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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겐 맥심 기관총이 있지만 우리에겐 없다네

어쎄신크리드 스토리크리에이터모드를 둘러봤습니다. MMO 게임을 만들면서 항상 골치아픈 문제이던 퀘스트 제작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은 경험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 도구의 어디까지가 개발팀 내부의 환경이고 또 어디까지가 외부에 공개하기 위해 다듬은 환경일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직접 사용해보지 않을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드리면 (그리고 아마도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를 가지고 있는 계정이어야 실행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해봅니다.) 웹에서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에서 구동되는 퀘스트를 만드는 도구입니다. 여러 퀘스트를 묶는 단위인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데 각각의 퀘스트에 참여할 인물, 인물들이 배치될 장소, 배치될 조건,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시작할 조건과 목표, 각 인물들의 시점 별 행동 등을 웹에서 설정한 다음 게임에서 돌려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도구입니다.

시작할 때 이야기했지만 이 도구가 실제 개발환경의 어느정도를 반영한 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가령 이전에 감명깊게 봤던 스카이림 에디터는 개발팀이 사용하는 환경의 대부분을 가져왔다고 추정했습니다. 심지어 초기 버전에서는 실행할 때 내부 개발환경과 다른 환경 때문에 수없이 뜨는 경고메시지를 닫아가며 사용해야 했습니다. 또 실제로 컨텐츠를 추가하는 것 외에도 게임을 거의 다 뜯어고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어쎄신크리드 스토리크리에이터모드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스토리와 퀘스트, 그것도 꽤 제한된 범위의 목표와 기능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목표는 여섯 종류 정도, 캐릭터의 행동 제어도 실제 게임에서 사용한 것에 비해 개수가 적고 또 게임상의 보스를 출연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 공개된 에디터의 생김새를 뜯어보며 개발팀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철학을 짐작해 보았습니다. 인상깊은 부분이 두 가지 있었고 둘 다 한 가지 철학으로 귀결됩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스탭들이 각자 작업의 경계에 해당하는 일을 할 때 상대와 너무 강한 협업을 하지 않도록 하는 부분입니다. 가령 퀘스트 로직을 만드는 사람은 레벨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요구받지 않습니다. 이미 인물을 배치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이미 월드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위치 중 하나를 선택해 내 퀘스트에 사용할 인물을 배치하고 인물의 행동을 설정하고 플레이어와 인터랙션하는 로직 자체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또 대화를 작성하는 사람은 대화 작성에 집중하면 됩니다. 가령 각 대사를 말할 때 인물이 어떤 감정상태인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인물이 어느 위치에 서있을지, 카메라가 어디를 비출지에는 완전히 신경을 끌 수 있습니다. 흔히 이런 게임에서 컷씬은 소위 싼 컷씬과 비싼 컷씬으로 구분하는데 여기서는 대사를 작성하는 사람이 싼 컷씬을 만드는데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를 선택하기만 하면 싼 컷씬은 알아서 만들어집니다. 알아서 만들어지는데는 싼 컷씬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필요하겠지만 굳이 대사를 작성하는 사람이 거기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문득 제가 게임을 만들면서 일어나는 일과 위 가정을 비교해봤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한 가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수행하는 작업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전문성을 요구하곤 합니다. 가령 퀘스트 로직을 만드는 사람이 대사도 써야 하고 또 싼 컷씬의 카메라도 잡아야 하는 식입니다. 이들 각각의 작업을 단순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결국 서로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이 뒤섞인 환경에서 작업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영역의 작업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거나 서로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경계의 작업을 하는데 너무 강한 협업을 요구받습니다. 전자의 경우 완성된 게임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후자의 경우 스텝을 갈아버립니다. 더 빨리 지치고 더 빨리 인간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이 도구의 존재에 대해 다른 개발자분들과 이야기해보니 예상대로 다들 알고있는 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같은 프렌차이즈 게임을 장기간 개발하면서 서로 다른 프로젝트간에도 서로 남겨줄 것이 있지만 우리의 개발은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완전히 헤어졌다가 다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 완전히 새로운 회사와 체계, 엔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므로 프로젝트 간에 남겨줄 것이 있더라도 거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개발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개발자 각각의 입장에서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간히 공개되는 국외 개발사들의 개발환경을 보며 마치 낮은 난이도로 문명을 플레이할 때 증기기관을 개발하고 동력이 있는 함선을 끌고 저 멀리 대륙 뒤로 돌아갔더니 그쪽에 있는 나라들은 아직도 노를 저어 다가와 창을 던지는 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현대의 게임은 여전히 제작비용이 올라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 상황에서 반드시 국외에도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국외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들과 경쟁하기에 저들에겐 맥심 기관총이 있지만 우리에겐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개발해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해졌습니다.

blog/they-have-a-maxim-gun.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6-16 19:06 저자 neo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