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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이 두 개 있는 기계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폴드1)를 발표하면서 펼치면 조그만 태블릿 크기가 되지만 접으면 적당한 크기의 폰으로 변하는 기계에 다들 급 관심을 가지는 모양입니다.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온통 접는 폰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엘지 V50의 액세서리는 갤럭시에 비하면 여러 모로 초라한 느낌이기도 하고 최신 유행에 동참하는데 실패한 모습으로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제품을 비웃는 듯한 이야기를 가끔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 이 듀얼 스크린 액세서리는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넘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기계가 빨리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스크린이 두 개 달린 기계가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십 수년 전 아이리버에서 컨셉을 발표했던 전자책 단말기 때문입니다. 기억 속에서는 훨씬 깔끔한 두 쪽 짜리 기계였는데 막상 시간이 흐른 뒤에 구글에서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그와는 다른 좀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리버의 북투 컨셉은 실제 책과 같이 이잉크 디스플레이 두 개를 탑재한 장치입니다. 물론 실제 책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사용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책을 열어놓고 참고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고 한쪽은 책, 다른 한쪽은 메모 같은 다른 앱을 띄울 여지도 충분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총알을 장전한 채 기다렸지만 영영 제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컨셉 디바이스 이름을 딴 전자책 서비스를 열었던 모양인데 이 사실을 10년도 더 지나서 알게된걸 보면 별로 잘 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스크린이 두 개 달린 기계가 생각보다 훌륭할 거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패드가 처음으로 출시될 즈음2)에 공개된 쿠리어 컨셉3)은 터치스크린 두 개를 단 기계를 사용할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전에 하던 생각과 비슷하게 양쪽 페이지에 서로 다른 앱을 실행하고 한 가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여러 앱을 거치며 작업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리버 제품 때만큼 빨리 총알을 장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시대와는 달리 이런 전자제품들의 가격이 한참 올라가는 중이었고 분명 어지간한 비싼 랩탑 가격에 맞먹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나오기만 한다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는 짤막한 기사4)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이때쯤 첫번째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이패드 몇 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이패드 미니 3 하나를 책 읽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력 태블릿은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프로 4입니다. 서피스 프로 3에서 정립된 생김새는 몇 년이 지나고 그 사이 메이저 업데이트를 몇 번 거치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아 몇 년 지난 제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새로 나온 제품과 언듯 봐서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원노트 필기를 훌륭하게 지원하고 꽤 괜찮은 i5 기반 윈도우 기계인데다가 키보드도 훌륭해서 지금까지 사용해온 어지간한 포터블 기계 중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페이지 두 개를 동시에 보고싶거나 페이지를 보며 필기하고 싶었습니다. 스크린을 반으로 나눠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답답했습니다.

이때마다 똑같은 서피스를 하나 더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서피스 두대를 각각 세로방향으로 돌려 가로로 늘어놓은 다음 양쪽에 서로 다른 앱을 띄워 쓰는 겁니다. 한쪽에 웹브라우저, 다른 한쪽에 원노트를 띄워 놓는 식으로요. 구형 서피스 가격이 생각보다 빨리 낮아졌기 때문에 이 계획을 거의 실행할 뻔 했습니다만 몇가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몇몇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컴퓨터 한 대당 라이센스를 판매했으므로 같은 소프트웨어 두 개가 필요했습니다. 윈도우 라이센스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이쪽은 하드웨어에 라이센스가 딸려오므로 신경쓰지 않아도 됐지만 같은 소프트웨어를 두번 구입하는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 한쪽에서 복사한 글이나 이미지를 다른 한쪽 서피스로 아름답게 전달할 방법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실험을 해봤는데 한쪽에서 이미지를 붙여넣고 인터넷으로 동기화되길 기다린 다음 다른 쪽에서 사용하는건 아름답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동기화가 조금만 지연되면 상황은 아주 구질구질해졌습니다. 기계 두 대를 들고다니는 불편함이나 어댑터 두 대로 배터리를 각각 충전해야 하며 업데이트도 두번 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살다가 엘지전자에서 폰 두 개를 접어 들고다닐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액세서리를 발표한 겁니다. 이럴수가! 아이리버 북투를 처음 보고 나서 십 수년만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총알을 끌어모으려는 의지력이 머나먼 과거로부터 시간을 건너 내 머릿속으로 빨려들어오는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엘지전자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서비스도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이 액세서리는 꽤 괜찮은 제품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갤럭시노트 두 대를 끼워 다닐 액세서리를 만들 수도 있고 아이패드 프로 두 대를 끼워 다닐 액세서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유선 접점을 사용하면 구질구질하게 인터넷 동기화를 거치지 않아도 아름답게 기계 두 대 사이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테고 또 양쪽에 동시에 필기메모를 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다른 한쪽 기계로 여전히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완전히 아름다운 가능성을 가진 제품입니다. 그 액세서리에 꽂을 기계가 엘지전자 제품만 아니라면요.

후.. 저도 압니다. 이런 제품을 구입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고 덕분에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조용히 시장에 나오지도 못한 채 사라지리라는걸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스크린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언젠가 하나쯤은 제대로 나와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고대하고 있습니다. :)

blog/table-with-two-screens.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3-02 21:45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