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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네이밍

결론: 항상 태스크 이름은 기능을 잘 설명하고 기능을 구현할 때 개발팀이 얻을 이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이나 태스크 이름에 기술 이름이 튀어나왔다면 뭔가 잘못된 신호이며 그대로 놔두면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지난번에 개발 과정에서 잘못된 용어를 사용해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기능으로 오인받은 나머지 잘못된 우선순위를 부여받는 상황에 개입하는 통역 역할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잘못된 네이밍을 그대로 놔둔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프로젝트에서 모든 기능을 미친듯이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이전에 양산형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마일스톤 진행에 따른 회고 없이 이미 거의 확정된 기능을 미친듯이 찍어냈습니다. 대강 게임처럼 보이는 주요 기능이 완성되고 스티브잡스의 첫 아이폰처럼 메뉴를 잘못 건드리면 오동작하기는 했지만 숙련된 개발자들의 손에서 게임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무렵 슬슬 상점 기능을 추가할 때가 왔습니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상점을 게임의 나머지 부분과 비슷한 엑셀 데이터 기반으로 개발했다가 상품을 추가하거나 수정할 때마다 패치를 통해야 했고 이때마다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했습니다. 특히 상품을 추가할 때는 '재접속하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해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잘못된 상품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때는 모든 고객들의 접속을 중단시켜 반드시 패치를 다운로드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 때마다 극심한 이탈이 일어났습니다만 개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상점 데이터라도 서비스 중단 없이 그때그때 다운로드하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당연해보이는 기능에 공감대가 필요했던 이유는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개발팀은 이미 최대 속도로 모든 기능을 미친듯이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의 서비스에는 유용하겠지만 당장의 일정을 더 줄여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자는 요구는 개발팀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개발팀 밖에서는 상점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기능이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에 개발팀의 의지나 상태와 관계없이 개발일정에 실시간 상점 업데이트 기능이 다음 마일스톤 계획에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네이밍이 좀 이상했습니다. 이 상점개발 태스크 이름은 'CDN 기반의 상점기능'이었습니다.

어떤 기술이나 기능이 시장에서 성숙하기 전에 종종 기술 이름을 상품 이름이나 의사소통에 직접 사용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가령 물체를 3차원으로 인식하는 카메라의 정확한 용도를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고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스마트폰 사양표에 'ToF 카메라 채용'이라고 적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IoT'가 정확히 뭐 하는 기능인지 고객에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용어를 상품명에 직접 사용합니다. '5G' 네트워크가 정확히 고객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초시대'같은 모호한 의미로 광고합니다. 'OTT'가 뭔지 고객에게 설명할 수 없으므로 '특정 통신사의 OTT 서비스'같은 표현을 고객에게 뻔뻔하게 내놓습니다. 시장이 성숙하며 기능의 정확한 용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제품 이름이 나타나고 이제서야 돈을 내고 사용할만한 상품이 나타납니다. 기술 이름이 제품 이름에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 제품을 광고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이 제품이 정확히 뭔지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CDN 상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 이름은 기술적으로 기능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데이터 버전을 비교해 패치를 받기는 하지만 게임이 실행되는 도중 적당한 시점마다 상점 데이터가 변경되었는지 확인해 고객이 인식하지 못하는 시점에 상점 데이터를 업데이트 해놓는 겁니다. 이 과정에 '당연히' CDN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업데이트 확인 및 데이터 다운로드 속도를 감소시킵니다. 하지만 이 기능의 핵심은 서버와 네트워크 기술이 아니라 상점 데이터를 게임의 나머지 부분과 비슷한 엑셀 데이터 기반으로 작성한 패치를 게임 실행 시점에 한 번 다운로드하는 대신 게임 진행 중에 확인해 게임 진행 중에 여러 번 다운로드하는 겁니다. 그 결과로 잘못된 상품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면 상점에 이미 진입해 있는 고객은 결제단계에서 구입에 실패하고 상점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수정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태스크 이름은 이름을 작성한 사람이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능에 사용되는 기술 이름을 붙여놓은 결과입니다.

당연히 개발팀에서 이 태스크는 적절한 우선순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데이터 다운로드에 사용할 서버와 네트워크 기술은 개발팀 입장에서 와닿지 않는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이 태스크 이름을 보는 순간 대다수의 비즈니스로직 레이어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은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버렸고 백엔드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 역시 자신들이 어디까지 개발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개발은 태스크 이름 중에서 우리들이 이해하는 유일한 단어인 '상점'까지만 이루어졌고 '상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무시됐습니다. 모두들 나머지 부분인 'CDN'은 '거 일단 상점 개발하고 나중에 하자'며 간단히 넘어갔고 게임에 상점 기능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상점 이외의 부분은 잊혀졌습니다. 결국 이 상태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번에도 급한 업데이트로 잘못 올라간 상품을 긴급히 수정하기 위해 서버로부터 모든 고객을 내쫓기를 반복했고 이미 구입한 고객들의 DB를 검색해 수정해야만 했으며 심하면 피크타임에 긴급점검을 남발했습니다.

이 사례의 교훈은 앞에서 이야기한 통역의 역할이 없거나 실패하면 이전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지만 이 교훈이 다음 업무에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품이나 기능 이름은 항상 그의 본질과 용도, 동작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발팀이 기능을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기능 이름은 이 기능을 구현할 때 개발팀이 얻게 되는 이익을 설명하는 것도 좋습니다. 기능 이름에 고객들을 내쫓지 않고서도, 긴급점검을 걸어 우리들 뿐만 아니라 퍼블리셔쪽 스탭들을 긴장상태로 대기시고 점검 프로세스를 실행하기 위한 온갖 귀찮은 커뮤니케이션 없이도 실수를 몇 분 안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일부라도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개발팀이 이 기능을 그렇게까지 무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항상 태스크 이름은 기능을 잘 설명하고 기능을 구현할 때 개발팀이 얻을 이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이나 태스크 이름에 기술 이름이 튀어나왔다면 뭔가 잘못된 신호이며 그대로 놔두면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됩니다.

· 2020-02-27 19:22

양산형

결론: 현대의 양산형 게임은 낭만 시대의 양산형 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개발됩니다. 구인은 화물숭배신앙을 통해, 코어디자인은 유튜브로부터, 엔지니어링은 컴팩의 방식으로, 비즈니스모델은 강력한 눈치와 복제를 통해 개발됩니다.

낭만 시대

2천년대 초중반의 개발을 돌이켜보면 이 시대야말로 낭만적인 개발을 하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MMO 게임을 만들려던 개발팀이 어디에나 널려있었고 다들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꾸역꾸역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동작하는 MMO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다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게임을 만들고 있던 덕분에 출시된 게임 상당수로부터 비슷한 시행착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고객들은 이런 게임들을 통틀어 양산형 게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들 각각은 딱히 이런 게임들을 양산할 의도는 없었지만 '업계'로 불리는 더 거대한 조직 관점에서는 비슷비슷한 게임이 반복해서 출시됐으니 그렇게 불려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대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큰 이유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행착오가 허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가령 규모가 큰 게임을 개발하는데 3년 정도는 주어졌고 덕분에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비싼 귀금속처럼 반짝이는 3개월짜리 마일스톤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신입 스탭을 더 뽑을 수 있었고 이들을 교육할 수 있었으며 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팀 내에서 연구할 자원도 있었습니다. 마일스톤을 마치면 큰 규모로 테스트해볼 여유도 있었고 이 경과에 따라 개발을 회고하고 다음 마일스톤을 계획할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 낭만의 시대를 거쳐 스텝들이 발전하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높은 확률로 프로젝트가 드랍되더라도 이 경험을 '업계' 곳곳으로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시간이 흘러 모바일게임을 만들고 서로 더 짧은 기간에 더 많은 매출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전과 비슷한 볼륨으로 MMO 게임을 만드는데 이제는 이전의 절반 이하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1.5년보다 더 긴 기간동안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할 위험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마일스톤을 한달 단위로 구성하고 마일스톤 사이에 회고할 시간과 다음 마일스톤을 계획할 여유를 두지 않습니다. 1.5년 안에 서비스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중간에 우리를 돌아볼 여유를 프로젝트 수준에서 만들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늘 피처를 마감하고 내일 아침부터는 다음 마일스톤의 새로운 피처 작업을 시작합니다. 계획, 회고, 개발, 조립, 교육 온갖 작업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병렬로 진행됩니다. 누군가는 잠깐 회고할 여유를 가지겠지만 누군가는 바로 이어서 다음 피처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이 난리 속에 더이상 신입 스탭을 구인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이들을 교육할 수 없고 우리들 스스로도 신입 스탭을 어떻게 교육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업계' 어디선가 신입 스탭을 교육해 3년차 정도로 성장시켰기를 바라며 피지의 원주민들처럼 활주로와 관제탑을 세워놓습니다.1) 구인은 위축되고 사람은 돌고돕니다.

디자인 외주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시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코어 게임디자인은 우리가 알고있는 장르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디자인을 고려할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게임의 코어디자인을 복제해냅니다. 컴팩이 IBM 호환 시스템을 지적재산권 문제로부터 합법적으로 개발해낸 방법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코어디자인을 복제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상대 게임의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하며 구현 방법을 추측하고 기획에서 핵심 시스템을 설계하고 엔지니어들이 이를 개발해내며 에셋 아티스트들이 여기에 필요한 아트 에셋을 발주서대로 제작해냅니다.

이 과정에 게임디자인이 개입할 여지는 아주 작습니다. 코어디자인은 성공한 게임의 유튜브 영상으로부터 옵니다. 서브시스템디자인은 서비스 중인 다른 게임의 스크린샷을 컴팩의 방식으로 작성한 기획서를 통해 개발됩니다. 이제 회사들마다 강력한 사업부서를 운용하고 있고 이들이 이미 서비스 중인 다른 회사의 게임들을 강력하게 분석해 유효할 것으로 예상하는 비즈니스모델과 운영방침을 미리 준비해놓습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회사라면 데이터분석 부서를 통해 비즈니스모델을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험해냅니다. 이미 같은 회사의 다른 게임에서 사용하는 운영 시스템을 인터페이스 수준에서 붙여 서비스에 대비합니다. 낭만 시대에 신경쓰던 게임디자인은 현대에 그때만큼 중요하지도 않고 그때만큼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양산형

2천년대 초중반의 양산형 게임은 동시에 다 같이 비슷한 게임을 만든 결과로 그렇게 불렸다면 현대의 양산형 게임은 실제로 서로가 서로를 대한민국 법률을 지키는 선에서 복제해 코어 게임디자인을 구축하고 서비스에 당연히 필요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며 서로의 정책을 강력하게 연구한 비즈니스모델과 운영정책을 통해 실제로 양산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고객 입장에서 실제로 비슷해보이는 게임이 시장에 나타나며 이들은 과거와 달리 실제로 서로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결과입니다.

우리의 과제

게임회사에서 시스템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 관점에서 이 상황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과제는 좀 더 유연한 시스템디자인입니다. 가령 이전의 어떤 프로젝트의 라이브 상황에서 목요일 새벽 업데이트를 앞두고 사업의 요구사항을 받아 캐릭터에 새로운 액세서리슬롯을 추가하고 리소스를 만들고 데이터를 만들고 밸런스를 조정한 다음 상점 데이터를 만들고 이벤트를 만들어 자정 즈음에 완성한 다음 목요일 새벽에 예정대로 업데이트한 적이 있습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현대의 게임비즈니스 의사결정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과제는 이런 상황조차도 놀라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라이브 상황에서 이전 시대에는 추가할 수 없었던 요소를 이제 추가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단히 유연한 시스템디자인 컨셉을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당분간은 회사와의 계약을 깨지 않기 위해 양산형 게임의 시스템디자이너에게 이런 과제가 주어져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 2020-02-23 14:29

불친절

결론: 위키에 기반한 문서관리시스템은 실수에 강하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 보다 관대하고 친절하게 가이드해야 합니다.

거슬리는 문구

주말에는 지난 수 년에 걸쳐 사용해 온 도쿠위키2) 편집화면에 적힌 문구를 수정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동안 계속해서 거슬리던 문구 하나를 삭제했습니다. 도쿠위키에서 문서를 수정할 때 텍스트박스 위쪽에는 문서를 더 좋게 만들 자신이 있을 때에만 편집하세요.3)4)라고 적혀있습니다.

처음으로 위키라는 기록 도구가 국내에 전파될 무렵의 분위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위키 시스템의 문법과 문서의 구조화, 하이퍼링크 생성, 공동작업과 자동버전관리 같은 개념을 생소해했습니다. 특히 게시판처럼 그저 텍스트를 좀 올리고 이미지를 좀 붙이고 링크를 좀 걸고 싶을 뿐인 사람들에게 위키는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문서 전체가 이상한 모습이 되기 일쑤였고 이는 관리자들을 항상 불안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위키에는 샌드박스나 플레이그라운드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페이지들이 생겨났고 이 페이지는 처음에 이곳으로 내몰린 누군가가 깨작거린 흔적이 남지만 이내 버려졌습니다. 사람들이 위키 시스템에 익숙해져 이곳에서 연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위키 시스템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도쿠위키를 사용하면서 처음에 이야기하던 문구는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책임 하에 모든 수정을 했습니다. 실수하면 그냥 페이지를 다시 열어 실수를 수정하거나 이전 리비전으로 되돌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문서를 수정할 때 텍스트박스 위에는 저런 약간은 고압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모욕적으로도 느껴지는 표현이 적혀있었고 항상 거슬렸습니다. 늘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는 시간을 약 1분쯤 써서 이 문구를 삭제했습니다.5) 이제 에디터에는 간결하게 편집을 마치면 저장하라는 메시지와 플레이그라운드 안내 링크만 남았습니다.

저항

어떤 세계에서는 문서를 공동작업이 가능한 환경에서 작성하고 서로 긴밀히 연결해두는 것이 당연하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는 서기 2020년에도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문서를 작성한 다음 형상관리도구에 파일 째 커밋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후자의 문서관리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회사에서 구입해준 컨플루언스6)가 매우 편리하고 강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컨플루언스를 구입해준 프로젝트에서 항상 가장 많은 문서를 만들어내고 또 가장 많은 문서를 서로 연결하고 업데이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 또한 체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문서를 작성하는 이상한 습관들에서 좀 화난 채 글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는 단순히 워드를 버리고 위키에 작성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링크를 통해 문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더 편리하게 공유하고 쉽게 수정할 수 있으며 모든 수정사항이 기록으로 남아 실수를 쉽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위키의 문서 구조를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서를 구조화해 작성과 해석에 따르는 낭비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위키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분들께 위키를 가이드하다 보면 이 시스템이 그리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가령 여느 위키 시스템 치고 맨 처음에 이야기한 불친절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주의사항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또 수정사항을 메일로 발송해버리는 기능은 잦은 수정과 자잘한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을 더 두렵고 모욕적인 상황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와 관련된 실수를 몇 번 겪고 나면 위키에 익숙해지기보다는 더 편안하다고 느끼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돌아가버립니다. 워드는 공유시점을 내가 정할 수 있고 실수를 공동작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않아도 되며 익숙하지 않은 문서 구조화 대신 나에게 편안한 모양에 따라 '시각적으로 구조화7)'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벽마다 좀더 친근하게 가이드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회사에서 큰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 위키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물론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했겠지만 궁극적으로 팀의 생산성을 올리기에 단점이 많은 시스템에 머무르게 됩니다.

안전

시실 위키 시스템은 실수로부터 매우 안전한 시스템입니다. 실수 기록이 좀 남겠지만 어지간히 중대한 실수를 하더라도 결코 문서를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용자들의 실수를 좀더 관대하게 대하고 사용자들이 불편해하는 기능 - 가령 매 리비전마다 수정사항을 메일로 발송하는 것 같은 - 을 완화해 더 많이 실수해보고 시스템에 더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는 편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0-02-26 18:03

1월에 읽은 책 정리

지난 12월과 1월은 썩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은 늘 그래왔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망가지고 있었고 이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무너져갔습니다. 일에 의해 망가진 영혼이 일을 마친 다음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뭘 읽을 수 있는 에너지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책이 저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들이 저를 스쳐지나간 만큼만 짧게 적어두고 넘어갑니다. 지난 12월과 1월에는 미드웨이, Finnish Nightmares, 인간 실험을 읽었습니다.

미드웨이

실은 영화 미드웨이를 보기 전에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두면 좋겠다 싶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적이 있는 역사책에 비해 개인의 경험 위주의 글일 거라고 예상했고 어느 정도는 그랬습니다. 개인의 경험은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에너지 수준을 복원하지 못해 정작 영화는 안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관점으로 커다란 사건을 이해해보려고 시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Finnish Nightmares

… 어떤 상황이 그토록 힘들었던 원인이 나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

인간 실험

화성에서 죽겠다는 목표를 지닌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재활용하는 로켓이 임무를 완수하고 재착륙하는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는 시대에 문득 30여년 전 사람들이 밀폐된 생태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2년 동안 거주한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는 기사를 통해 50여년에 걸쳐 커다란 유리병 안에 밀폐된 생태계를 구축해서 가지고 있다는 사람의 사진을 보기도 하고 수많은 제어장치를 통해 해수어항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본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초기 극지방 탐험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로 고통받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역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30여년 전에 사람들을 밀폐된 생태계에서 생활하게 한 실험의 경과가 궁금해져 책을 구했습니다.

글쓴이 개인의 인생 경험은 구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극동아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입장에서 흥미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많이 다르기도 했습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된 조그만 가게와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살아온 개인의 인생으로부터 시작해 실험을 준비하고 30년 후 미래인이 보기에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또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부족함이 있어 보이는 설정들이 자꾸만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30여년 전에 일어났으며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고 인류는 아직도 그들이 그 시대에 발견해낸 힌트에도 불구하고 바이오스피어 1에 일어난 온갖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북해를 고립시키는 댐을 건설할 계획8)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연결해 생각해보면 그들이 지금 시각에서 충분히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당시로부터 시작되어 계속된 평가는 별 의미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0-02-26 18:01

큰 타이머

결론: 오래된 갤럭시탭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기존에 사용하던 아이폰 타이머 앱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과 독립된 기계이므로 타이머를 멈추면서 트위터를 실행하는 나쁜 습관을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오래된 삼성 타이머 소프트웨어는 깔끔하고 군더더기없습니다.

갤럭시탭 필기 사용기에서 잠깐 소개한 대로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날 때마다 게임을 돌릴 용도로 적당한 가격대의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교체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로 직전까지 사용하던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이제 서브 원노트 필기 기계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앞서 사용하던 안드로이드 태블릿 하나는 최근까지 날씨 보는 용도로 사용하다가 회사에서 시계와 타이머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시계를 자주 보고 제한시간을 두고 작업하는걸 좋아합니다. 지정해 놓은 시간 안에 작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해보고 시간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집중이 깨진 사람들을 찾아가 농담따먹기를 한 다음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좀 마시고 다시 어슬렁거리며 자리로 돌아와 다음번 타이머를 설정하고 일을 시작하는 식입니다. 원래는 이 용도에 아이폰 앱을 사용했는데 타이머 앱이 폰에 설치되어 있는 관계로 타이머가 울리면 폰을 집어들어 타이머를 멈추고는 그대로 브라우저나 트위터를 실행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타이머와 아이폰은 서로 분리된 기계인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태블릿 거치대를 구입해서 설치하고 전원을 연결한 다음 자동으로 꺼지지 않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타이머 앱을 실행하자 이 구형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타이머가 됐습니다. 오래 전에 삼성 안드로이드 태블릿에 들어있던 타이머 앱은 오랜 기간 업데이트되지 않았지만 지금 사용하기에도 군더더기없이 깔끔했고 현재시각과 타이머 여러 개를 요일이나 시간대 별로 설정할 수 있었고 그 타이머들의 목록을 깔끔하게 표시했습니다. 칼같이 태블릿에는 진동 기능을 삭제해버리는 애플과 달리 삼성은 태블릿에도 진동 기능을 포함해준 덕분에 타이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진동으로 시간을 알려줍니다. 덕분에 자리에서 떠나 있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작은 문제는 타이머를 새로 설정할 때인데 모니터 위에 붙어있어 손을 쭉 뻗어 눌러야 해서 좀 귀찮습니다. 아이폰 3G 시대부터 사용하던 터치펜을 손에 들고 팔을 뻗어 꾹꾹 누르면 좀 나은데 여전히 모양새가 좋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는 타이머로 사용하기에 훌륭합니다. 더이상 타이머를 멈추면서 웹서핑으로 넘어가지 않게 됐습니다.

· 2020-02-21 22:46

오래된 항목 >>

blog/star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0-01-14 20:52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