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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해본 디지털 펜 정리

디지털 기계로 '모든' 메모를 대체한지 이제 7년째입니다만 여전히 모든 메모를 타이핑으로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계에 메모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손으로 글씨를 쓰는 쪽이 더 재미있고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빨리 메모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 손으로 하는 메모를 굳이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댓가로 항상 디지털 기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든지 안정적인 펜 필기 환경을 찾아내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사용해본 디지털 메모 펜을 소개합니다.

맨 처음 써본 펮은 아이폰 3GS를 처음 쓸 무렵에 구입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터치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아이폰을 사용하기에 인류의 손가락이 덜 진화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정전식 터치를 지원하는 펜을 한 2만원쯤 주고 산 기억이 납니다. 글씨를 쓰기에는 너무 두꺼웠고 글씨를 쓰기에 적당한 소프트웨어도 없었습니다. 다만 자잘한 버튼을 더 잘 터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펜은 멍텅구리에 가까웠고 아무런 기능도 없었지만 별 기대도 불만도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531)이란 회사에서 만든 펜슬이라는 제품입니다. 한참 아이패드로 필기를 대신해보려고 노력하던 시대였는데 아직은 누구나 10개씩 가지고 태어나는 스타일러스를 이야기하던 그분2)이 살아계시던 시대였던 나머지 애플펜슬 같은 기계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펜슬은 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페이퍼라는 앱과 함께 사용하면 꽤 괜찮은 감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블루투스로 약간의 필압도 지원했습니다. 또 펜을 뒤집어 문지르면 지우개 역할도 했습니다. 여전히 글씨를 쓰기에는 지나치게 두꺼웠지만 적당한 보정 기능이 있는 소프트웨어와 필기 확대 기능을 사용하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계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애플펜슬 1세대의 충전방법을 놀리지만 이 펜슬의 충전방법3)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

세번째는 삼성 슬레이트 PC4)에 들어있던 S펜입니다. 와콤 기술로 만들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드디어 두껍지 않은 펜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이때부터 모든 메모를 보관할 소프트웨어로 원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패드용 노트 앱은 여러 앱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어 장기간에 걸쳐 신뢰할만한 앱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필기 경험 자체도 마땅한 기계가 없어 나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쪽은 펜팁이 실제 펜에 가깝게 가늘었고 와콤 펜심과 호환되며 충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필기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기계였습니다. 펜슬과 같이 뒤집어 문지르면 지우개 역할도 했습니다. 슬레이트 PC에 지문방지필름을 붙이고 하드펠트심을 사용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이 질감의 필름이 나오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제품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 S펜은 거의 4년 이상 필기를 담당하게 됩니다.

네번째도 S펜입니다. 이건 시간상으로는 가장 최근에 사용하게 됐는데 안드로이드 게임을 돌릴 생각으로 갤럭시탭 S3를 중고로 샀더니 의도하지 않게 펜이 딸려왔습니다. 동일한 와콤 기술 기반으로 동작하는 기계입니다. 방금 소개한 이전 세대 S펜과도 호환되고 갤럭시탭 뿐 아니라 슬레이트 PC에서도 호환됩니다. 펜팁이 더 가늘어져 필기하는 느낌은 좋아졌지만 더이상 와콤 펜팁과 호환되지는 않습니다. 또 뒤쪽에 지우개 기능도 없어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윈도우 OS에서 주로 펜을 사용하다 보니 안드로이드 OS에서 제공하는 펜 환경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제 다음에 소개할 배터리를 사용하는 서피스 펜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점입니다. 이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피스 펜입니다. 이제 2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번째 소개한 슬레이트 PC와 S펜 조합 다음에 사용하기 시작한 환경입니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들어가는 묵직한 펜에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습니다. 서피스 펜은 압도적으로 무거웠고 쉽게 피로해졌습니다. 참다못해 다시 S펜과 슬레이트 PC를 집어들고 필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펜에 익숙해졌고 무거운 댓가를 톡톡히 체험했습니다. 일단 서피스 펜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갑작스레 동체시력이 좋아졌는지 S펜의 딜레이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히 참아가며 쓸 수는 있겠지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서피스 펜 역시 뒤집어 사용하면 지우개로 쓸 수 있고 서피스 프로5) 옆에 자석으로 달라붙어 휴대하기도 쉽습니다. 또 서피스 기계의 세대가 넘어가거나 신형 서피스 펜이 나와도 S펜처럼 서로 호환되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로 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댓가로 이제 개인 원노트 크기는 수십 기가에 달해 어지간한 기계에서 메인 원노트 전자필기장을 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지금의 필기 체계에 만족하지만 애플펜슬 같은 제품도 궁금한 것이 사실입니다. 잠깐씩 빌려서 사용해봤지만 그걸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환비용이 엄청나고 세대교체 후에는 이전 모델과 서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점은 이런 기계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로 삼기에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플펜슬을 제외하면 서피스 펜과 원노트가 지금까지는 가장 나은 메모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은행 입금체계 교육이 필요하다

해마다 한국랜도너스6)에서 주최하는 이벤트 중 가벼운 버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른분들처럼 좀더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24시간 안에 끝나는 이벤트정도는 겨우내 시즌울 준비해서 한해 동안 목표로 삼고 재미있게 놀기에 충분했습니다. 올해도 날짜에 맞춰 몇몇 이벤트에 신청하고 참가비용을 송금했습니다. 사람이 직접 입금확인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헛갈리지 않도록 입금자 이름에 제 이름과 회원번호를 기입했고 문제 없이 입금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공지사항에 올라왔습니다. 참가비를 입금할 때는 입금자명에 이름과 회왼번호만을 넣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잘못된 사례에는 '새해복많이받으세요'가 있었습니다. 한 2초정도 피식 웃다가 이게 웃어넘기고 끝날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면 입금자 이름에 저런 텍스트를 적어넣은 분들은 이렇게 입금자 이름을 확인해야 하는 모든 장소에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추정해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생각은 왜 입금자 이름에 저런 텍스트를 적어넣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돈을 받는 상대가 누가 이 돈을 입금했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 입금자 이름의 텍스트 뿐이라는 사실을 누가 제게 알려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된 것일 뿐입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계좌에 돈을 입금하려고 시도하던 순간을 생각해봤습니다. 혹시라도 실수하면 내 돈이 그냥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메모지에 계좌번호와 은행 이름과 계좌 소유자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해서 적은 다음 은행에 들고가서 입금표에 실수하지 않도록 또박또박 기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은행의 송금 시스템에 대해 누군가 알려준 적이 없었고 저는 그냥 운이 좋아 입금 확인하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행 없이 살아가기 아주 어려운 사회에서 학교든 은행이든 누군가는 자신들이 하는 서비스가 무엇이고 어떤식으로 동작하며 실제 사용은 어떻게 하는지 명시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위에 이야기한 '새해복많이받으세요'같은 실수 아닌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비용을 줄이고 입금 확인하는 사람의 당황스러움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무인주문기의 사용성 문제

주말 사이에 음식점의 무인주문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7)로부터 시작해서 공공장소에 있는 나쁜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야기8)가 타임라인에 오가고 있었습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 있는 무인주문기의 어처구니없는 인터페이스에 황당해하다가 이런 기계가 사람들을 차별하는 문제에 앞서 너무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 그렇게 낮은 수준으로 실제 세상에 굴러나와 사용되는 것 자체도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계들은 확실히 사람들을 차별합니다. 생긴 것 부터가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키가 이 기계 높이를 편안해할 리가 없으니까요. 당장 거리를 걸어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최소한 제가 임의로 삼은 기준 키로부터 머리 한두개씩은 더 크거나 작습니다. 또 대부분 수직으로 서있는 스크린 덕분에 항상 고개를 똑바로 들어야 하고 손을 꽤 넓은 범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일단 신체조건을 만족한 다음에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들을 가지고 있으려면 은행에 계좌가 있어야 하고 이동통신사의 서비스를 받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회적 조건은 만족하기 상당히 까다롭고 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신체적 조건을 만족한 사람들과 함께 상당히 줄어듭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비전문가가 아무렇게나 만든 인터페이스를 참을 수 있고 내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압력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빠른시간 안에 학습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주문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방금 크게 세 가지 필터를 이야기했는데 이 필터를 모두 통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이 기계들은 크게 세 가지. '신체조건', '사회조건', '학습조건'을 만족해야만 주문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체조건은 위에 이야기한 기계의 물리적인 형태에 따른 조건, 사회조건은 신용카드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조건, 학습조건은 이 기계의 인터페이스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과 이해의 조건입니다. 제 시야에서는 주로 '신체조건'과 '사회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습니다. 가령 키가 작거나 큰 사람, 시력이 나쁜 사람,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과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는 사람이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런 조건을 어느정도 만족할 것 같은 사람도 무인주문기 사용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천공항 버스표 예매장치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이 기계는 체크카드를 거절하지만 명확하게 '체크카드를 거절한다'고 말하지 않고 '결제에 실패했다'는 확실하지 않은 응답으로 사용자를 좌절시켰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학습조건'을 위주로 잠깐 이야기해볼 작정입니다.

무인주문기는 상당한 학습을 요구합니다. 일단 기존에 사용하던 메뉴판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뉴를 표시합니다. 메뉴판에는 메뉴 그림과 이름이 길게 나열되어 있고 세트메뉴를 선택하거나 구성을 변경하는 옵션은 메뉴 끄트머리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주문과정도 이 메뉴의 생김새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일단 메인메뉴를 고르고 구성을 세트로 할 것인지 결정한 다음 구성을 변경하고 싶으면 변경하고 추가메뉴를 선택하고싶으면 선택합니다. 일단 매장을 이용하는 옵션이 기본값이고 포장하려면 주문 끄트머리에 포장하겠다고 말하는 순서를 따릅니다. 그런데 무인주문기는 이 과정을 근본적으로 뒤섞어놨습니다. 위에 영상을 보면 일단 광고를 표시하고 있고 다짜고짜 맨 뒤에 물어봤던 포장여부를 선택하게 합니다. 그 다음은 메뉴를 상위메뉴와 하위메뉴의 두 단계에 걸쳐 표시합니다. 이전에 이런 메뉴 탐색과 선택 방법은 이 기계를 사용해보기 전까지는 경험한 적이 없었을 겁니다. 또한 현재 과정이 전체 과정 중 어느 단계인지, 앞으로 단계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 없어 뒤에서 질문 받을 요소를 앞에서 미리 선택하느라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할 뿐 아니라 내 뒤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면 행동에 압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스크린이 똑바로 서있어 내 선택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해야만 하기도 하고요.

이 수많은 학습이 필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이 기계가 아마도 거의 아무 고민도 없이 제작자의 사고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 무인주문기 이전에 사람에게 말로 주문하는 과정을 딱히 고민하지 않고 메뉴 선택 화면을 만들었을 겁니다. 메뉴가 많으니 두 단계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뒤에 옵션 메뉴를 다시 물어볼 것과 관계 없이 처음부터 모든 메뉴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메뉴 하나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맨 처음으로 돌려보내는 등 개인의 의식 흐름에 따라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고서는 이런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 조차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요.

이전 시대의 액티브엑스 때도 비슷했습니다. 사람들은 보안과 사용성 사이에서 좀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이 솔루션들의 아주 낮은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일이 무인주문기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당장의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못해 왔습니다. 가령 당장 보안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는 페이지 자체가 보안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제정신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괴상한 설계 때문에 받는 고통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무인주문기 문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손쉽게 차별하는 좀더 높은 수준의 이야기가 당연히 진행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기계의 어처구니없는 사용성 문제 역시 이야기되어야 하며 후자의 목적은 일단 일이 잘못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 관점에서 사용성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무인주문기 문제는 크게는 사회적인 개선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작게는 사용성 이야기와 빠른 개선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내 GPX 파일을 옮겼나

한국랜도너스 웹사이트9)는 웹사이트를 운영할 여력이 부족한 단체가 어렵사리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이트를 구성하는 조각들이 서로 다른 솔루션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서비스됩니다. 개인정보를 핸들링하지만 HTTPS 접속은 꿈도 못 꿉니다. 사이트가 구동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입니다. 이 사이트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일정과 코스 소개', '예약시스템', 그리고 '코스파일 배포'입니다. 일정과 코스 소개는 고정된 웹사이트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코스 추가와 변경은 보통 일년에 한번 정도 큰 규모로 일어나고 연도별 이벤트 결과 역시 일년에 한번 정도 크게 업데이트됩니다. 예약시스템은 시즌 시작 전부터 사람들 수천명이 몰려들어 이벤트에 참가신청을 하고 신청을 변경하고 취소하기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로그인을 하기도 하고 개인정보를 입력하기도 합니다. 장거리 라이딩은 코스 숙지가 중요하므로 코스파일 배포 역시 중요합니다. 코스파일은 보통 GPX 파일로 되어 있는데 이걸 가민10) 엣지 같은 바이크컴퓨터에 옮겨 이걸 보고 라이딩을 하게 됩니다. 브레베 이벤트 날짜가 가까워지면 코스파일을 바이크컴퓨터에 담아 답사 라이딩을 가곤 합니다.

오늘은 문득 랜도너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서 한국랜도너스 웹사이트로부터 GPX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가민커넥트11)에 입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겪고 있는 상황은 아이폰을 사용해 한국랜도너스 웹사이트로부터 GPX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가민커넥트에서 열려고 했지만 가민커넥트 앱이 GPX 파일을 무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랜도너스 웹사이트에서는 자주 업데이트되는 GPX 파일과 지도 이미지 파일을 구글 문서12)를 통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예약시스템'을 트래픽 제한이 있는 호스팅 서비스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파일들을 같은 호스팅 서비스를 통해 배포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구글 문서는 웹사이트 사용 경험을 유려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직 스마트폰만 가지고 이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바이크컴퓨터에 집어넣는데는 골치아픈 상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 배경
    1. GPX 파일은 구글문서도구에 올라가 있습니다.
    2. GPX 파일은 XML 포멧으로 되어 있습니다.
    3. 구글문서도구 앱에서 GPX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내용물이 XML 이므로 친절하게 확장자를 XML로 바꿔줍니다.
    4. 가민커넥트 앱은 내용에 관계없이 확장자가 GPX일 때만 파일 열기를 시도합니다.
    5. iOS의 파일 앱,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원드라이브, 드랍박스 등)는 확장자 변경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6. 윈도우 OS 역시 기본으로 파일 확장자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2. 결과
    1. 아이폰으로 구글문서도구 앱을 통해 GPX 파일을 가민커넥트 앱으로 열려고 시도합니다.
    2. 가민커넥트 앱이 열리지만 앱만 열리고 GPX 파일은 사라집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구글문서도구 앱을 삭제해 사파리 브라우저로 파일을 열거나 사파리 웹브라우저에서 GPX 파일을 길게 눌러 새 탭으로 열면 구글문서도구를 거치지 않고 사파리 브라우저로 열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GPX 파일을 가민커넥트 앱으로 열면 확장자를 바꾸지 않고 무사히 가민커넥트에서 파일을 열 수 있게 됩니다.

알고보면 비교적 간단한 원인과 해결방법이지만 이 배경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작의 연속입니다. 파일에 확장자가 있는데 이 확장자를 기준으로 파일을 어떤 앱으로 열지 결정해 왔지만 요즘에는 이 걸리적거리는 확장자를 표시하지 않고 파일 이름만으로 파일을 핸들링하게 만드는 추세인 모양입니다. 윈도우 OS를 포함해서 어지간한 환경에서는 더이상 확장자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앱들이 확장자를 기준으로 파일을 핸들링하고 위에 이야기한 형태의 오동작이 일어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도 변경할지도 못하는 확장자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고 누가 쉽게 눈치챌 수 있을까요?

이건 구글문서도구를 통해 XML 형식의 GPX 파일을 배포하는 쪽, 내용물에 맞춰 확장자를 바꿔버리는 구글문서도구 앱, 파일을 내용물 대신 확장자로만 판단하는 가민커넥트 중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냥 어렵다고만 하기에는 이들 각각의 행동과 구현이 겹쳐 도무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위에 이야기한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겠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이어져내려온 확장자 개념은 그리 쉽게 빠른시간 안에 없앨 수 있을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윈도우 OS가 8.1 다음에 10으로 버전을 올릴수밖에 없었던 이유만큼이나 그동안 쌓인 관습을 잠깐동안에 바꾸는건 어려워보입니다. 그 사이에 사용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고통받습니다.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

작년 한해 동안 가장 감명깊게 한 게임은 어쎄신 크리드 오딧세이13)입니다. 이렇게 멋진 세계를 경험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등대 위에 올라가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도시에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황홀하게 바라봤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황홀함으로 가득한 세계를 만났습니다. 한낮에 눈부시게 내리쪼이는 지중해의 태양, 어두운 밤에도 반짝이는 하늘과 안개낀 숲,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연보라빛으로 물든 여명, 그 안을 가득 채운 지금과는 다른 시대의 건물과 사람들. 저에게 이 세계는 그저 말을 타고 목적없이 달리기만 해도, 또 함선을 타고 밤낮없이 떠있기만 해도 즐거운 게임이었습니다. 직업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앞으로 참여할 게임에 기여할 여러 가지 방법을 다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세계에도 끝이 옵니다. 세계를 위협하던 코스모스 교단원들은 코스모스의 유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코스모스의 유령은 카산드라의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이제 유령이 세계에 살아남아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전적으로 제 상상에 달렸습니다. 유비소프트가 조앤 롤링처럼 원작자피셜로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면요. 거의 모든 동업자들 역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이 세계에는 극소수의 용병들만이 살아남아 오가며 서로를 위협할 뿐입니다. 세계에 흩어져있던 수많은 신비로운 동물들 역시 카산드라의 칼 끝에 세계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함선의 재료가 되어 드넓은 바다를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다리우스와 만나야 하고 눈먼 왕에게 인간이 이룩한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모두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시즌패스 덕분에 앞으로 한동안 세계에 추가될 또다른 이야기들은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100시간도 넘게 이 게임을 플레이한 지금 슬슬 게임을 삭제하고 한동안 이 게임을 쉬고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이에 출시된 다른 게임을 충분히 플레이하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에 국내에서는 거의 진공상태이던 PC 시장에 흥미로운 게임이 출시되었으며 모바일게임은 또 시시각각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계를 떠나 다른 게임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 정이 든 나머지 세계를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스팀에서 게임을 삭제하려다가 문득 게임을 실행해버렸습니다. 딱히 무슨 퀘스트를 할 생각은 아니었고 포보스를 불러 올라탄 다음 그저 거대한 도시를 가로질러 성 밖으로 나가 산길과 호수와 염전과 대리석 광산과 숲을 달립니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금빛으로 빛나 눈을 뜰 수 없게 만들고 가벼운 구름이 저멀리 떠갑니다. 그러다가 항구에 다다르고 이번에는 목적없이 함선을 타고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봅니다. 어두운 밤에 뱃전에 매달린 불빛과 선원들의 노래에 멍하니 키를 맡겨보기도 하고 연보라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새벽녘의 하늘과 바다가 맞닺는 순간을 지켜봅니다. 목적이 사라졌지만 이 세계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에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건 로스 산토스14)에서였는데 그때는 그 세계에 저지른 제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출시된지 5년도 넘었으니 이제와서 고백하자면 저는 이 도시에서 결국 트레버를 죽였습니다. 가솔린에 휩싸여 울부짖으며 불타 죽었죠. 그렇게 목적이 사라진 세계를 떠나려다가 그때도 삭제하는 대신 실행해버리고 말았는데 바이크를 타고 신호대기에 서있는데 인도를 걸어가는 마이클을 만난겁니다. 잘 살라고 인사한 다음 갈길을 가려다가 문득 이전에 플레이한 미션을 다시 플레이할 수 있었다는걸 깨닫고 트레버를 죽인 그 결정을 한 미션을 다시 플레이해서 이번에는 트레버를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해봤습니다. 마지막에 석양을 배경으로 아저씨 셋이 호탕하게 웃고는 각자 갈길을 가는 엔딩을 보고는 기분이 좋아졌다가 로딩이 끝나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전환되지 않는 트레버 메뉴를 보며 이 세계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를 떠날 겁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순간이 이렇게 아쉽고 괴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또 이런 세계를 만나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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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star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2-07 16:36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