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사이드바

start

소개

  • 김우진
    •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시스템디자이너, 캐쥬얼 랜도너1)

연락

블로그

둠 이터널

이번 둠은 그 이름이 아니었다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합니다. 이건 둠이고 둠의 후속작이 맞으며 플레이어가 누구라도 이 게임에서 살아남고 나면 극도로 공격적이고 강한 슬레이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이젠 2018년 퀘이크콘에서 함성을 지르던 아저씨들을 이해합니다. :)

이렇게 말하는 스스로가 좀 웃기긴 하지만 FPS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는 못합니다. 시대를 주름잡는 FPS를 오랜 시간 플레이하지만 멀티플레이에서는 항상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를 반복해 FFA밖에 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FPS를 좋아합니다. FPS 장르만큼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르가 드물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FPS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연구한 장르 역시 드뭅니다. 여기에 둠은 이 장르를 발명해낸 사람들의 가장 유명한 게임 프랜차이즈입니다. 그렇게 둠에 열광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둠3에서 좀 실망했고 4년 전 둠 리부트 때는 또 꽤 괜찮았습니다. 이제 이름이 같을 뿐 현대의 둠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지만 둠이 발명해냈고 또 여전히 그 플레이를 온전히 복제해낸 게임이 드문 시대에 둠이 둠 답게 이름 뒤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접미사를 달고 나타나자 다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젝트 이름 뒤에 이런 불길한 단어를 달고 별 탈 없이 출시한 게임은 드물었습니다. 가령 듀크뉴캠 포에버는 흥미로운 소재와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했고 나중에는 개발팀으로부터 에셋이 유출되어 구직시장에 돌아다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결국 게임이 출시됐지만 스팀에서 정가가 유지된 시간은 정말 짧았고 저 역시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 5달러가 됐을 때 구입했습니다. 게임의 여러 부분이 듀크뉴캠의 분위기에 어울렸지만 근본적으로 이건 사려깊게 만든 FPS가 아니었습니다. 엔딩은 고사하고 몇십분쯤 견디다가 - 플레이한 것이 아님 - 그만뒀고 그 후로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런 이름을 게임 이름이나 프로젝트 이름에 사용한 여러 게임들의 결말은 하나같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업계의 불길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불길한 이름을 소화할 수 있는 게임은 사실 둠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불길한 단어를 붙일 게임 이름조차도 둠이니까요. 혹시나 출시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결국 게임은 출시됐고 둠 이터널은 … 그냥 최고입니다.

플레이스타일

둠 이터널은 4년 전에 출시한 둠과 비슷하지만 플레이해보면 완전히 다른 게임입니다. 이전 둠이 모던 FPS에 '둠'의 플레이를 온전히 재현하는데 성공했다면 둠 이터널은 이제 플레이어에게 슬레이어처럼 움직일 것을 강제합니다. 내가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수록 게임은 내게 더 많은 기회와 힘과 탄약을 제공해줍니다. 평소에 FPS를 플레이하듯 소극적으로 플레이할수록 나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사실상 게임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둠과 둠 이터널 양쪽 모두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슬레이어의 헬멧을 발견하고 앞뒤로 돌려 살펴본 다음 이걸 뒤집어쓰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니터 앞에서 약간 흐트러진 자세를 하고 있었다면 헬멧을 쓴 다음부터는 의자를 좀 더 당겨 고쳐 앉고 입을 다물고 마우스를 고쳐 쥐고 지옥에서 나타난 악마를 씹어먹을 준비를 합니다. 헬멧을 쓰기 전에는 웃으며 글로리킬을 했다면 헬멧을 쓴 다음부터는 정말 슬레이어의 표정이 내 표정에 나타납니다. 진짜 슬레이어의 표정은 헬멧에 가려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요.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중간중간 실수는 있지만 나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 이건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전작에서 '세상에 나만큼 조심스러운 슬레이어는 없을 거야'라고 자조하며 플레이했다면 이제는 '어디냐! 나와! 나와! 나와! 나오라고!'라며 플레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플레이어에게 이 슬레이어스러운 플레이를 강제하는 구성이 훌륭합니다.

레벨디자인

클래식한 레벨디자인은 이제 전투 영역 하나하나를 FFA모드 멀티플레이 레벨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밀리터리 FPS들이 나타나면서 레벨이 좀 더 수평 형태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좀 더 무거워지고 보다 천천히 움직이며 장면 사이를 전환할 때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들을 사용합니다. 이런 게임에 익숙해지다 보니 같은 게임에서 위 아래로 긴 레벨을 만날 때 잠깐 동안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둠의 시대가 지나고 퀘이크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레벨은 수직 구조가 강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계속해서 위, 아래로 움직여야 하고 플레이어가 있는 그 층 뿐만 아니라 바로 위 아래 층, 나아가 반대쪽 구조물의 다른 층에도 동시에 신경쓰며 플레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둠은 이런 레벨디자인을 더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핵심 전투가 일어나는 각 공간을 멀티플레이 레벨처럼 구성해 앞에서 이야기한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에 더 어울리도록 구성했습니다.

둠 다운 기믹

여러 가지 인상적인 기믹이 있습니다. 여러 기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규칙으로 사용되는 점은 수많은 레벨이 등장하는 MMO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가령 점프대는 어느 레벨에서나 점프대처럼 생겼고 매달릴 수 있는 벽은 어느 레벨에서나 똑같이 생겼습니다. 올라가도 안전한 곳은 항상 녹색으로, 그렇지 않은 곳은 붉은색으로 표시됩니다. 개발하다 보면 종종 레벨마다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역할을 하는 기믹의 겉모양이나 애니메이션을 바꿔 고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세계에서 개발하는 입장에서 이 일관성있는 기믹 사용은 인상적이었고 또 부러웠습니다.

이번 둠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믹은 개사 손으로 쳐서 무너뜨릴 수 있는 벽입니다. 레벨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기믹은 여러 게임에 있었습니다. 가령 자동으로 여닫히는 문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 각각은 게임의 장르나 상황에 따라 사용되었고 또 바이오해저드에서처럼 기술적인 한계를 게임의 일부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입니다만 이번 둠에서는 이 공간 사이를 시각적으로 차단하고 다음 공간을 내 인터랙션에 의해 개방하는 기믹을 슬레이어의 스타일로 만들었습니다. 자동문은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엘리베이터는 그 스스로 움직여 나를 수동적으로 다음 공간에 데려다주는 기믹이라면 이 부술 수 있는 벽은 슬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파괴해야 합니다. 둠에서 이 부술 수 있는 벽은 '이 다음엔 뭐가 있을까?' 정도로 기대를 가지는 수준이 아니라 '다음은 누구냐 이 새끼들아' 같은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슬레이어는 적극적으로 벽을 부수고 다음 공간을 시각적으로 개방한 다음 플레이를 계속합니다. 다른 여러 가지 서로 잘 구분되는 기믹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무너지는 벽은 가장 둠 다운 기믹입니다.

결론

이번 둠은 그 이름이 아니었다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합니다. 이건 둠이고 둠의 후속작이 맞으며 플레이어가 누구라도 이 게임에서 살아남고 나면 극도로 공격적이고 강한 슬레이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이젠 2018년 퀘이크콘에서 함성을 지르던 아저씨들을 이해합니다. :)

· 2020-05-02 20:38

의존성

후방 레이더가 꽤 의미있는 만큼 생각보다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멈췄다가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출발 전에 헤드유닛을 확인해 후미등이 인식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난 3월에 가민에서 나온 레이더가 달린 후미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어번 사용해본 다음 완전히 마음에 들었고 모든 자전거에 거치대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강력한 문라이트 네뷸러 후미등도 함께 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코너가 많은 오르내리막에서는 안 그렇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뒤에서 자동차가 접근할 때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헤드유닛에 경고가 뜨고 내가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확인한 다음에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먼저 뒤에서 오는 차를 알고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차량이 접근해 오면 더 밝게 깜빡여 경고한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장치가 뒤에서 접근하는 운전자들에게 짜증을 유발해 저를 인식하게 한 적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기계에 제법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동부 5고개를 돌고 마지막에 유명산에서 아신역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출발하고 한 30초쯤 지나서 가민 헤드유닛에 후미등이 연동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중간에 좀 긴 시간동안 쉴 때 헤드유닛과 후미등 양쪽 모두 꺼 놓는데 종종 다시 켤 때 후미등이 헤드유닛에 인식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상태를 확인하고 만약 인식되지 않았다면 후미등을 껐다 켜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리막을 시작하고 나서야 이걸 알게 된 겁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 레이더 표시

저는 오르막을 좋아하지만 반대로 내리막은 좀 무서워합니다. 엘리트 사이클리스트들의 경기를 보면 내리막에서 고양이자세를 하고 저러다 낙차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낮은 각도를 유지하곤 합니다만 내리막은 아무래도 무서워서 빌빌거리며 시속 40-45킬로미터를 유지하고 그나마 커브가 나타나면 훨씬 더 속도를 줄이곤 합니다. 당연히 유명산 내리막에서도 똑같이 내려올 작정이었지만 속도는 제법 붙어있었고 노면 상태가 아주 나빴고 자동차들이 자주 중앙선을 넘기 때문인지 중앙선에 폴이 박혀 있어 추월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리막을 내려가면 자동차들은 대부분 자전거 뒤에 바짝 붙어 위협운전을 합니다. 이 상황에 후방 레이더가 사라져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겁니다.

평지에 내 힘으로 가속하는 중이거나 노면 상태가 더 나았다면 별 일 없이 뒤를 돌아보고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노면이 나빴고 내리막인데다가 커브가 많았습니다. 도무지 뒤를 돌아볼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리고 뒤에 차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지만 바람소리에 차량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상황에서 헤드 유닛에 표시되는 후방 상황과 같은 차량이라도 커브를 돌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때 소리로 다시 경고해줘서 크게 도움을 받아 왔는데 이게 사라지자 평소보다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어차피 뒷 차는 안전거리 유지 없이 최대한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을테니 낙차하면 뒷 차에 깔려 죽거나 코너에서 감속을 안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테니 이판사판이다 싶어 뒷 차를 무시하고 도로 중앙으로 내려갔습니다만 여전히 노면이 나빠 무서움이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리막을 내려와 아신역 방향으로 완전히 접어들기 전에 근처 카페에 들려 잠깐 진정한 다음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이 날의 교훈은 후방 레이더가 꽤 의미있는 만큼 생각보다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고 특히 완전히 멈췄다가 내리막을 출발하기 전에 헤드유닛을 확인해 후미등이 인식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2020-05-02 23:45
start.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0-05-10 12:48 저자 neoocean