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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방법

브레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때는 재미있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지난 1월에 노션에 만든 포켓몬 데이터베이스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도쿠위키에서 지원하는 struct 플러그인을 사용해 SQLite 기반에 브레베 데이터베이스만든 적이 있습니다. 플러그인은 처음 예상에 비해 훨씬 조잡했고 요구한 기능 대부분을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브레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한 핵심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거의 포기했다가 누군가 작성한 아직 적용되지 않은 코드를 긁어다가 적용해 처음 예상과 그나마 비슷한 결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달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브레베 정보는 각 이벤트마다 거의 동일했고 이들을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모양으로 정규화해놓으면 쓸모가 많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가령 날짜 범위나 지역에 해당하는 이벤트 정보를 조회해서 표시한다든지 서로 다른 이벤트에서 같은 체크포인트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아본다든지 또 각 체크포인트마다 거리를 자동으로 계산해서 타임테이블을 자동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가능했지만 나머지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플러그인을 직접 수정하는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요. 이 작업에는 이미 선을 그어놨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코드를 고치는 일까지는 접근하지 않기로요. 그러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뒤에서는 데이터베이스가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서 정보를 문서 모양으로 제공할 때에 비해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고 업데이트 과정이 직관적이지 않은 단점만 남은 상태가 됐습니다.

struct 플러그인을 사용한 결과로 기존 정보를 업데이트할 때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업데이트하므로 위키에는 정보를 업데이트한 기록이 전혀 남지 않게 됐습니다. 제가 위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수정 과정이 기록된다는 점입니다. 글을 써서 공개하는 과정을 거치는 블로그에 썩 어울리지는 않을 수 있지만 모든 수정과정이 남아있다는 건 정보를 수정할 때 더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행동의 기록이 모두 남으며 문제가 생겨도 이를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고 문서의 과거 버전으로 돌아가 일부 내용을 다시 현재 문서에 편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키는 이 요구사항을 훌륭하게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위키 페이지를 통해 서빙되고는 있었지만 정보를 수정해도 기록이 남지 않았고 이 점이 크게 불만입니다.

struct 플러그인을 사용해 만든 브레베 데이터베이스는 만드는 과정이나 운영하는 과정은 나름 재미있지만 데이터베이스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정보 업데이트 과정이 위키의 방식에 비해 직관적이지 않은 단점이 생겼습니다. 또 위키를 통해 서빙하지만 위키의 특징 중 하나인 수정 과정을 기록해주는 특징을 활용하지도 못합니다. 이럴 바에야 그냥 정보를 복사해다가 위키 페이지 그대로 서빙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고요. 아직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매번 정보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아 이거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만 남아있어요. 어쨌든 올해는 지금 만들어 놓은 체계로 업데이트를 계속할 작정입니다.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만 계속 하고 있어요.

· 2020-03-29 18:21

노트

한동안 타임라인에 여러 가지 노트테이킹 방법을 설명하는 글이 지나간 덕분에 기존에 해 오던 노트 쓰는 방법을 돌아보고 고민할 계기가 됐습니다. 손으로 노트를 쓰고 있고 학교 다닐 때부터 이어진 습관은 2013년부터 같은 습관을 디지털로 옮겨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노트를 다 쓰면 새 노트를 사야 했지만 이제 노트를 새로 사는데 돈이 들지는 않습니다. 또 다 쓴 노트를 쌓아둘 필요도 없어졌고요. 하지만 이 습관을 디지털로 유지하는데는 상당한 댓가를 치러야 했고 또 치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제가 해오던 노트테이킹 방식을 설명해 두려고 합니다. 이유는 최근에 읽은 노트테이킹 방법 몇 가지를 생각해보면서 지금까지의 제 방식을 바꿔보자는 결론에 다다랐는데 그 결론을 이미 시도하고는 있지만 그 시도 전까지 어떤 식으로 노트를 작성했는지 적어두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계기

처음 손으로 작성한 노트에 강하게 의존하기 시작한 이유는 개방된 공간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에야 제가 다른 감각에 비해 청각 방해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검사를 통해 알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공간에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각자가 움직이며 내는 소음 하나하나를 전부 듣고 있었습니다. 저쪽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아까부터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있는데 그 정보를 어디서 읽었을지를 생각하고 동시에 카페 스탭들이 교대할 다음 스탭의 출근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며 불평하거나 오후에 만날 사람과 볼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여러 사람의 주문을 한번에 기억해서 주문하는 사람의 주문에 아메리카노 갯수가 틀렸다거나 내 6시방향 두칸 뒤에 앉은 사람이 폰을 들여다볼 때 계속해서 폰을 테이블 위에 툭툭 치는 소리를 내는 등등을 동시에 인식한 나머지 도저히 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심각해졌는데 저를 고용하는 회사는 하나도 빠짐없이 낮은 파티션과 개방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 회사에서는 파티션마저 치워버렸는데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시도

이런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일은 해야 했고 청각 방해에 취약한 입장에서 헤드폰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헤드폰은 노이즈캔슬링만 켠 채로 쓴 다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을 무시하면서도 싸가지없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위한 용도로만 동작했습니다.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을 노트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노트에 적는 겁니다. 그러다가 청각에 의해 집중이 깨지더라도 노트 몇 줄 위로 올라가 다시 읽으며 내려오면 사라진 집중을 다시 복구할 수 있었고 하던 생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노트에 문장을 그냥 늘어놓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단계에 따라 아웃라이닝하듯 들여쓰기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고 더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는 블릿포인트만 사용하다가 생각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문단부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청각 방해 속에서 집중이라기보다는 어느정도 생각을 끊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노트는 일종의 뇌의 블랙박스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생산

노트를 디지털화한 다음부터 노트의 물리적인 분량은 더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하루에 생각하고 작성하는 노트가 수 십 페이지에 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PDF로 변환해보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노트를 작성하는 동안에는 이를 알 수 없고 분량에 내가 지치거나 압도당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노트는 내 생각의 흐름을 온전히 담았고 어느 시점이나 주제로 돌아가 결론을 도출한 내 뇌의 동작과정을 확인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내 뇌의 동작과정이 달라지면 이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또 새로 얻은 정보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글씨로 작성하는 노트는 기계화된 검색에 절대적으로 취약하고 페이지를 연결하거나 태그를 달아 분류하는 등의 현대적인 관리방법을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원노트 앱은 손글씨에도 태그를 붙일 수는 있었지만 제 습관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태그시스템 디자인 자체의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잘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전 노트를 보며 재생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일하며 만든 노트를 읽으며 알아둘만한 점, 새롭게 드는 생각, 앞으로 하면 좋을 일들을 생각하며 이 생각으로 새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링크를 원활하게 하기 어려운 대신 서로 링크를 걸만한 주제를 연결해머릿속에서 생각하며 동시에 노트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 만든 노트는 다 쓴 노트처럼 그 자리에 기록은 남아있지만 웬만해서는 다시 찾지 않는 단계로 넘어갔고요. 만약 링크를 남겨뒀다면 모든 노트가 계속해서 유효한 상태로 남아있었겠지만 제 습관은 종이노트에 좀더 가까웠습니다. 재생산된 노트는 다시 또 다른 재생산의 대상이 됐고 결국에는 회사에서 일하며 작성한 노트와 내 생각 과정을 나열한 노트 사이에 구분이 모호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며칠 사이에 일하며 작성한 노트 사례
며칠 사이에 일하며 작성한 노트 사례

사례

고해상도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점 사과드립니다. 방금 이야기한 대로 내 노트와 업무노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단계에 이르면 노트는 공개만을 목적으로 재작성하지 않는 이상은 공개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스크린샷은 지난 며칠 사이에 원격으로 일하며 소음이 없는 내 집에서 일할 때 만든 노트 일부입니다. 실은 이제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도 이렇게 생각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아웃라이너에 적듯 들여쓰기를 하고 글씨가 가지런히 적힌 부분은 청각 등 외부 요인에 방해를 받으면서도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손과 뇌를 동시에 사용하며 생각한 부분입니다. 줄을 잘 지키지 않고 이리저리 쓴 부분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회의 중에 짧은 단어들을 적을 부분입니다. 후에 노트를 다시 읽고 새 노트를 만들기 때문에 이런 서로 다른 부분을 그냥 노트 하나에 남겨둡니다. 노트를 다시 만들 때 비슷한 주제로 적당한 생각이 모이면 그때 가서 노트를 분리하면 되니까요.

얻은 것

저는 여전히 외부 반응, 특히 청각에 크게 방해를 받습니다. 청각에 의해 생각이 끊기고 멍하니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할 수가 없고 그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그리며 상황을 생각하고 내 의견을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뇌와 손을 동시에 써서 노트를 만들기 시작하고 이 습관이 수 년에 걸쳐 완전히 정착하면서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느리게 만드는 꼼수를 쓰지 않고서도 빠르게 생각하며 일할 것을 상상하고 이 속도가 만들어낼 거대한 차이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잃은 것

원래는 '잃은 것'을 윗 문단에서 문단구분 없이 그냥 쓸 작정이었습니다. 뇌와 손을 동시에 사용하며 외부 자극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실은 생각하는 속도를 손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추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천천히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습관에 큰 걱정거리는 다른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빠르게 생각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점입니다.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뇌를 내맡기고 있으면 확실히 온갖 사건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가고 저 분 늦지 않으려면 지금 택시를 미리 불러둬야 할텐데에서부터 시작해 저 라떼에는 아까 휘핑크림 올려달라고 했는데 크림이 없으니 어쩌나 하는데까지 생각이 이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에 집중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저는 순식간에 뒤쳐질겁니다. 아. 그리고 손목 건강을 잃었습니다.

· 2020-03-30 08:26

모바일 워크스테이션 요구사항

모바일 워크스테이션 요구사항:

  1. 운영환경 관리부담이 적어야 한다.
  2. 작업 각각이 더 예쁘고 우아해야 한다.
  3. 프로세서가 강력해야 한다.
  4. 팬이 없는 구조여야 한다.
  5. 펜이 강력해야 한다.
  6. 연결성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7. 셀를러네트워크를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8. 화면이 밝고 뚜렷하고 프레임레이트가 높으면 좋다.
  9. 여러 사설수리점에서 취급해야 한다.
  10. 좋은 카메라와 사진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11.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해야 한다.

새 아이패드가 발표됐고 아이패드를 못 사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어있는 것 마냥 행동하고 있었습니다만 새 아이패드는 평가가 별로 좋지 않고 근시일 안에 새로운 하이엔드급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지만 올 초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적당히 만들어 출시했다는 의견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잠깐 마음을 다잡고 이번 세대 아이패드를 사용할지 아니면 지금 가진 환경으로 좀 더 버틸지를 생각해보기 위해 아이패드를 왜 사려고 했는지 요구사항을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관리부담이 적어야 합니다. 기계는 뒤로 사라지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합니다. 20년쯤 전의 윈도우 환경은 그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항상 하드웨어는 문제를 일으켰고 수준 낮은 소프트웨어들은 저혼자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윈도우 환경은 더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수준 낮은 소프트웨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은 몇 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하고 운영체제는 인스톨 해놓고 나서 시간이 제법 흘러도 처음과 비슷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제 기준도 점점 더 올라가 더 적은 관리행동만으로도 잘 유지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이 소프트웨어가 운영체제나 다른 소프트웨어의 동작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좀더 확실하고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할 때 이 소프트웨어가 안전한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파일시스템을 직접 들여다보고 이들을 직접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신뢰할 수 있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기만 한다면 관리행동을 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더 제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거고요.

작업 각각을 좀 더 예쁘고 우아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소프트웨어도 아이패드에서는 좀 더 봐줄만한 모양인 반면 윈도우용은 상대적으로 조잡할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역할을 하고 기능 구성도 비슷한 마크다운 에디터가 윈도우에서는 10년 전에서 갑자기 워프해온 것 같은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 반면 아이패드나 맥에서는 훨씬 더 예뻤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요. 이 경향이 계속되다 보니 서로 다른 기계 모두에서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기왕에 가장 예쁜 모양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세서가 강력해야 합니다. 이전 세대 아이패드 프로의 단점 중 하나는 프로세서가 강력한 것에 비해 매일매일의 작업은 그런 강력한 성능을 요구하지 않아 가격 대 성능비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세서는 무조건 강력해야 합니다. 작년에 서피스 고를 샀다가 이 교훈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모바일기계라고 해서 항상 가벼운 웹브라우징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현대에는 웹브라우징도 제법 무거운 작업입니다. 온갖 기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웹사이트는 이전 시대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무겁고 이는 더이상 가벼운 프로세서만으로는 편안하게 작업할 수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행동들도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프로세서를 요구합니다. 하다못해 아주 긴 PDF 문서를 열어놓고 옆에 손으로 메모를 하기만 해도 프로세서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간단한 동작 하나하나가 버벅거립니다. 서피스 고가 그랬고 빠르게 핵심 작업에서 멀어졌습니다. 프로세서는 강력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그걸 사용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프로세서가 강력한 다음 사용자의 작업이 그 위에서 부드럽게 돌아가면 강력한 프로세서를 활용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교환이 잘 일어나 팬이 없는 구조여야 합니다. 강력한 기계일수록 강력한 팬과 히트파이트를 사용해 강력한 프로세서로부터 나오는 열을 식히곤 합니다만 모바일 워크스테이션은 그러면 안됩니다. 강력한 프로세서를 요구하지만 열 처리를 위해 물리적으로 회전하는 팬이 붙어있어서는 안됩니다. 일단 이 기계는 어디든 들고다닙니다. 더 자주 충격을 받고 더 많은 진동에 노출됩니다. 그런 기계에 움직이는 장치는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을 올려줍니다. 또 조용한 장소에서 기계를 사용하려고 할 때 팬 소음은 상당히 거슬릴 뿐 아니라 기계의 몇몇 작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가령 얼마 전 사설수리해서 몇 년째 주력으로 사용하는 서피스 프로는 부하가 시작되면 팬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 팬 소음이 마이크에 녹음되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일단 마이크를 사용한 기능 전부를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노이즈캔슬링을 통해 더이상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팬이 없는 편이 더 좋습니다.

펜이 강력해야 합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팬과는 다른 펜입니다. 서피스와 갤럭시탭, 슬레이트PC를 오랫동안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펜이었습니다. 제 노트 대부분은 손글씨로 작성합니다. 손글씨 노트에는 너무 쉽게 옆에 그림이 들어가고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들어갑니다. 손글씨로 작성하지 않는 어떤 텍스트 노트로도 이 방법을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텍스트에 링크를 걸거나 검색이 아주 원활하지는 않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손글씨 노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펜이 강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펜을 납작하게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하루에도 수 십 페이지씩 노트를 작성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휴대성이 뛰어난 납작한 펜은 제 손목을 파괴할 겁니다. 휴대성 좋은 펜은 먼 옛날 조나다 548의 끔찍함만으로 충분합니다.

요즘 세상에 수많은 포트를 통한 연결성은 예상만큼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포트가 너무 적은 기계는 그 자체가 단점으로 부각되곤 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연결은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 인터넷이나 인터넷 서비스가 끼어들 수도 있고요. 외장 스토리지를 기계에 직접 연결하거나 랜케이블을 직접 꽂거나 프로젝터에 직접 연결할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USB-C 허브가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이제 수많은 동글 대신 허브 딱 하나만 들고있으면 딱 하나뿐인 포트가 별로 불편하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셀룰러네트워크를 반드시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업하기 전에 항상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에 신경쓰고 이 인터넷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작업에 집중할 수 없을 겁니다. 처음에 환경을 관리할 필요가 거의 없어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셀룰러네트워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와이파이네트워크를 선택하고 카페 어딘가에 붙은 패스워드를 보고 타이핑한 다음 VPN을 켜는 등의 행동을 다 생략하고 그냥 켜고 너무 당연하게 아무 조작을 안해도 그냥 인터넷에는 접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잘한 작업에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인터넷은 돼야 하고 기계는 그냥 켜져야 하며 환경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내 작업 요구를 즉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셀룰러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화면이 밝고 뚜렷하고 또 프레임레이트가 높아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면 잠깐 사이에 끝나지 않습니다. 몇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왕에 그런 기계라면 스크린이 크고 밝고 뚜렷해야 합니다. 거기에 프레임레이트가 높아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인다면 더 좋고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계라 여러 사설수리점에서 취급하는 기계이면 더 좋습니다. 얼마 전에 서피스 프로를 수리하려고 할 때 주변에 애플 기계 수리점이 많은데 비해 서피스를 취급하는 수리점은 거의 없다는 점에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조사에서는 80만원을 내고 상위모델을 구입하라고 권했고 그 상위모델의 시중 가격에 비해 제조사의 저 제안이 나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설수리점에서 수리를 시도한 결과가 나쁘지 않음을 이미 몇 년에 걸쳐 알고있는 이상 굳이 새 제품을 구입할 필요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4년 된 서피스 프로는 여전히 잘 돌고 있고 그때 겪던 문제만 해결되면 또 한동안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사의 1~2년 지원은 순식간에 끝나고 그 이후에도 이 기계는 제 작업을 계속해서 서빙할 겁니다. 하지만 기계는 반드시 고장나기 마련이고 제조사의 지원이 끝난 다음에도 비빌 곳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카메라가 달려있어야 하고 충분한 소프트웨어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저도 처음에는 태블릿 기계에 카메라가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블릿 기계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해 결국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가 경험한 거의 모든 태블릿 기계의 사진은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칠판을 찍기에 시원찮았고 결국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다음 이를 태블릿 기계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블릿 자체에 믿을만한 좋은 카메라와 좋은 사진 처리 소프트웨어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해야 합니다. 윈도우도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하지만 윈도우 홈 에디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 스토리지 암호화는 교양입니다. 나는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암호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미 감시당하는 삶에 생각이 완전히 적응한 겁니다. 다시는 감시받지 않는 이전 상태의 사고회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스토리지가 안전하게 암호화되는 기계라야 편안하게 모든 곳에 들고다닐 수 있게 됩니다. 만약 기계를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했다면 기계 자체의 가격에만 억울해하면 됩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노출될 걱정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야 더 당당하게 기계를 여러 곳에 들고다니며 비싼 가격을 지불한 만큼 충분히 활용해 그 이상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요구사항을 늘어놓고 보니 아마도 이번 아이패드를 사도 그리 크게 후회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이면 한번 샀으니 이 기계가 더 오랜 기간동안 최신인 상태라면 내 기분이 더 좋겠지만 새 모델이 출시된다고 해서 갑자기 내 기계가 성능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종종 떨어진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면접

지난 몇 주 사이에 팀에 구인하느라 면접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서로 방에 들어가 마스크를 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건 처음엔 굉장히 뻘줌할 거라고 생각해 걱정했지만 마스크는 걱정한 것 보다는 면접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니어분들을 만날 때는 예상하던 실수나 산으로 가는 반응이 나와도 뭐 그럴 수 있다 싶어 지나가다가도 예상보다 일한 기간이 훨씬 길고 이제 어느 분야에서든 스탭들을 리딩하는 역할을 할 분이 기대에 못 미치는 말씀을 하시면 면접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더이상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 예비 스탭 분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생각한 점이 있어 남겨둡니다.

대부분 피면접자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요.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사고가 생깁니다. 면접 자체가 그 사고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특징은 피면접자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 분이 더 잘할 수 있는데 지금의 상황이나 질문, 분위기 때문에 말이 산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스타일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예정된 사고를 회피할 수 있는 것도 한 가지 스킬이고 또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거나 몰고 가지 않는 것은 면접자의 스킬입니다.

누구나 면접에서, 회의에서, 기타 내가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창하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실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재능이고 이 재능을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내가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 가정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유창하게 말하려고 하는 대신 질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이 할 말의 주제를 정한 다음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에 빨리 답하기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또 말을 빨리 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한 소재를 끌어들여 말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나쁘고 피면접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이 기억력은 더 짧아집니다. 답변이 길어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에 이 말을 시작하게 만든 질문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메모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피면접자분들 중 기억력을 보충하는데 메모를 사용한 분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긴 이야기를 하던 중 질문을 잊어버리고 산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재빨리 붙잡아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일할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답변을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정리해서 내 언어로 바꿔 재확인해야 안전합니다. 피면접자가 질문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면접자 역시 본인의 의도와 거리가 있는 잘못된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답변이 시작되면 한동안은 답변을 멈추기 어려울 때가 많고 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특히 위에서 이야기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더 쉽게 질문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을 들은 다음 이를 재확인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질문을 확인하는 분은 평소 일할 때 도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고 이렇게 더 안전하게 일하는 분이라면 믿을만한 분일 가능성도 더 높습니다.

시니어 그레이드로 면접을 진행할 경우 평소에 좀 더 시야를 넓힌 고민을 해 둬야 합니다. 물론 평소에 양산형게임을 정신없이 개발하다 보면 시야가 쉽게 좁아집니다. 심지어는 사고가 도메인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당장의 요구사항에만 집중해 그 바깥의 맥락을 잃기도 쉽습니다. 이 상태로 한참을 일하다 보면 그래서 내가 만드는 제품의 시장에서 위치나 이 시장이 국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내가 몸담은 이 업계와 내 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잊기도 쉽습니다. 주니어 그레이드라면 그래도 됩니다. 종종 시야가 너무 좁아져 맥락을 파악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 도와드릴테니까요. 하지만 시니어 그레이드로써 그러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들의 현실은 그런 더 넓은 고민을 쉽게 잊도록 만들고 또 그런 고민 없이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생각해본 적 없다면 그렇다고 짧게 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에 즉흥적으로 좋은 대답을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시간을 절약하고 다른 특징과 장점을 탐색하는 쪽이 훨씬 좋습니다.

본인의 경험을 설명할 때는 경험의 맥락, 시도한 방법, 결과, 교훈을 포함해야 하고 최대한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해봤다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일이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시도한 방법은 해결할 문제와 관련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자체를 본인이 평가하고 있어야 하며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아이템 강화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를 개선하는 일을 했다고 포트폴리오에 적었다 칩시다. 그렇다면 기존 아이템 강화에 무슨 문제가 있어 개선을 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문서를 펼쳐놓고 개선했다고 해서는 아무런 인상을 줄 수가 없습니다. 라이브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개발과정이 길어져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개선할 때에도 개발 진행 후에 원래 목적을 달성했는지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이 전체 과정을 포함해 설명할 수 없으면 포트폴리오는 그저 '오피스를 다룰 줄 아시는군요' 정도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텍스트는 말로 옮길 수 있고 또 말을 텍스트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텍스트를 읽고 쓰지 않는다면 조리있게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간혹 질문과 답변을 시작한지 2분이 채 지나기 전에 이 분은 평소에 텍스트를 거의 읽지 않는 분일 것 같다는 예상을 한 다음 나머지 시간에 다른 장점을 탐색하기 위해 절망적으로 면접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을 잘 하는 것과는 달리 그 말에 의도와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것은 평소에 의미있는 텍스트를 얼마나 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게 뭐든 수준 있는 텍스트를 읽어두면 이런 참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포트폴리오에 제출한 문서 목록을 기억해두거나 가지고 있는 편이 좋습니다.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을 할 때 피면접자가 본인이 제출한 문서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서로 곤란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크린에 문서를 띄우고 질문을 할 때도 있습니다만 웬만하면 스스로 제출한 문서 목록과 각 문서를 첨부한 본인의 의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서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질문을 메모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포트폴리오 목록 역시 적어두고 질문을 받은 다음 어느 자료인지와 질문을 재확인한 다음 답변을 시작한다면 서로 훨씬 더 안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본질은 엔터테인먼트이고 그 하위 분류 중 하나인 게임입니다. 국내 시장이나 세계 시장에 어떤 게임들이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경제적인 실적을 내는지 알아보고 그 게임들을 플레이해보거나 그들에 대한 정보, 본인의 평가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 일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이 모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저희도 똑같은 신세이기 때문에 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로써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출시할 시장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제품을 내놓는지, 각 제품이 어떤 평가를 받으며 그 원인은 뭘지 평소에 생각해놓은 다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양산형 게임이 널려있고 이들을 별로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 2020-03-29 11:19

Varia RTL510 사용기

Varia RTL510

자전거 후미등입니다. 지금까지는 문라이트 네뷸라라는 제품을 썼습니다. 공도에서는 눈뽕이 안전이고 생명입니다. 장거리 라이딩을 해야 하면 싯포스트에 하나 붙이고 새들백 뒤에 하나 더 붙였습니다. 둘을 동시에 켜진 않지만 새벽에 검차 받을 때는 동시에 필요하거든요. 그러다가 가민에서 레이더가 달린 후미등을 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선뜻 손이 나가질 않는 가격대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는 여전히 같은 후미등을 쓰고 있었고 가민 후미등은 다음 버전이 나왔으며 그마저도 꽤 크게 할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모델이 곧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손이 나갈만한 가격대여서 얼른 사봤습니다. 제품 설명은 구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 바로 사용기로 넘어갑니다.

Garmin Edge Headunit

후방 경고

후방을 레이더로 감시하다가 150미터 이내에 나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물체가 내 쪽으로 다가오면 헤드유닛 한쪽에 현재 위치를 표시해줍니다. 맨 위쪽에 내 위치이고 맨 아래쪽은 약 150미터 정도로 보면 됩니다. 다가오는 물체가 여럿 있을 경우 점 두 개까지 표시되는걸 봤습니다만 그보다 많은 차량이 접근해올 때는 정확하게 표시해주지 않았습니다. 보통 공도주행을 할 때는 소리를 듣고 나서 뒤를 돌아보거나 가끔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곤 하는데 이 기계는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미리 확인해줘서 내가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알려주고 그 다음에 내가 돌아보며 확인하고 나서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차량이 다가올 경우 이전보다 훨씬 먼저 알고있을 수 있습니다.

상황 별 느낌

시내 주행

사실 시내 주행은 이 기계를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항상 차들이 많고 100미터 뒤까지 감시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 주변을 달리는 차들이 있으며 소리를 듣지만 어느 차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정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 기계 역시 뒤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물체가 있음을 계속해서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이상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정차해 있으면 좌회전 차량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소리로 알려줍니다만 이들은 나에게 달려오지 않기 때문에 헤드유닛 디스플레이에서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곧은 길

한적한 곧은 길이 이 기계를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입니다. 최대 150미터 뒤에 나타나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를 소리로 경고해주고 화면 한편에 띄워줍니다. 실제로는 화면 횐편에 나타나는 거리와 위치는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를 대략 100미터라고 생각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헤드유닛이 삐릭 하는 소리를 내고 나서 뒤를 돌아보며 확인할 때까지 시차가 있고 그 사이에도 자동차는 계속해서 달려오고 있으므로 맨 아래를 100미터, 중간을 50미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곧은 길에서는 특히 상체를 돌리지 않고 고개만 90도쯤 돌려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시야보다 더 뒤에서 오는 차량을 미리 알려줘서 이전에 비해 훨씬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팩라이딩할 때 후미를 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동차를 인지하는 시점보다 훨씬 먼저 신호해 팩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굽은 길

오르막길은 곧은 도로가 길지 않습니다. 이번 커브를 돌면 다음 커브까지 100미터 남짓인 곳들이 많습니다. 자동차는 내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브를 돌아 내 뒤에 갑자기 나타나곤 합니다. 사실 그런 커브는 좌우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이 많아 소리가 반사되어 내 뒤에 갑자기 나타날때까지 아예 모르는 경우는 적습니다만 종종 고갯길은 새로 난 큰 길에 접하있는 경우가 있어 소리만으로는 이게 내 뒤에서 오는 차 소리인지 옆에 난 새 길을 지나는 차에서 나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 기계를 사용하고 나서 그 둘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커브를 돌아 차가 내 뒤에 나타나면 소리를 듣고 헛갈려하는 제게 이건 내 뒤에 있는 차라고 삐릭 거리며 알려줍니다. 헤드유닛 디스플레이에는 이미 내 뒤 50미터 이내에 갑자기 나타나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조심해서 주행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자전거도로

자전거도로에 자동차가 나타날 일은 드뭅니다. 공사차량이나 작업차량이 나타날 때 정도입니다. 내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는 거의 다 나를 추월하는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훨씬 작고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 말고도 사람도 걸어다니기 때문에 - 성남시는 모든 자전거도로가 보행자 겸용입니다. :( - 잘 인식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사람보다 빠르고 나를 추월할 자전거는 그보다 더 빨라 나를 추월하는 자전거를 모두 미리 알려줬습니다. 그들이 추월하면서 내게 신호를 하든 하지 않든 나는 이미 그들이 올 것을 뒤돌아보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대처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작동

아직 겪지 못했습니다.

False Positive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데 뭔가를 잘못 인식해서 뒤에 차가 있다고 알려주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도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고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갈 길을 가면 되니까요. 아직까지 이런 상황을 겪지 못했습니다.

False Negative

실제로 뭔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데 이걸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큰일입니다. 이 기계를 사용하면서 뒤쪽에 신경을 이전보다는 덜 쓰게 될 겁니다.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이 기계는 보조용이며 너는 항상 네 모든 환경에 신경쓰며 달려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실제로는 기계에 의존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뒤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기계가 없을 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달리며 이런 상황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차량이 다가오다가 어딘가로 진입하거나 인도 위에 차를 세울 때 경고는 떴지만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딱히 잘못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쉬운 점

헤드유닛에 차량이 다가올 때 좌우에 붉은색 그라데이션이 생겨 경고해주고 차량이 지나가고 나면 녹색으로 변한 다음 사라집니다. 차량이 나타날 때는 소리를 내서 알려주지만 일단 나타난 다음에는 헤드유닛 디스플레이를 봐야 합니다. 복잡한 도로에서 디스플레이를 내려다 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소리를 좀 더 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 컬러 디스플레이는 자연광이나 다리 밑 그늘을 지나갈 때 화면이 잘 보이지 않고 색상을 잘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좌우에 나타난 그라데이션이 녹색인지 붉은색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물론 이 표시가 완전히 없어진 다음에 마음을 놓을 수 있겠지만 다른 표시방법을 고민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추천

자전거는 타고 달리면 온갖 거지같은 일들을 겪게됩니다만 기계가 뒤를 보고 나보다 먼저 경고하면서 이전보다 상황을 미리 알고있을 수 있게 됐습니다. 추천합니다. 지금은 가격도 꽤 내려서 어지간한 비싼 후미등 2.5배 가격 이내에 살 수 있습니다.

· 2020-03-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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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star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0-05-21 01:29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