도 깔끔하게 처리해내지 못하는 주기적으로 교체할 또 하나의 기기일 뿐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패션 아이템으로 광고했고 이제는 피트니스 기기로 광고하는 모양인데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똑바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피트니스 기기 관점에서 다음 번에 - 일이년 후가 되겠지만 - 손목에 장착하는 피트니스 기기를 구입한다면 그때는 핏빗 같은 좀더 단순하고 목적에만 충실한 기기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미 지구력 운동에는 와후 체스트 스트랩과 가민 바이크컴퓨터, 스마트 트레이너에 달린 파워미터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굳이 일상생활용 피트니스 기기에 그렇게 큰 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패션 아이템이면서 시간이 잘 맞는 장치라면 가민에서 나온 시계 중 아날로그 시계이면서 폰과 최소한의 정보를 주고받아 화면에 표시하는 수준의 기능을 제공하는 사례가 장기간 사용에도 항상 교체할 필요가 없는 정보기기로써 적당한 수준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장치들 각각은 다시 너무 좁은 목적에 집중해 그 외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최소한 애플워치처럼 모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 2019-04-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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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나마 겨울 시즌을 한두번 보내고 나면 200km 주행조차도 버티지 못하지만
2)
빗면이나 계단 등 명시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경로를 포함해야 하며 자동차전용도로를 피해야 하고 자전거전용도로를 선호해야 하는 등 요구사항이 더 복잡함
3)
가령 양평에서 용문으로 이동할 때 6번국도를 우회하곤 하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우회로를 이용하므로 스트라바에서 이 구간에 경로탐색을 하면 자동으로 우회로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지도에서는 이 구간에 경로탐색을 하면 그냥 6번국도로 경로를 지정해 위험한 구간을 달리게 만듭니다.
blog/star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4-08 20:32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